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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15회 인동 장씨ㅣ방송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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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牛渡江의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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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장씨침류정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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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 장씨 족보 문양 아랍 전자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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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 장씨 족보 문양 아랍 전자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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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 장씨 (상장군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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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본관[편집]

분파[편집]

인물[편집]

유적[편집]

집성촌[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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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동 장씨(仁同 張氏)유래 등

1. 인동 장씨(仁同 張氏) 시조(始祖) : 장금용(張金用)

2. 인동 장씨(仁同 張氏) 유래(由來) :

인동 장씨(仁同 張氏) 시조(始祖) 태사공(太師公) 장금용(張金用)은 장정필(張貞弼)의 후손(後孫)으로 전(傳)하나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없어 정확(正確)한 계대(系代)를 상고(詳考)할 수 없다.

그는 고려(高麗)때 삼중대광(三重大匡)·신호위(神號衛) 상장군(上將軍)을 역임(歷任)했고, 아들 선이 1072년(고려 문종 26) 금오위(金吾衛) 상장군(上將軍)에 올라 후손(後孫)들이 옥산(玉山)에 정착(定着) 세거(世居)하며 지명(地名)을 따라 본관(本貫)을 옥산(玉山)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다가 옥산(玉山)이 인동(仁同)으로 개칭(改稱)됨에 따라 인동(仁同)으로 관향(貫鄕)을 삼았다.문헌(文獻)에 의하면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시조(始祖) 장금용(張金用)을 기일세로 하여 여러 파(派)로 분류(分類)하고 있으나 경북(慶北) 인동(仁同) 본향(本鄕)에는 황상, 진평, 진가, 남산, 경파(硬派) 등(等) 다섯 파(派)의 자손(子孫)들이 집중(執中) 세거(世居)하고 있어 대체(大體)로 이 다섯 파(派)가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다.

3. 인동 장씨(仁同 張氏) 가문(家門)의 대표적(代表的) 인물(人物)

가문(家門)의 대표적(代表的)인 인물(人物)로는 장금용(張金用)의 증손(曾孫)인 국신이 봉정대부, 내사령, 직사관을 역임(歷任)하여 검교군기감사를 지낸 후손(後孫) 위와 함께 가문(家門)을 빛냈다.충렬왕(忠烈王) 때 직제학(直提學)을 역임(歷任)한 계(系)와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에 오른 길이 뛰어났고,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자 벼슬을 던지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두문동에 은거(隱居)한 안세와 태조(太祖)가 한성부(漢城府) 좌윤의 벼슬을 제수하고 회유했으나 절의를 지켜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은거(隱居) 생활(生活)로 일생(一生)을 마친 중양은 인동 장씨(仁同 張氏)가 자랑하는 절신(絶信)들이다.

1485년(성종 16) 별시(別試)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한 순손은 군수 중지의 아들로 정언, 판관 등을 지내고 춘추관(春秋館)의 편수관이 되어 [성종실록] 편찬(編纂)에 참여한 후 홍문관(弘文館)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는 앞서 직간을 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탄핵을 받아 원방에 부처되었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와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올랐다.당시 훈구파의 김안로와 함께 조광조(趙光祖) 일파인 신진사류를 축출(逐出)하려던 혐의로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했으나, 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를 거쳐 우의정(右議政)과 좌의정(左議政)을 지낸 후 1533년(중종 28) 영의정(領議政)이 되어 기로소에 들어갔다.

한편 연복군에 봉해진 말손은 세조(世祖) 때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고 여러 관직을 거친 후 성종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와 해주 목사(牧使)를 지냈으며, “1문 3의사”로 일컬어진 봉한 홍한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모두 의병(義兵)으로 활약(活躍)하여 많은 전공(戰功)을 세우고 함께 전사(戰死)한여 성주의 이양사에 제향되었다.

조선조(朝鮮朝)의 문신(文臣)이며 학자(學者)로도 유명(有名)한 현광은 선조(先祖) 때 학문(學文)과 덕행으로 천거(薦擧)되어 보은현감을 지내고, 이조참판(吏曹參判), 대사헌(大司憲), 공조판서(工曹判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等) 전후(前後) 20여 차례 벼슬에 임명(任命)되었으나 모두 사퇴(辭退)하고 오로지 학문(學文)에만 전념(專念)했다.그 후 인조(仁祖)의 부름을 받아 정치(政治)에 대(對)한 많은 조언(助言)을 하였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각 주, 군에 격문을 보내어 근왕병을 일으켰다.그는 학문(學文)에 있어서 덕은 도의 지선한 것이라고 논(論)하고, 이기설에 있어서는 이율곡(李栗谷)의 학설에 찬동하여 당대(當代)의 대표적(代表的)인 성리학(性理學)자로 추앙(推仰)받아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그의 문하(門下)에서는, 인동(仁同)의 동락서원과 선산의 여헌영당 등 여러 사우에 제향 되었다.인조(仁祖) 때 문과(文科)에 올라 숙종(肅宗) 때 우승지와 부제학(副提學),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낸 응일은 현광의 아들 (양자)로 성품이 청렴(淸廉)강직(强直)하여 이름났고, 경우(境遇)는 광해군(光海君) 때 폐모론이 일어나자 영남(嶺南) 유생(儒生)들과 이이첨(李爾瞻) 등을 탄핵(彈劾)하고, 인조반정(仁祖反正) 후에 벼슬에 임명(任命)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학문(學文)에만 전념(專念)했다.

용상의 아들인 지연은 경북(慶北) 상주(尙州) 출신(出身)으로 고종(高宗) 때 민비(閔妃)가 시해(弑害)되자 의병(義兵)의 궐기(蹶起)를 호소(呼訴)하는 격문(格文)을 각처(各處)에 보내는 구국(救國)운동(運動)에 앞장섰고, 진주(晋州)에서 경남일보(慶南日報)의 주필이 되어 매천 황현의 국치(國恥)를 통분(痛憤)한 절명시를 게재했다가 폐간(廢刊) 당하자 실의 끝에 사망(死亡)했다.이렇게 선조(先祖)들의 빛난 위업을 받들어, 독립운동(獨立運動)을 하다가 일경(日警)에게 체포(逮捕)되어 대구(大邱)의 감옥(監獄)에서 자결(自決)한 진홍과 한일합방(韓日合邦)을 비분(悲憤)하여 단식(單式) 끝에 순절(殉節)한 기석, 독립운동(獨立運動)가인 승언 등이 명문(名文)의 대(代)를 이었으며,

대한민국(大韓民國) 부통령(副統領)을 지낸 장면과 2대에서 5대까지 국회의원(國會議員)에 당선(當選)되고, 국회(國會) 부의장(副議長)을 역임(歷任)한 장택상, 그리고 부총리(副總理)를 지내고 대한체육회(大韓體育會)장 등을 역임(歷任)하며, 언론(言論), 정치(政治), 국민(國民) 보건(保健)에 공헌(貢獻)한 기영 등도 명문(名文) 인동 장씨(仁同 張氏)를 빛낸 자랑스런 후손(後孫)들이다.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본관(本貫)은 같으나 시조(始祖)를 달리하는 두 계(系)가 있다.

4. 인동 장씨(仁同 張氏) 장금용(張金用) 계(系)

시조(始祖) 장금용(張金用)은 고려(高麗) 때 상장군을 지냈다.

후손(後孫)들이 인동(仁同)에 살면서 본관(本貫)을 인동(仁同)으로 삼았다. 인동(仁同)은 경북(慶北) 구미시 인동동(仁同洞)의 지명(地名)이다.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후손(後孫)이 번창(繁昌)하면서 결성, 울진 등 여러 본관(本貫)으로 갈라진다.

인동 장씨(仁同 張氏)의 대표적(代表的)인 집성촌(集成村)은인동 장씨(仁同 張氏) “천년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경북(慶北) 구미시 인동동(仁同洞)을 꼽는다.

