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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원로목사] 25.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라 | 민수기 22:1-6 | 2022.08.21 |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 25.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라 | 민수기 22:1-6 | 2022.08.21 | 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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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구촌사랑교회의 소속교단과 주소, 담임목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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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구촌사랑교회의 소속교단과 주소 담임목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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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구촌사랑교회의 소속교단과 주소, 담임목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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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교회 교단 홀사모 50명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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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교회 교단 홀사모 50명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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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교회 후임 타교단 출신 진재혁 목사 선정후… 침례교단 내부 미세 온도차

침례교 소속의 지구촌교회는 어떻게 예장합동 출신의 진재혁 목사를 이동원(사진) 목사 후임으로 선정했을까. 지구촌교회 후임 목사에 미국 뉴비전교회 진재혁 목사가 선정된 이후(본보 5월 18일자 26면) 침례교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침례교의 대표적인 교회가 후임을 다른 교단 소속 목회자로 정한 데 대한 서운함이 교단 내 목회자들 사이에 상존해 있다.

이 목사는 후임자 선정에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선정 다음 주일인 지난달 23일 이 목사는 설교에서 후임 목사 선정 배경과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청빙위원회에서 최초 11명의 후보를 선임할 때 나는 의도적으로 빠져 있었다”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후임 목회자 선정에 자신의 입김이 전혀 없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목사는 “청빙위원들도 나와 동일한 마음으로 기도 끝에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고 언급했다.

이 목사가 비록 지구촌교회 후임 목사 결정이 전적으로 청빙위원들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침례교단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 목사가 대표로 있는 ‘침례교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침미준)의 한 임원은 “침례교 소속 목회자 입장에서 봤을 때 지구촌교회 후임은 침례교 출신이 맡았어야 했다”며 “이 목사가 범 교단적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그래도 부교역자와 담임목사 청빙은 다르지 않나”라고 말했다. 침례교 일각에서는 이 목사가 침례교 소속으로 교단을 초월한 많은 일을 했으나 정작 침례교 발전을 위한 노력과 성과는 기대보다 미진했다는 의견도 있다.

경기도 광명시 다사랑침례교회 유상채 목사는 “침례교의 상징성을 가진 교회가 침례교 신학을 하지 않은 분을 후임으로 선정했다는 데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이 목사가 그동안 분파주의나 교권주의에 반대해왔던 전력에 비춰봤을 때 오히려 모범적인 사례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침례교단 내부의 이 같은 목소리에 대해 지구촌교회 관계자는 “청빙위원회에서 세운 기준 중의 하나는 침례교단에서 목회하는 데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진 목사는 지구촌교회 후임이 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원칙에 부합, 청빙위원들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진 목사는 내년 1월부터 지구촌교회 담임목사로 공식 사역을 시작한다. 이 목사는 3년 동안 진 목사와 동사 목회를 하며 그의 연착륙을 도울 예정이다.

김성원 기자 [email protected]

[스크랩] 지구촌사랑교회의 소속교단과 주소, 담임목사는?

<펜윅과 초기의 한국 선교>

1889년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선교정신이 충만한 캐나다의 독립 선교사 말콤 C. 펜윅이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이래로 시작된 한국의 침례교회는 백년이 조금 넘는 역사 속에서 여덟번이나 교단의 명칭을 바꾸어야 하는 수난을 겪었고,비록 교단 분열의 쓰라림을 경험하기는 했으나 분열을 스스로 치유하는 지혜를 터득하며 2,400여 교회를 지닌 단일교단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23세 되던 1886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중생을 체험한 청년 펜윅은 아무런 교단이나 선교회의 도움도 없이, 더구나 가족조차도 반대하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 대한 선교소명을 실천에 옮겼다.

1889년부터 1893년 까지 황해도 송천에 자리잡고 한국어를 익히며 전도하던 펜윅은 1893년 도미하여 3년 동안 미국 보스턴의 클라랜돈가 침례교회를 담임하던 고든(A.J Gorden) 목사 밑에서 신학과 선교훈련을 받았다.

고든 목사는 철저한 근본주의자로서 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성전의 무오성과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신봉하던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가까운 재림을 믿었으므로 선교에도 열심을 보인 사람이었다.

펜윅은 고든 목사의 영향아래 침례교로 전향하였다. 펜윅 선교사가 가르친 내용들은 대부분 고든 목사의 신학사상과 유사했다. 성경읽기를 무엇보다도 강조하였고, 진화론을 가르치는 세속교육을 반대하였으며, 지상 천년왕국에 대한 소망을 한국의 침례교인들에게 심어주었다. 펜윅은 1896년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 함경도 원산을 중심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1895년에 침례교 선교사들이 들어와 충남 공주·강경을 중심으로 선교의 열매를 맺고 있었다.