시조(始祖) 장금용(張金用)이 고려초(高麗初)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이래 38대를 내려오면서 한 때는 인근에 2천여호가 살았다.

학문에서 “인동 장씨(仁同 張氏)”를 대표(代表)하는 인물(人物)은 조선조(朝鮮朝) 중엽의 성리학자(性理學者) 장두광이다.

그는 선조(先祖) 28년 학문(學文)과 덕행(德行)으로 천거(薦擧)되어 보은현감이 됐으나 곧 물러났다.

그 뒤 이조판서(吏曹判書), 대사헌(大司憲) 등 벼슬로 20여 차례나 조정에서 부르는데도 나아가지 않고 인동(仁同) 향리에 묻혀 성리학(性理學) 연구(硏究)에 몰두했다.

율곡(栗谷)과 퇴계와는 또 다른 독자적(獨自的) 성리학설(性理學說)로 최근(最近) 국내(國內) 학계(學界)는 물론 일본(日本), 중국(中國)에서도 연구(硏究)되고 있다.

한말에 우뚝 선 인물(人物)은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명사설로 잘 알려진 위암 장지연이다.

위암은 고종 31년(1894년) 진사시에 합격한다. 다음해 을미사변 때 민비가 살해되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지어 각처에 보냈다.

위암이 언론(言論)에 투신(投身)한 것은 비교적(比較的) 늦은 36세가 되던 1899년으로 격일간지 시사총보가 시발점이다.

이어 황성신문사의 주필(主筆)로 항일구국(抗日救國)의 필봉을 휘두르다 1901년 황성신문사 사장(社長)에 취임했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締結)되자 황성신문에 그 유명(有名)한 사설을 써서 일본인(日本人)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일로 위암은 일본(日本) 관헌(官憲)에 체포(逮捕)돼 3개월간 투옥(投獄)되었다.

5. 인동 장씨(仁同 張氏) 장계(張桂) 계(系)

시조(始祖) 장계(張桂)는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때 등과(登科)하여 예문관대제학(藝文館

大提學)을 지냈으며 인동군(仁同君)에 봉(封)해졌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인동(仁同)을 본관(本貫)으로 삼았다. 장말손은 세조(世祖) 때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등(等)을 지냈으며 세조(世祖) 11년에는 여진족(女眞族)을 격퇴(擊退)시켰다. 세조(世祖) 12년 이시애(李施愛)가 길주에서 난을 일으키자 강순, 남이와 함께 이를 평정했다.

6. 인동 장씨(仁同 張氏) 계파(系派) 및 분파(分派)

동정공파(同正公派)

주부공파(主簿公派)

연복군파(延福君派)

문숙공파(文肅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부사공파(府使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

용천파(龍川派)

구성파(龜城派)

연기파(燕岐派)

– 장금용계 ▲종파 ▲청주파 ▲울진파 ▲양양파 ▲초계파 ▲진평파 ▲의흥파 ▲진가파 ▲영덕파 ▲남산파 ▲금구파 ▲고흥파 ▲경파 ▲감무공파 ▲안청파 ▲영광파 ▲함평파 ▲흥해파 ▲화순파

– 장계계 ▲동정공파 ▲주부공파 ▲연복군파 ▲문숙공파 ▲승지공파 ▲부사공파 ▲판관공파 ▲용천파 ▲구성파 ▲연기파

직제학계의 계파는?

동정공파, 안양공파, 주부공파, 판관공파, 승지공파, 부사공파, 송암공파(영월공파), 군수공파, 연복군파 등등 입니다.

7.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두개의 계통이 아니라.

상장군계, 직제학계, 문숙공계, 장연좌계, 장수면계, 예빈경계 총 6계열로 나뉘어져있고 현재 상장군계와 직제학계만 찾아볼 수 있고 나머지계열은 자료가 안나와 있습니다.

인동 장씨<장계계>(仁同 張氏<張桂系>).

시조 장 계(張 桂)는 1305년(충렬왕 31)국학진사. 권지도평의 녹사. 동 진사에 급제하여 진현전 직제학을 거쳐 금자광록대부 예문관 대제학에 이르고 옥산군(옥산은 인동의 별호)에 봉해졌다.

그는 도시조 장정필의 14세손으로 인동현의 남쪽 발영전에 세거지를 마련했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그를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인동(仁同)으로 하였다.

시조의 묘소는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 발영전에 있다.

주요 파계로는 6세 장안량(張安良)의 아들 형제 대에서,

동정공<선손>파(同正公<善孫>派),

주부공<경손>파(主簿公<敬孫>派),

안양공<말손>파(安襄公<末孫>派),

문숙공<순손>파(文肅公<順孫>派),

승지공<종손>파(承旨公<終孫>派)로 갈라지고,

장안량의 아우 장안식(張安式)의 아들 형제가,

부사공<이화>파(府事公<以和>派),

판관공<의손>파(判官公<義孫>派)로 갈린다.

그 외에 용성파, 연기파, 귀성파 등이 있다.

상장군(上將軍) 장금용(張金用)계 인동 장씨 시조(始祖)는 고려(高麗)의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며 그의 아들인 장선(張善)이 1072년(고려 문종 26년) 금오위 상장군(金吾衛 上將軍)에 올라 후손(後孫)들이 옥산(玉山)에 정착하여 본관(本貫)을 옥산으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에 옥산이 인동(仁同)으로 개칭됨에 따라 인동을 관향(貫鄕)으로 삼았으나 일부는 옥산을 본관으로 고집하며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 옥산 장씨는 상장군계 인동 장씨와 같은 집안이다.

분파(分派) 대동보(大同譜)에는 27개 분파가 있었으나 안주파(安州派)는 북한(北韓)에 거주(居住)하는 관계(關係)로 거황(居況)을 알 수 없고 성주파(城州派)는 세대(世代)가 끊어졌다고 하여 현재(現在)는 25개 분파(分派)만 전해온다.

종파(宗派) : 시조(始祖) 장금용(張金用)의 직계(直系) 후손(後孫)으로 중리파(中里派)라고도 한다.

남산파(南山派) : 15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우(張俁) 조선(朝鮮)초(初) 중직대부(中直大夫) 사천진병마첨절제사행현감(泗川鎭兵馬僉節制使行縣監) 역임(歷任)

진가파(眞佳派) : 16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맹창(張孟倡) 조선초(朝鮮初) 예빈시(禮賓寺) 참봉(參奉) 역임(歷任)

진평파(眞坪派) : 17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신손(張信孫) 조선(朝鮮) 중종(中宗) 2년(1507) 진사(進士) 입격(入格)

황상파(凰顙派) : 18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잠(張潛) 조선(朝鮮) 중종(中宗) 진사(進士) 입격(入格)

함평파(咸平派) : 6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백림(張百林) 고려조(高麗朝)에 우참찬(右參贊)을 역임(歷任)

흥해파(興海派) : 6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세규(張世圭) 고려조(高麗朝)에 직장영동정(直長令同正) 역임(歷任)

화순파(和順派) : 6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세재(張世榟) 고려조(高麗朝)에 우교위(右校尉) 역임(歷任)

청안파(淸安派) : 9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인계(張仁溪) 고려조(高麗朝)에 통훈대부(通訓大夫)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역임(歷任)

영광파(靈光派) : 9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인연(張仁璉) 고려조(高麗朝)에 소윤(少尹) 역임(歷任)

청주파(淸州派) : 10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득선(張得宣)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때 사순위중랑장(司巡衛中郞將) 역임(歷任), 원명군(元明軍)의 침입(侵入)을 막아 싸우다 순국(殉國)한 공(功)으로 충숙왕(忠肅王)이 평장사(平章事)로 증직(贈職)하고 기성군(箕城君)에 봉(封)하였다.

가평파(加平派) : 11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게(張垍) 고려조(高麗朝)에 감무(監務) 역임(歷任), 장계의 관직명(官職名)을 인용(認容)하여 감무공파(監務公派)라고도 한다.

경파(京派) : 13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백(張伯) 고려말(高麗末)에 태상경(太常卿) 역임(歷任), 京派(경파) (13세분파) 張伯(장백) : 高麗末(고려말)에 文臣(문신)으로 太常卿(태상경)(태상경은 고려때 祭祀(제사)와 贈諡(증시)를 맡아보는 관청. 卿(경)은 우두머리이다)을 역임하였습니다. 墓所(묘소)는 京畿道(경기도) 坡州郡(파주군) 府東(부동) 10里許(리허) 鳴鶴山(명학산)에 있으며. 光城府院君(광성부원군) 金萬基(김만기)가 지은 墓表(묘표) 있으며 坡州郡(파주군) 內面(내면) 延豊(연풍) 里(리) 龍池洞(용지동)에 鶴山祠(학산사)를 세워 祭享(제향)하고 있습니다. 장백의 관직명(官職名)을 인용(認容)하여태상경공파(太常卿公派)라고도 합니다.

고흥파(高興派) : 13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중일(張仲日) 고려말 내사(內寺)를 역임(歷任)하고 조선초(朝鮮初) 한림(翰林)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금구파(金溝派) : 14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기건(張紀乾) 조선조(朝鮮朝) 진안현감(鎭安縣監) 역임(歷任)

의흥파(義興派) : 16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맹우(張孟佑) 조선조(朝鮮朝) 선무랑(宣務郞) 역임(歷任)

영덕파(盈德派) : 16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맹선(張孟善)

양월파(良月派) : 16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맹순(張孟洵) 조선조(朝鮮朝) 예빈사(禮賓寺) 참봉(參奉) 역임(歷任)

안성파(安城派) : 16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맹희(張孟僖) 조선조(朝鮮朝) 금화서(禁火署) 별좌(別坐) 역임(歷任)

양양파(襄陽派) : 17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달손(張達孫) 조선조(朝鮮朝) 훈도(訓導) 역임(歷任)

초계파(草溪派) : 17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지손(張智孫) 조선조(朝鮮朝)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역임(歷任)

양주파(楊州派) : 17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석손(張碩孫) 조선조 도사(都事) 역임, 通政大夫(통정대부) 左通禮(좌통례)로 증직(贈職)

호명파(虎鳴派) : 18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도(張濤)

울진파(蔚珍派) : 18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연(張演)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贈職)

무안파(務安派) : 18세 분파(分派), 중시조(中始祖) 장부개(張傅凱) 조선(朝鮮) 성종때 헌납(獻納), 보국숭록대부영돈영부사(輔國崇錄大夫領敦寧府事) 역임

직제학(直提學) 장계(張桂)계 인동 장씨 충렬왕(忠烈王) 31년(1305년) 국자진사(國子進士)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에 등과(登科)하여 보문각(寶文閣) 직제학(直提學)을 지내고 옥산공(玉山公)에 봉해졌던 장계(張桂)를 시조(始祖)로 삼아 인동현(仁同縣) 발영전(拔英田)에 전거(奠居)하였다. 조선초(朝鮮初)에 5개 파로 분파(分派)되어 임지(任地)에 따라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주(榮州), 예천(醴泉), 문경(聞慶)과 충청북도(忠淸北道) 단양 지역(丹陽地域)으로 옮겨 살았다.

분파(分派)송암공파(松菴公派): 중시조(中始祖) 장구주(張九疇)이며 장계(張桂)의 10세손으로 강원도(江原道) 영월 군수(寧越郡守)를 역임(歷任)하였으며 송암공파, 영월파, 군수공파라고 불리나 충북(忠北) 제천시 청풍면(淸風面) 고명산에서 말년(末年)을 보냈다고 청풍파(淸風派)로도 불린다.

판관공파(判官公派) : 중시조(中始祖)는 장의손(張義孫)으로 장계(張桂)의 7세손으로 판관(判官) 역임(歷任).

안양공파(安襄公派) : 중시조(中始祖)는 장말손(張末孫)이며 장안량(張安良)의 삼남으로 시호(諡號)는 안양(安襄), 연복군(延福君)에 봉(封)해짐. 조선(朝鮮) 세조(世祖) 때 문과(文科)에 급제(及第), 승문원 박사(承文院 博士),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을 거쳐 함길도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지내다 1465년 여진족(女眞族)을 격퇴(擊退)한 공(功)으로 예조좌랑(禮曺佐郞) 경차관(敬差官)이 되었다. 1467년(세조 13년) 조석문(曺錫文) 등과 함께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녹훈되고 내첨시첨정에 올랐다. 1470년(성종 1년) 장악원 부정, 장악원정을 거쳐 해주 목사를 지내고 1482년 연복군(延福君 : 연복은 인동의 별호)에 봉(封)해졌다.

주부공파(主簿公派) : 중시조(中始祖)는 장경손(張敬孫)으로 장계(張桂)의 7세손(世孫) 장안량의 차남, 사재감 주부(司宰監 注簿)를 역임(歷任).

동정공파(同正公派) : 중시조(中始祖)는 장선손(張善孫)으로 장계(張桂)의 7세손(世孫) 장안량의 장남(長男), 승훈랑(承訓郞)으로 의정부(議政府) 첨서와 녹사(錄事)를 역임.

문충공(文忠公) 장계임(張繼任)계 인동 장씨 문숙공(文肅公) 장순손(張順孫)계)고려 충렬왕(忠烈王)때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역임(歷任)하고 후에 삼중대광도첨의(三重大匡都僉議), 정승(政丞), 춘추관사(春秋舘事)의 증직(贈職)이 내린 문충공(文忠公) 장계임(張繼任)을 시조(始祖)로 하는데 이는 문충공(文忠公)의 8세손(世孫) 문숙공(文肅公) 장순손(張順孫)이 중종 17년(1522) 병조판서(兵曹判書)때 그 아버지 증좌찬성(贈左贊成) 장중지(張重智)와 어머니 정경부인(貞敬夫人) 개성고씨의 묘비문(墓碑文)에 첫 선조(先祖)로 기록(記錄)한 것에서 유래(由來)한다.

분파(分派)선파(僐派) 또는 생원파(生員派) : 중시조(中始祖) 장선(張僐) 고려(高麗)때 생원(生員)이다.

국로파(國老派)

종손파(終孫派) 또는 도정승지공파(都政丞旨公派) : 중시조(中始祖) 장종손(張終孫)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좌승지(左承旨)를 역임(歷任)

경량파(景良派) 또는 증좌승지공파(贈左承旨公派) : 중시조(中始祖) 장경량(張景良) 조선조에 음보(蔭補)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연천현감(漣川縣監)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追贈)

경안파(景安派) 또는 증이조판서공파(贈吏曹判書公派) : 중시조(中始祖) 장경안(張景安) 조선조(朝鮮朝)에 음직(蔭職)으로 창신교위(彰信校尉)에 오르고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

경복파(景福派) 또는 문장영공파 : 중시조(中始祖) 장경복(張景福) 조선조(朝鮮朝)에 음직(蔭職)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歷任) 계지파(季智派)

사신파(士新派) 또는 부사직공파(副司直公派) : 중시조(中始祖) 장사신(張士新) 가선행룡양위부사직(嘉善行龍驤衛副司直)

만선파(萬善派) 또는 통정대부공파(通政大夫公派) : 중시조(中始祖) 장만선(張萬善) 통정대부(通政大夫)

안동 장씨(安東 張氏) 장수명(張壽命)계 인동 장씨 안동 장씨(安東 張氏)계의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장태사(張太師)의 장손(長孫) 장금선(張錦善)의 후손(後孫) 장수명(張壽命)계로 본관(本貫)을 안동(安東)과 인동(仁同)으로 쓰는데 함경도(咸鏡道)의 함흥(咸興)과 영흥(永興), 북청 지방(北靑地方)에 사는 장씨(張氏)는 옥산 장씨(玉山 張氏)로 족보(族譜)를 해오다가 뒤에 인동(仁同)으로 개관(改貫)하였다.