이들은 펜윅의 영향으로 클라랜돈가 침례교회에 구성된 「엘라 씽 기념선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 들이었다.

그러나 엘라 씽 선교회는 1900년에 한국 선교사역을 철수하며 1901년에 펜윅에게 모든 것을 인계하 였다.

이로써 펜윅은 북쪽의 원산, 남쪽의 공주· 강경을 중심으로한 침례교 선교사역의 유일한 지도자가 되었다.

<대한기독교회>

전도자들과 개척된 교회수가 늘어나자 펜윅은 1906년 강경에서 전 사역자를 소집하여 대회를 열고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하였다.

총회에 해당되는 「대화회」와 지방회에 해당하는「당회」를 구성하고 펜윅 자신이 감독이 되어 중앙집권적인 감독정체 체제를 구축했다.

직분의 명칭도 아홉 가지 이상이나 되는 복잡한 직급제를 형성했다.

「대한 기독교회」는 약간의 노잣돈을 가지고 「만민 좋은 기별」이라는 쪽 복음을 전파하던 전도인들의 공헌으로 급속한 국내 전도의 열매를 맺었을 뿐만 아니라 만주, 간도 및 시베리아선교의 대과업을 성취했다.

펜윅은 신약성서를 침례교입장에서 번역하여 1919년에는 「원산번역」 이라고 불리는 신약성서를 출간했고, 1905년에는 공주에, 1907년에는 원산에 각각 성서학원을 설치하여 전도인들을 훈련했다. 또한 「복음찬미」라는 찬송가책을 출간하 여 찬송가 수를 계속 늘려가며 찬송으로 복음을 가르쳤다.

<동아기독교회>

「3·1 운동」이후 교회 탄압을 시작한 일제는 「대한」이라는 명칭이 합당치 않다고 하여 교단의 명칭 개정을 강요 했다. 1921년 「대한기독교회」는 「동아기독교회」로 개칭했다. 동북아를 선교대상으로 삼고 복음화한다는 교단의 의지가 포함된 명칭이었다. 「동아기독교회」시대는 일제의 탄압정책과 아울러 만주에 일어난 공산주의자 들의 만행으로 인해 많은 순교자가 나온 기간이었다.

1921년에는 일본 헌병에게 독립군 첩자로 오인된 손상렬 목사가 순교했고, 1925년에는 만주 길림성 에서 전도하던 6인의 침례교 전도자들(김상준 교사, 안성찬, 이창희, 박문기, 김이주, 윤학영)이 공산당원에게 순교당했다. 특히 몽고에 30여 개 교회를 개척하며 몽고족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던 이현태 교사는 1928년경 몽고 토족의 습격을 받아 순교하였다. 1932년에는 만주 종성동 교회에서 시무하시던 김영국 감노와 김영진 목사 형제분이 공산당원에 의해 살가죽이 벗겨 지는 고문을 당하고 장렬히 순교하였다.

펜윅 선교사는 1925년부터 「편공부」라고 불렸는데 이런 일제 탄압속에서도 「달편지」를 매달 발 간하여 각 교회에 발송하며 신앙을 지도했다. 1926년에는 성도의 자녀들이 일제의 세속교육을 받는 것이 합당치 않다 하여 학교교육 폐쇄 지시를 내렸다.

<동아기독대>

1933년에 「교회」라는 명칭이 세속화 되었다고 느낀 편공부는 교단의 명칭 을 「동아기독교회」에서 「동아기독대」로 바꾸었다. 「대」라는 명칭은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양무리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일제는 한국민족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으나 「동아기독대」는 「달편지」 를 통해 신사참배에 절대 참여치 말 것을 시달했다. 이로 인해 1935년에 5명의 지도자들이 원산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 기간에는 편공부 내외를 사별해야 하는 슬픔을 겪어야 했는데, 1933년에는 편공부의 부인 하인즈 여사가 타계했고, 1935년에는 편공부 자신도 46년의 찬란한 선교업적을 남기고 72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펜윅의 신학사상, 교회관 및 전인적인 지도력 등은 오늘날 재 검토의 여지가 있다손치더라도, 그의 열정, 헌신, 강직한 신앙 및 도전적인 개척정신은 침례교 후손들이 길이 본받을 점이라 하겠다.

<동아기독교>

1940년에는 「동아기독대」라는 명칭이 천황군대에 저항감을 준다고 느낀 일본은 다시 교단 명칭의 개정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교단은 「동아기독교」라고 다시 개칭했다.

이 시기에는 세 가지 특이한 사건이 있었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고 1941년에 만주에 있는 6개교파의 교회들을 「만주기독교총회」라는 연합교단으로 형성했다. 이로 인해 만주지방의 1백여 침례교회는 형식상 한국의 교단과 분리되게 되었다.