흥성 장씨(興城 張氏) 장연좌(張延佐)계 인동 장씨 흥성 장씨(興城 張氏) 시조(始祖)인 시랑(侍郞) 장유(張儒)의 둘째아들 호부상서(戶部尙書) 장연좌(張延佐) 계의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장연좌(張延佐)가 옥산군(玉山君)에 봉(封)해졌다하여 옥산 장씨(玉山 張氏)라 하다가 관적(貫籍)을 인동(仁同)으로 하였다고 한다. 흥성 장씨(興城 張氏)와 족보(族譜)를 같이하고 있다.

예빈경(禮賓卿) 장용서(張龍瑞)계 인동 장씨(仁同 張氏)고려말(高麗末) 예빈경(禮賓卿) 장용서(張龍瑞=혹은 用瑞)계(系)의 인동 장씨(仁同張氏)는 과거(過去) 장연(張淵)이라고도 하고 주로 북한(北韓)의 평안도(平安道)에 많이 살았는데 8.15 해방후(解放後) 월남(越南)하였으며 본관(本貫)을 옥산(玉山)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인동(仁同)으로 많이 쓴다.

인동 장씨(仁同 張氏) 유명인(有名人)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유명(有名) 인물(人物)로는 인조(仁祖) 때 팔도도원수 및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歷任)했으며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일등공신에 책록되었던 장만(張晩)은 보국숭록대부에 올라 옥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지략으로 북변방어와 신흥 청국세력에 대한 정치와 외교에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한편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증산 현령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에 봉해졌던 장돈(張暾)은 병자호란 때 안주성에서 좌영장(左營將)개천군수로서 호병(胡兵)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영돈령부사에 추증되었으며, 장사진(張士珍)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군위에서 왜군(倭軍)과 싸우다가 한쪽 팔을 잘렸으나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순절하여, 성주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약했던 장봉한(張鳳翰), 상주 판관으로 전사한 장홍한(張鴻翰) 등과 함께 명망을 떨쳤다

덕령부윤 장안세(張安世)의 후손(後孫)으로서 대성리학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문강공(文康公)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선생은 당세에 문명을 떨쳤던 퇴계 이황 선생의 학맥(學脈)이자 한강 정구(鄭逑) 선생의 문인(門人)이자 조카 사위이다.

문강공 여헌 장현광 선생은 1595년(선조 28) 학행으로 천거되어 나이 42세에 보은현감이 되었는데 약 21일간 관직에 있다가 사임하고 물러난 후 형조좌랑, 순천 郡守, 이조참판, 대사헌, 공조판서 등 20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오직 독서와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그밖의 인물로는 이인좌의 난에 훈공을 세우고 훈련대장을 역임한 장붕익(張鵬翼)과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장태소(張泰紹), 숙종 때 우승지와 대사간을 거쳐 부제학을 지내고 명신으로 이름났던 장응일(張應一), 병자호란 때 인동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장경우(張慶遇), 형조판서에 올랐던 장석룡(張錫龍) 등이 유명했다.

구한말에 와서는 장태수(張泰秀)가 한일합방(韓日合邦)의 울분으로 비분단식(悲憤斷食) 끝에 순국하여 이름을 떨쳤고, 근대에 와서는 대한매일신보주필을 지낸 장지연(張志淵)과 국문학자(國文學者) 장지영(張志暎), 민주당을 조직하여 부통령(副統領)에 당선(當選)되었던 운석 장면(張勉)이 대표적(代表的)이고, 조국광복(祖國光復) 운동(運動)을 주도했고 국무총리(國務總理)를 지냈던 창랑 장택상(張澤相) 등이 인동 장씨를 더욱 빛냈다

현대의 유명 인물로는 연예계로는 배우 장근석, 가수 장윤정, 장우혁, 2PM의 장우영, 인피니트의 장동우 등이 있고, 운동선수로는 역도선수 장미란이 있다.

8. 인동 장씨(仁同 張氏) 주요(主要) 세거지(世居地)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중동

– 경상북도 금릉군 대덕면 연화리

– 경상북도 영풍군 평은면 금광리

–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고예리

–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 동양동·원송동

– 평안북도 박천군 청용면 대화동

– 평안북도 귀성군 방현면 변산동

8. 인동 장씨(仁同 張氏) 인물(人物)

장금용(張金用)

인동 장씨(仁同 張氏)의 시조(始祖)로 모시는 高麗(고려) 開國初(개국초)에 柱石之臣(주석지신)이다. 三重大匡(삼중대광) 神虎衛(신호위) 上將軍(상장군)을 역임하였으며. 遺墟址(유허지)인 仁同(인동)에 玉溪祠(옥계사)를 세워 每年(매년) 淸明日(청명일)에 祭享(제향) 하고 있다. 境內(경내)에는 遺墟碑(유허비)가 있다. 神虎衛(신호위)는 高麗(고려)때 中央軍(중앙군)으로 國防(국방)을 담당한 2軍(군)6衛(위)의 하나로 保勝(보승)5領(령) 精勇(정용)2 領(령)으로 組織(조직) 되었으며 領(영)은 正規軍(정규군) 1.000名(명)이다. 核心衛(핵심위)로서 首都(수도) 開京(개경)의 守備(수비)와 아울러 國境(국경) 防衛(방위)의 任務(임무)를 맡았으며 上將軍(상장군)은 正(정)3品(품)으로 2君(군) 6衛(위) 의最高 司令官(사령관)으로 軍士(군사)를 統率(통솔) 하였다.

장석규(張奭圭)

字(자)는 而靜(이정), 紀乾(기건)의 后(후), 進士(진사) 榮肅(영숙)의 子(자), 高宗(고종)31年甲午(년갑오)(1894)에 式年進士試(식년진사시)에 入格(입격)하였다.

장복규(張復圭)

字(자)는 公三(공삼), 號(호)는 鶴雲(학운), 紀乾(기건)의 后(후), 生員(생원) 榮國(영국)의 子(자), 高宗(고종)22年乙酉(년을유)(1885)에 增廣生員試壯元(증광생원시장원)에 入格(입격)하고 宮內府主事(궁내부주사), 昌平郡守(창평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장영택(張榮澤)

字(자)는 文敬(문경), 號(호)는 風軒(풍헌), 紀乾(기건)의 后(후), 副卿泰秀(부경태수)의 子(자), 光武辛丑年(광무신축년)(1901)에 齊陵(제능)는參奉에 除授(제수)된후 蒙恩(몽은)으로 承訓郞(승훈랑)에 陞敍(승서)되었다.

장영순(張榮淳)

字(자)는 公彬(공빈),號(호)는 後素(후소), 紀乾(기건)의 后(후), 鶴川鼎秀(학천정수)의 子(자), 光武辛丑年(광무신축년)(1901)에 昌陵參奉(창능참봉)에 除授(제수)된후 通政(통정)에 올라 秘書丞(비서승), 奉常寺副提學(봉상사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장동수(張東秀)

字(자)는 方勳(방훈), 紀乾(기건)의 后(후), 士人漢洛(사인한락)의 子(자), 通政大夫(통정대부)에 올라 秘書監丞(비서감승)을 역임하였다.

장겸수(張謙秀)

字(자)는 聖益(성익), 號(호)는 雲坡(운파), 紀乾(기건)의 后(후), 僉中樞(첨중추) 漢斗(한두)의 子(자), 蔭職(음직)으로 繕工監假監役(선공감가감역), 司憲府監察(사헌부감찰)등을 거쳐 通政大夫(통정대부)에 올라 中樞院議官(중추원의관)을 역임하였다.

장영수(張榮玉)

字(자)는 寶璟(보경), 號(호)는 海史(해사), 紀乾(기건)의 后(후), 梅軒有秀(매헌유수)의 子(자), 生父鼎秀(생부정수), 高宗(고종)25年戊子(년무자)(1888)에 增廣進士試(증광진사시)에 入格(입격)하고 通政大夫(통정대부) 秘書監丞(비서감승)을 역임하였다.

장영직(張榮稷)

字(자)는 舜命(순명), 號(호)는 敦菴(돈암), 紀乾(기건)의 后(후), 鶴川(학천) 鼎秀(정수)의 子(자), 高宗(고종)22年(년)(1885)에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여 承文院(승문원) 副正字(부정자), 副司果(부사과), 成均館典籍(성균관전적)(通訓(통훈)), 司諫院正言(사간원정언), 司憲府持平(사헌부지평), 通禮(통례), 司藝(사예), 弘文館侍讀(홍문관시독)등을 역임하였다.

장영덕(張榮德)

字(자)는 潤之(윤지), 號(호)는 湖隱(호은), 紀乾(기건)의 后(후), 鶴川鼎秀(학천정수)의 子(자), 高宗(고종)17年庚辰(년경진)(1880)에 增廣生員試(증광생원시)에 입격하였다.

장영국(張榮國)

字(자)는 景觀(경관), 號(호)는 九溪(구계), 紀乾(기건)의 后(후), 鶴川(학천) 鼎秀(정수)의 子(자), 高宗(고종)11年甲戌(년갑술)(1874)에 增廣生員試(증광생원시)에 入格(입격)하였고 珍山郡守(진산군수), 通政大夫鎭安郡守(통정대부진안군수) 등을 역임하고 嘉善大夫(가선대부)에 陞敍(승서)되었다.

장영숙(張榮肅)

字(자)는 若雨(약우), 號(호)는 志湖(지호), 紀乾(기건)의 后(후), 生員觀秀(생원관수)의 子(자), 高宗(고종)7年庚午(년경오)(1870)에 式年進士試(식년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장관수(張觀秀)

字(자)는 達(달) , 號(호)는 松磵(송간), 紀乾(기건)의 后(후), 無憂翁漢房(무우옹한방)의 子(자), 生父(생부)는 漢斗(한두), 高宗(고종)4年丁卯(년정묘)(1867)에 式年生員試(식년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孝行(효행)이 지극하였다.

장복수(張復秀)

字(자)는 聖有(성유), 號(호)는 竹軒(죽헌), 紀乾(기건)의 后(후), 生員(생원) 漢奎(한규)의 子(자), 高宗(고종)2年乙丑(년을축)(1865)에 式年進士試(식년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장한두(張漢斗)

字(자)는 士吉(사길), 號(호)는 三秀軒(삼수헌), 紀乾(기건)의 后(후), 杏齋錫輔(행재석보)의 子(자), 哲宗(철종)9年戊午(년무오)(1858)에 式年生員試(식년생원시)에 입격하고, 僉知中樞府事(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內部協辦(내부협판)(嘉善(가선))에 贈職(증직)되었다.

장한규(張漢奎)

字(자)는 乃瑞(내서), 號(호)는 海樵(해초), 紀乾(기건)의 后(후), 杏齋錫輔(행재석보)의 子(자), 憲宗(헌종)14年戊申(년무신)(1848)에 增廣生員試(증광생원시)에 入格(입격)하고 通政大夫中樞府事(통정대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장한진(張漢軫)

字(자)는 孝必(효필), 號(호)는 三秀軒(삼수헌), 紀乾(기건)의 后(후), 杏齋錫輔(행재석보)의 子(자), 憲宗元年乙未(헌종원년을미)(1835)에 增廣進士試(증광진사시)에 入格(입격)하여 司憲府監察(사헌부감찰), 敦寧府都正(돈령부도정)을 역임하였다.

장진유(張鎭維)

字(자)는 定甫(정보), 號(호)는 玄岩(현암), 孝誠(효성)이 出天(출천)하여 祖母憂(조모우)에 斷指(단지) 注血(주혈)하고 母病(모병)에 家(가) 人(인)이 칼을 감추니 손가락를 깨물어 注血(주혈)하고 居憂盡禮(거우진례) 奉祀克敬(봉사극경) 杜門讀書(두문독서)하 여 以孝行學業(이효행학업)으로 累登鄕貢(루등향공)하였다. 事實(사실)이 金溝邑誌(금구읍지)에 실려있다.

장부흥(張復興)

字(자)는 子纓(자영), 紀乾(기건)의 后(후), 乙世(을세)의 子(자), 掌樂院主簿(장악원주부)를 역임하였으며 嘉善大夫(가선대부)에 贈職(증직)되었다.

장을세(張乙世)

字(자)는 東仲(동중), 紀乾(기건)의 后(후), 夢說(몽설)의 子(자), 司圃署直長(사포서직장)을 역임하였으며 通政大夫戶(통정대부호) 曹參議(조참의)에 陞敍(승서)되었다. 등 353명의 인물이 있다.

9. 인동 장씨(仁同 張氏) 인구수(人口數)

2000년 통계청에 의하면 인동 장씨는 184,863가구 총 591,315명인 것으로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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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 장씨 족보 문양 아랍 전자 족보

– 인동 장씨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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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장씨남산파세보仁同張氏南山派世譜. 仁同張氏南山派世 인동장씨남산파족보仁同張氏南山波族譜 인동장씨태상경공파세보仁同張氏太常卿公派世譜. 인동

족보나라 · June 13, 2017 ·. 인동장씨 인동장씨는 상장군 장금용張金用계, 직제학 장계張桂계로 나뉜다. 장금용은 고려 때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했다. 족보나라

인동장씨 황상파 종친회 ​ 張씨는 본관을 막론하고 기원을 중국으로 하며 1억 수천만 인구를 가진 세계 최대성씨이다. ​ 4,700년 전 최초 황제 공손 헌원의 아홉째아들의 세계사, 동아시아사 인동장씨의 역사 및 황상파 족보, 태평요술을 이은

– 인동 장씨 문양

인동장씨는 인동장씨仁同張氏는 지금의 칠곡지역의 인동을 관향으로 삼고 있는 씨족이다. 인동은 예전에 옥산으로 불렸기 때문에 옥산장씨로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55 인동장씨仁同張氏

인동 장씨仁同 張氏 시조始祖 장금용張金用은 장정필의 후손後孫 活로 일생一生을 마친 중양은 인동장씨仁同 張氏가 자랑하는 절신 누락된 검색어 문양 인동장씨 총정리

부인인 인동장씨가 왕실에서 양조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400년동안 14대에 걸쳐 연안이씨 가문에 백일주의 비법이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 백일주의 설날선물로 계룡백일주 추천드립니다.