또한 일정은 소위 「원산사건」이라 불리는 「동아기독교」탄압을 감행했는 데 1941년에는 침례교 신약전서 6,500부의 복음찬미 500부를 소각했고, 1942년에는 「동아기독교」의 지도자 32인을 함흥형무소에 투옥시키고 온갖 고문과 구타를 하였다.

급기야 1944년에는 지방법원인 함흥재판소가 동아기독교의 해체명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15개월 동안 한국 침례교는 교단 없는 교단이 되었다. 일제하의 한국 침례교는 성서중심의 교육, 절대 타협치 않는 불굴의 신앙, 순교를 각오한 선교정신을 그 특징으로 하였다.

1941년 당시의 동아기독교는 한국 전역에 1백여 교회, 만주에 1백여 교회, 시베리아에 47개 교회, 몽고에 수십 개의 교회에 이르는 교세를 지니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의 기쁨조차도 침례교단의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미약했다. 교단해체의 상처가 15개월이나 지속되었고, 더구나 38선 분열로 인해 북쪽의 기지를 송두리째 상실 한 한국의 침례 교회는 꺼져가는 심지와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타 교단에 귀속되자는 견해도 대두되었다. 그러나 1946년 남한의 22인의 침례교 지도자들은 「교단재건회의」를 개최했고,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났다.

1946년 강경에서 개최된 36차 「대화회」에서 ‘감목정체’를 ‘회중정체’로 바꾸고 교회 직분도 대폭 변경시켰다. ‘안사’를 ‘목사’로, ‘감로’를 ‘장로’로, ‘통장’은 ‘권사’로, ‘총장’과 ‘반장’은 ‘집사’로 개칭했고 , ‘교사’직은 그대로 두었다. 「대화회」도 「총회」로 개칭했다.

1947년에는 이러한 변화에 반발하여 경북 예천의 일부교회들이 불만을 품고 별도의 대화회를 열고 「대한기독교회」라는 명칭으로 분립해 나갔다. 비록 10개에 불과했으나 동아기독교의 교세를 더욱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대한기독교침례회>

1948년 총회에서는 미국 남침례교회와의 제휴를 추진키로 논의했다. 1949년 39회 총회가 강경에서 열렸을 때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침례회」로 바꾸고 신앙노선을 분명히 밝혔다. 1949년 미국 남침례교 해외선교부 동양총무인 카슨(Cauthen) 박사가 내한하여 동아기독교가 남침례교와 다른 바 없는 신앙과 행습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1950년 존 애버내티(John A. Abernathy) 선교사 부처가 내한함으로 본격적인 남침례교 선교시대가 열렸다. 1951년 충남부여에서 개최된 41차 총회에서 교회 직분을 ‘목사’와 ‘집사’로 축소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선교사들의 활동은 활발해져서 1951년 의료 선교, 구호 선교, 고아원 선교를 시작했고, 1953년에는 대전에 「침례회 성경학원」을 개원했다. 1954년 성경학원은 문교부로부터 「침례회 신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또 같은 해에 현재 교회진흥 원으로 발전된 「침례교출판사」가 세워졌다.

남침례교의 선교로 인해 침례교세는 급상승했고, 이로 인해 타 교단에서 많은 교역자들이 침례교를 전입했다. 그러자 동아기독교 후계를 자처하는 「주류파」와 타 교단에서 들어온 「전입파」, 신 학교를 졸업한 「신학교파」 및 「선교사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며 분열의 조짐을 보였다. 선교사들이 총회의 전도부장이던 안대벽 목사를 불신임한 것을 계기로 총회와 선교부는 대립했고, 급기야 1959년에는 「주류파」를 중심으로한 대전총회가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총회 분열로 인해 감정싸움 과 불미스러운 일이 계속되던 중 1963년에 문교부가 개입하여 재산분할 문제를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에 포항측은 「한국기독교침례회」라고 교단 명칭을 정했고, 대전측은 「기독교한국침례회 」로 정했다.

이 분열은 1968년까지 계속되었으나, 신학교를 졸업한 「신진파」들의 등장으로 인해 분위기가 바 뀌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1968년 4월 역사적인 합동총회를 개최했다.

분열을 극복하고 합동을 이룬 역사는 침례교의 상처이면서도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합동총회는 「한국침례교연맹」으로 개칭했다. 분열 기간에 침례교회 지도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체 험하면서

자립정신을 고취했으며, 침례교 부흥의 영적기틀을 다졌다. 이 기간에 선교부도 여러가지 기관 사 업을 육성함으로

써 한국 침례교 성장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76년 교단 명칭은 「기독교한국침례회」로 개칭되어 웅대한 도약의 시기로 돌입하게 되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한국침례교회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기에 이르는 “침례교의 계절”이 라고 불리는 10여년 동안 그 이전의 역사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활기찬 교회성장과 교단 발전의 부흥을 가져왔다.