– 인동 장씨 아랍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仁同洞을 관향貫鄕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인동 장씨에는 상장군上將軍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시조‎ ‎장금용張金用, 장계張桂인구2015년‎ ‎666,652명‎본관 · ‎상장군 장금용계 인동 장씨 · ‎ 대표 인물 · ‎ 역대 인물 인동 장씨

덕수 장씨의 시조 장순용은 아랍이슬람계의 사람으로 고려 고종 때에, 절강 장씨 그 중에서는 인동장씨仁同張氏가 가장 많으며,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인동장張 위아래 세상 끝난 뒤에도

중국도 가장 많은 이씨, 왕씨, 장씨를 모두 합쳐봐야 20% 정도다. . 성이 없는 나라 아랍 . 조선시대 안동장씨 및 인동장씨 과거시험 합격자. 우리나라 사람들의 90% 이상은 가짜 성씨

장씨와 장경을 시조로 하는 흥성 장씨 일족과 장금용, 장계를 시조로 하는 인동 장씨장해빈張海濱가 있다. 장순용은 회회계아랍계의 사람으로 고려 고종 때에 안동장씨 인동장씨 흥성장씨 덕수장씨 절강장씨

ㅎㅎㅎ 아랍 여인들로 변신성공! 못말리는 여인들..ㅋㅋㅋ 돌격! 둔덕을 올라가자맞아요 어서 올라오세요! 효남씨가 손수건을 흔들며 손짓하네요 둔덕을 올라가니 연암산 둔덕산^^아산지맥산행

– 인동 장씨 전자 족보

Get this from a library! 인동장씨족보 仁同張氏族譜, 7권, 9301922. 인동장씨족보 仁同張氏族譜, 7권, 9301922 Microform, 1987

그러나 조선말에 옥산이 인동으로 바뀌어 인동 장씨로 하였으나 일부는 옥산을 본관으로 고집하며 사용하고 있다.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장주張 인동장씨仁同張氏, 옥산

6예빈경禮賓卿 장용서張龍瑞 계 고려말 예빈경 장용서張龍瑞 혹은 用瑞계의 인동 장씨는 과거 황해도 장연張淵과 주로 북한의 평안도에 많이 살았다. 8.15 해방 후 한국의 성씨 인동仁同옥산玉山 장張씨

서수용 電子族譜 정축보CD수원 백씨 전자족보CDROM인동 장씨 으뜸 전자 족보 소개 전자족보의 장점으뜸 전자족보파주염씨 보학譜學 연구가 서수용 “팔고조도 보학 연구가 서수용조용헌

인동 장씨 (상장군계)

역사 [ 편집 ]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고려 초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하였다. 상장군공 이래 후손들이 옥산에 세거하면서 지명에 따라 본관을 옥산(玉山)으로 하였다.[1] 옥산의 정식 행정구역 명칭이 인동으로 변경되어 지금은 본관을 인동(仁同)으로 쓰고 있다. 인동 본향에서는 역사적인 이름인 연유로 옥산을 본관으로 고집하는 후손도 있다. 옥산 장씨(玉山 張氏) 또한 상장군계 인동 장씨에 속한다. 옥산화벌(玉山華閥)로 알려져 있다.[2]

본관 [ 편집 ]

인동(仁同)은 경상북도 구미시 및 칠곡군에 위치하는 옛 인동군(仁同郡)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3]

분파 [ 편집 ]

대동보에는 27개 분파가 있었으나 안주파(安州派)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거주하는 관계로 거황을 알 수 없고 성주파(城州派)는 세대가 끊어졌다고 하여 현재는 25개 분파만 존재한다.

분파 보기 종파(宗派) :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직계 후손으로 중리파(中里派)로도 불린다.

남산파(南山派) : 분파조는 15세 장우(張俁)이며 조선조(朝鮮朝) 중직대부(中直大夫) 사천진병마첨절제사행현감(泗川鎭兵馬僉節制使行縣監)을 역임하였다.

진가파(眞佳派) : 분파조는 16세 장맹창(張孟倡)이며 조선조 예빈시(禮賓寺)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진평파(眞坪派) : 분파조는 17세 장신손(張信孫)이며 조선조 중종 2년 진사(進士)에 입격하였다.

황상파(凰顙派) : 분파조는 18세 장잠(張潛)이며 대유학자로 조선조 중종 재위시 진사(進士)에 입격하였다.

함평파(咸平派) : 분파조는 6세 장백림(張百林)이며 고려조(高麗朝) 우참찬(右參贊)을 역임하였다.

흥해파(興海派) : 분파조는 6세 장세규(張世圭)이며 고려조 직장영동정(直長令同正)을 역임하였다.

화순파(和順派) : 분파조는 6세 장세재(張世榟)이며 고려조 우교위(右校尉)를 역임하였다.

청안파(淸安派) : 분파조는 9세 장인계(張仁溪)이며 고려조 통훈대부(通訓大夫)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를 역임하였다.

영광파(靈光派) : 분파조는 9세 장인연(張仁璉)이며 고려조 소윤(少尹)을 역임하였다.

청주파(淸州派) : 분파조는 10세 장득선(張得宣)이며 고려조 충렬왕(忠烈王) 재위시 사순위중랑장(司巡衛中郞將)을 역임하였으며 평장사(平章事)로 증직(贈職)되고 기성군(箕城君)에 봉해졌다.

가평파(加平派) : 분파조는 11세 장게(張垍)이며 고려조 감무(監務)를 역임하였으며 감무공파(監務公派)로도 불린다.

경파(京派) : 분파조는 13세 장백(張伯)이며 고려말 태상경(太常卿)을 역임하였으며 태상경공파(太常卿公派)로도 불린다.

고흥파(高興派) : 분파조는 13세 장중일(張仲日)이며 고려말 내사(內寺)를 역임하고 조선초 한림(翰林)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불취하였다.

금구파(金溝派) : 분파조는 14세 장기건(張紀乾)이며 조선조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진안현감(鎭安縣監)을 역임하였다.

의흥파(義興派) : 분파조는 16세 장맹우(張孟佑)이며 조선조 선무랑(宣務郞)을 역임하였다.

영덕파(盈德派) : 분파조는 16세 장맹선(張孟善)이며 조선조 문장가 무전(文章家無傳)을 역임하였다.

양월파(良月派) : 분파조는 16세 장맹순(張孟洵)이며 조선조 예빈사(禮賓寺)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안성파(安城派) : 분파조는 16세 장맹희(張孟僖)이며 조선조 금화서(禁火署) 별좌(別坐)를 역임하였다.

양양파(襄陽派) : 분파조는 17세 장달손(張達孫)이며 조선조 훈도(訓導)를 역임하였다.

초계파(草溪派) : 분파조는 17세 장지손(張智孫)이며 조선조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양주파(楊州派) : 분파조는 17세 장석손(張碩孫)이며 조선조 도사(都事)를 역임하였으며 通政大夫(통정대부) 左通禮(좌통례)로 증직되었다.

호명파(虎鳴派) : 분파조는 18세 장도(張濤)이며 조선조 문장가(文章家)이다.

울진파(蔚珍派) : 분파조는 18세 장연(張演)이며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되었다.

무안파(務安派) : 분파조는 18세 장부개(張傅凱)이며 조선조 성종 재위시 헌납(獻納)과 보국숭록대부영돈영부사(輔國崇錄大夫領敦寧府事)를 역임하였다.

인물 [ 편집 ]

과거 급제자 수 조선조 과거 급제자 415명 [문과 50명 (장원2명·아원2명), 무과 154명 (장원5명·아원1명), 진사시 79명, 생원시 77명 (장원2명), 역과 23명 (장원7명), 의과 9명, 음양과 1명, 율과 22명 (장원9명)] 및 그 외 음서제(蔭敍制) 출신 음관(蔭官) 104명[4]

고려·조선 인물 장국신(張國伸) : 고려조 봉정대부(奉正大夫)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 내사령(內史令)

장위(張偉) : 고려조 통의대부(通議大夫) 검교군기감사(檢校軍器監事)

장안세(張安世) : 고려조 함흥부사(咸興府使)·정헌대부(正憲大夫) 덕녕부윤(德寧府尹)

장중양(張仲陽) : 고려조 김해부사(金海府使)·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좌윤(漢城左尹)

장안식(張安栻) : 고려조 어사대(御史臺) 감찰어사(監察御史)

장백림(張百林) : 고려조 정헌대부(正憲大夫) 우참찬(右參贊)

장현광(張顯光) : 조선조 중기 학자·문신·철학자·교육자,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자헌대부(資憲大夫) 의정부(議政府) 우참찬(右參贊)·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議政府) 영의정(領議政)

장경우(張慶遇)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장응일(張應一) : 조선조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참의(吏曹參議)·가선대부(嘉善大夫) 홍문관부제학지제교(弘文館副提學知製敎)

장내범(張乃範)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참판(工曹參判)

장경세(張慶世) : 조선조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장만(張晩) : 조선조 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 의정부(議政府) 우찬성(右贊成)·병조판서(兵曹判書)·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 의정부(議政府) 영의정(領議政)

장시안(張時安) : 조선조 자헌대부(資憲大夫) 공조판서(工曹參書)

장예상(張禮尙)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창성부사(昌城府使)

장한주(張漢柱)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정평부사(定平府使)

장우수(張宇秀)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한성판윤(漢城判尹)

장훈(張焄)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장헌(張憲)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형조참의(刑曹參議)

장열(張烈) : 조선조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장현도(張顯道)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장현충(張顯忠)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강릉부사(江陵府使)

장지학(張趾學) : 조선조 숭정대부(崇政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장석용(張錫龍)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대사헌(大司憲)·형조판서(刑曹判書)·공조판서(工曹判書)

장경역(張慶錫)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장주한(張柱翰)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장우한(張遇漢)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상주부사(尙州府使)

장사한(張師漢) : 조선조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동중추부사(僉知同中樞府使)

장공한(張公漢)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

장시현(張始顯)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장돈(張暾) : 조선조 개천군수(价川郡守)·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영돈령(領敦寧) 중추부사(中樞府事)·옥산부원군(玉山府院君)

장한신(張漢臣) : 조선조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

장희적(張希籍)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갑산부사(甲山府使)·감관선무원종공신(監官宣武原從功臣)

장응현(張應賢)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

장득종(張得宗)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장원한(張遠翰) : 조선조 암행어사(暗行御史)·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장필한(張弼翰)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장의일(張義一)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

장부개(張傅凱) : 조선조 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 영돈영부사(領敦寧府事)

장석손(張碩孫)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

장지손(張智孫) : 조선조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장담(張潭)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장응원(張應元)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장사의(張思義)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장륜(張崙)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장덕생(張德生) : 조선조 함안군수(咸安郡守)·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장사림(張士琳)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

장지풍(張志豊) : 조선조 경기충청도(京畿忠淸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황해도(黃海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장석룡(張錫龍) : 조선조 자헌대부(資憲大夫) 형조판서(刑曹判書)

장효남(張孝男) : 조선조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동지의부사(同知義府使)

장우택(張宇澤) : 조선조 어모장군(禦侮將軍) 경상좌도(慶尙左道) 수군도총관부사(水軍都摠管府使)

장명동(張命東) : 조선조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의금부사(義禁府事)

장희(張熙) : 조선조 충순위(忠順衛)·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장붕익(張鵬翼) : 조선조 창원부사(昌原府使)·훈련대장(訓鍊大將)·형조참판(訓鍊大將)

장태소(張泰紹) : 조선조 수원부사(水原府使)·포도대장(捕盜大將)·삼도군통제사(三道軍統制使)

장지항(張志恒) : 조선조 어영대장(御營大將)·형조판서(刑曹判書)·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장현택(張鉉宅) : 조선조 공충도(公忠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풍덕부사(豊德府使)·형조참판(刑曹參判)·어영대장(御營大將)

장복추(張福樞) : 조선조 후기 재야 유학자·교육자 (영남 3학자·3징사(徵士))

장승원(張承遠)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경상북도(慶尙北道) 관찰사(觀察使)

장헌상(張憲相) : 조선조 통정대부(通政大夫) 경기도(京畿道) 관찰사(觀察使)

장사진(張士珍) : 조선조 임진왜란 시 의병장(義兵將), 증수군절도사(贈水軍節度使), 일문삼의사(一門三義士)

장봉한(張鳳翰) : 조선조 임진왜란 시 의병(義兵), 일문삼의사(一門三義士)

장홍한(張鴻翰) : 조선조 임진왜란 시 의병(義兵), 상주판관(尙州判官), 일문삼의사(一門三義士)

장해(張 0) : 조선조 병자호란 시 인동(仁同) 의병장(義兵將)

근대·현대 인물 장태수(張泰秀) : 대한제국 관료·순국의사, 통정대부(通政大夫) 병조참의(兵曹參議)·동부승지(同副承旨)·춘추관수찬관(春秋官修撰官), 건국훈장 독립장

장석영(張錫英) : 대한제국 유학자·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 상소자·독립청원서 파리장서 초안 작성자, 건국훈장 독립장

장길상(張吉相) : 대한제국 관료·일제 강점기 사업가·금융자본가, 규장각(奎章閣) 직각(直閣)·경일은행(慶一銀行) 설립자

장직상(張稷相) : 대한제국 관료·일제 강점기 관료·대한민국 기업인, 하양 군수·선산 군수·대구상업회의소 회두

장지영(張志暎) : 대한제국·일제 강점기 국문학자·언론인, 조선어학회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 위원, 문화훈장·한글공로표창

장건상(張建相)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대한민국 정치인, 상해 임시정부 외무차장·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제2대 국회의원,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

장지연(張志淵) : 일제 강점기 애국계몽 운동가·우국 언론인, 대한민국건국훈장국민장

장진홍(張鎭弘)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대한광복단 단원·한국독립당 당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장병준(張柄俊)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신간회 대표, 대통령 표창·건국포장·애국장

장현식(張鉉植) :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대한민국 관료, 대동신문 재정 책임자·전라북도지사, 건국훈장 애국장

장기석(張基奭)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대통령 표창·건국포장·애국장

장재성(張在星)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의열단원,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

장면(張勉) : 대한민국 외교관·교육자·정치인, 제2/7대 국무총리·대한민국 제4대 부통령,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

장택상(張澤相) : 대한민국 정치가, 미군정기 수도경찰청장·제3대 국무총리·대한민국 부통령 권한대행

장도영(張都暎) : 대한민국 군인·정치가, 제14대 육군 참모총장·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국방부장관

장경순(張坰淳) : 대한민국 군인·정치가, 대한민국 육군 중장·농림부장관·제6/7/8/9/10대 5선 국회의원·국회부의장

장기영(張基榮) : 대한민국 언론인·정치인, 한국일보 사주·한국은행 부총재·경제기획원 장관·IOC위원·제9대 국회의원

장동식(張東植) : 대한민국 경찰·정치인, 서울특별시 경찰국장·내무부 치안국장·제9대 국회의원

장창국(張昌國) : 대한민국 군인·외교관·정치가, 육군참모총장·육군대장·브라질 대사·제9대 국회의원

장성환(張盛煥) : 대한민국 군인·관료, 공군참모총장·공군중장·태국 대사·교통부 장관

장지수(張志洙) : 대한민국 군인·기업인, 해군참모총장·한국비료 사장·호남정유 이사장

장성만(張聖萬) : 대한민국 교육자·정치인, 동서대학교 설립자·제11/12대 국회의원

장재식(張在植) : 대한민국 금융인·정치인, 제14/15/16대 국회의원·산업자원부 장관

장태완(張泰玩) : 대한민국 군인·정치가,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제16대 국회의원

장형태(張炯泰) : 대한민국 관료·기업인, 제19대 전남도지사·해양도시가스 회장

장세동(張世東) : 대한민국 군인·정치가, 특전사공수여단장·대통령 경호실장·국가안전기획부장

장기오(張基梧) : 대한민국 군인·정치가, 육군 중장·총무처 장관·민주자유당 특임행정위원

장상(張裳) : 대한민국 학자·정치인, 제11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국무총리 서리·헌법재판소 자문위원

장하성(張夏成) : 대한민국 경영학자, 고려대학교 경영학교수·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주중국대사

장하진(張夏眞) : 대한민국 사회학자, 충남대학교 교수·제3대 여성부 장관·초대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준(張夏準) : 대한민국 경제학자,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장하석(張夏碩) : 대한민국 과학사학자·과학철학자, 케임브리지대학교 과학역사철학 교수