1976년 제65차 총회에서 교단의 명칭이 「기독교한국침례회」로 개칭된 이후 변혁의 모습은 그 동안 영력을 잃고 믿음이 냉각되었던 교회들이 성령부흥운동 을 통하여 영력을 되찾고, 경제적으로도 자급자립하려는 의식의 변화에서 나타났다. 대표적인 부흥사(김충기·오관석·고승혁·지덕·김장환 목사 등)들의 부흥회를 통해 교단 내외적으로 부흥하는 교단이 되었다.

특히 당시 총회와 선교회가 화합적 협동관계로 개선되면서 한미합동사업으로 함께 추진하던 한미전도집회는 목회자들이 교회를 개척하고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에 교단의 부흥을 가져오게 하는 큰 구심점이 되었다. 이로써 지금까지의 교권쟁취를 위한 교단 정치는 완전히 불식되고 오직 복음전도와 신앙훈련을 통 한 교회 성장에만 총회와 선교회가 매진 함으로써 침례교회 본연의 교회 생활과 교단 생활의 기틀을 잡은 것이다.

1980년 수도침례신학교의 설립, 1982년 전국남전도 연합회 설립, 1987년 해외 선교회 설립과 침례 병원, 국내선교회, 여선교연합회, 침례회신문사 등의 각종 기관을 통한 활발한 선교활동은 침례교가 더 큰 부흥의 시 기를 맞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잠실 올림핌 주경기장에서 열린 1989년 침례교회 선교 100주년 대회와 1990년 16차 침례교 세계대회 한국 개최는 국내는 물론 해외 모든 사람들에게 한국 침례교의 성장을 보여 주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99년 5월5일에는 침례교회 110주년 행사를 같은 장소에서 10만 성도가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렀고 2000년 1월8일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된 제18차 침례교 세계대회에서 전세계 115개국 201개 총회 및 연맹이 가입되어 있는 침례교세계연맹(BWA) 총재로 한국의 김장환(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가 선출돼 세계 속의 한국 침례교회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침례회 총회 본부도 반세기 동자동 시대의 막을 내리고 구로구 오류동으로 이전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침례교회는 1889년 펜윅선교사가 이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지 11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 뿐 만 아니라 세계의 선교에 크게 공헌하는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이것은 끊임없이 교단이 자기성찰과 개혁을 이루고 철저히 성경의 원리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이제는 한국 침례교회가 이 사회를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시킬 제2의 부흥기에 있으며, 또 다른 형 제 국가인 북한 선교에 힘을 실어야 할 때가 되었다. 2000년 현재 기독교한국침례회 산하에서는 11개 기관이 독립 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96개 지방회, 2,340여 교회, 4,350여명의 목회자, 68만의 침례교인이 소속되어 있다.

지구촌교회 교단 홀사모 50명 지원

지구촌교회(최성은 목사)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단 내 홀사모 50명에게 후원 헌금 2500만원과 후원물품을 지원했다.

지구촌교회는 코로나19 확진환자가 급격하게 발생했던 대구․경북지역 교회에 목회자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으로 새중앙지방회 후원, 지역교회 및 사회 후원, 소외계층 지원, 사랑의헌혈 행사 등을 감당해 왔으며 홀로 되신 사모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고 이번에 침례교 총회(총회장 윤재철 목사)를 통해 (재)기독교한국침례회은혜재단(이사장 유관재 목사)에 후원하기로 했다.

최성은 목사(사진 가운데)는 “코로나19 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목회자로 가장 마음이 쓰인 분들이 남편 목회자를 먼저 보내고 홀로 있는 사모”라며 “이번에 총회와 은혜재단과 협력해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감사하며 앞으로 총회를 통하여 교단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있도록 여러 사역들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총회 총무 김일엽 목사는 “지구촌교회가 교단을 위해 먼저 헌신하고 지원을 결정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면서 “지구촌교회를 비롯해 서로 섬기며 헌신하는 많은 교회들을 최선을 다하여 섬기며 사역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지구촌교회 후원 소식에 은혜재단 이사장 유관재 목사(성광)는 “지구촌교회의 후원과 총회의 협조에 감사하며 이런 섬김을 통하여 한평생 주님의 교회를 섬기신 홀사모들이나 은퇴목회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며 “앞으로 은혜재단이 은퇴 목회자들의 처우를 좀 더 보살피며 교단의 교회를 위해 헌신한 많은 목회자들을 잘 섬길 계획”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강신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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