장승우(張丞玗) : 대한민국 관료·기업인,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통계청장·기획예산처 장관·한국투자금융지주 의장 겸 회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장제원(張濟元) : 대한민국 정치인, 제18/20대 국회의원

장영신(張英信) : 대한민국 기업인·정치인·관료, 애경그룹 회장·제16대 국회의원·국무총리 비서실 공보관 겸 정책자문위원

장세주(張世宙) : 대한민국 기업인, 동국제강 대표이사 회장

장세홍(張世弘) : 대한민국 기업인, 한국철강 사장

장세용(張世龍) : 대한민국 학자·정치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민선 7기 경상북도 구미시장

[5] 과거 급제자 문과 (장원2명·아원2명 / 50명) 장계문(張季文) 장육(張陸) 장순신(張舜臣) 장범(張範) 장언린(張彦鄰) 장만(張晩) 장응일(張應一) 장여간(張汝衎) 장차주(張次周) 장건(張鍵) 장우일(張遇一) 장온(張蘊) 장명덕(張命德) 장주(張澍) 장한봉(張翰鳳) 장봉의(張鳳儀) 장염(張琰) 장수용(張受容) 장한철(張漢喆) 장상오(張相吾) 장중진(張重鎭) 장용팔(張龍八) 장봉주(張鳳周) 장주익(張周翼) 장현철(張鉉喆) 장인원(張仁遠) 장석룡(張錫龍) 장시표(張時杓) 장석준(張錫駿) 장진원(張晉遠) 장석묵(張錫默) 장태수(張泰秀) 장두헌(張斗憲) 장원상(張原相) 장석조(張錫祚) 장두식(張斗植) 장치량(張致良) 장익후(張益厚) 장석유(張錫裕) 장병익(張炳翊) 장영직(張榮稷) 장승원(張承遠) 장덕화(張德華) 장석오(張錫五) 장지렴(張志濂) 장남정(張南正) 장응진(張應軫) 장유상(張有相) 장석신(張錫藎) 무과 (장원5명·아원1명 / 154명) 장한무(張漢武) 장립(張雴) 장천기(張天紀) 장진(張震) 장인익(張麟翼) 장득일(張得日) 장영운(張永雲) 장잉남(張芿男) 장봉한(張逢漢) 장창일(張昌逸) 장끝량(張唜良) 장인기(張仁己) 장승옥(張承玉) 장만생(張萬生) 장순희(張順希) 장우룡(張佑龍) 장준민(張俊敏) 장사한(張嗣韓) 장준민(張俊敏) 장세익(張世翼) 장경진(張慶進) 장철(張轍) 장신길(張信吉) 장붕익(張鵬翼) 장의흥(張義興) 장후립(張厚立) 장우상(張宇相) 장건(張健) 장승룡(張承龍) 장우원(張宇遠) 장혁연(張赫然) 장재(張梓) 장천익(張天翼) 장세성(張世誠) 장우석(張遇石) 장익훈(張益訓) 장몽선(張夢先) 장우진(張友軫) 장대유(張大維) 장문유(張文維) 장우방(張友房) 장두유(張斗維) 장성(張晟) 장석(張晳) 장우형(張友衡) 장효일(張孝一) 장수만(張壽萬) 장석권(張碩權) 장세진(張世軫) 장진희(張振禧) 장일선(張日先) 장한주(張漢柱) 장한두(張漢枓) 장정원(張廷元) 장우두(張友斗) 장봉핵(張鳳翮) 장우한(張宇漢) 장우성(張友星) 장세우(張世祐) 장상구(張翔九) 장세웅(張世雄) 장세점(張世點) 장흡(張潝) 장시강(張時綱) 장태소(張泰紹) 장정웅(張廷雄) 장은석(張殷錫) 장덕소(張德紹) 장세록(張世祿) 장우심(張友心) 장시우(張時遇) 장호(張浩) 장충망(張忠望) 장규(張圭) 장한명(張漢明) 장내홍(張乃弘) 장천보(張天輔) 장파회(張破回) 장세빈(張世彬) 장석조(張錫祚) 장대표(張大豹) 장희경(張喜慶) 장우방(張羽邦) 장대유(張大維) 장일부(張一富) 장지근(張志近) 장휘규(張暉奎) 장재붕(張再鵬) 장두간(張斗幹) 장처대(張處大) 장수초(張守初) 장익량(張益亮) 장천핵(張天翮) 장한상(張漢相) 장경익(張景瀷) 장봉로(張鳳老) 장용(張溶) 장천위(張天緯) 장한(張翰) 장종후(張宗厚) 장봉오(張鳳梧) 장성징(張聖澄) 장한강(張漢綱) 장진억(張鎭億) 장한석(張漢碩) 장봉(張鳳) 장대혁(張大赫) 장덕종(張德宗) 장두표(張斗杓) 장도욱(張道郁) 장한수(張漢壽) 장한충(張漢忠) 장지원(張趾元) 장한성(張漢星) 장성유(張聖有) 장치명(張致明) 장동옥(張東玉) 장운득(張運得) 장현택(張鉉宅) 장현거(張鉉擧) 장득관(張得寬) 장우성(張羽成) 장우덕(張友德) 장현중(張顯中) 장계춘(張啓春) 장인원(張仁元) 장지욱(張之旭) 장영섭(張永爕) 장천익(張天翼) 장석방(張碩邦) 장지웅(張之熊) 장치욱(張致郁) 장춘급(張春汲) 장익상(張益祥) 장후량(張厚良) 장유형(張有亨) 장창호(張昌浩) 장붕천(張鵬天) 장익한(張翼漢) 장언필(張彦弼) 장인식(張寅植) 장두형(張斗衡) 장창환(張昌煥) 장원식(張元植) 장윤식(張允植) 장일환(張日煥) 장후근(張厚根) 장석조(張錫祚) 장운익(張雲翼) 장이강(張履綱) 진사시 (79명) 장진문(張振文) 장신손(張信孫) 장익(張翼) 장잠(張潛) 장범(張範) 장세웅(張世雄) 장기정(張麒禎) 장응운(張應運) 장만(張晩) 장응두(張應斗) 장경우(張慶遇) 장차주(張次周) 장세명(張世明) 장세익(張世翼) 장만기(張萬紀) 장집(張鏶) 장해익(張海翼) 장류(張瑠) 장최현(張最顯) 장채현(張采顯) 장천유(張天維) 장원(張源) 장계소(張啓紹) 장염(張琰) 장기(張璣) 장창후(張昌垕) 장지헌(張志憲) 장현익(張顯翼) 장재문(張再文) 장주(張鑄) 장홍우(張弘祐) 장지학(張之翯) 장지언(張志彦) 장한진(張漢軫) 장동무(張東武) 장윤식(張胤植) 장후상(張厚相) 장복수(張復秀) 장관수(張觀秀) 장영숙(張榮肅) 장지렴(張志濂) 장인환(張仁煥) 장영달(張永達) 장인환(張寅煥) 장용삼(張龍三) 장지롱(張志瀧) 장예상(張禮相) 장두희(張斗禧) 장동식(張東植) 장정식(張鼎植) 장봉환(張鳳煥) 장홍규(張鴻逵) 장규한(張奎翰) 장병익(張秉翼) 장완모(張完模) 장영옥(張榮玉) 장봉한(張鳳翰) 장명한(張命翰) 장덕한(張德翰) 장익상(張翊相) 장철환(張哲煥) 장석구(張錫九) 장찬(張燦) 장석하(張錫夏) 장석규(張錫圭) 장병문(張秉文) 장이용(張利用) 장성흡(張成洽) 장인수(張麟洙) 장지연(張志淵) 장은식(張垠植) 장병조(張炳祚) 장석규(張奭圭) 장흥진(張興鎭) 장재룡(張在龍) 장용린(張容麟) 장재성(張在成) 장영익(張榮翼) 장정원(張貞元) 생원시 (장원2명 / 77명) 장형(張炯) 장기건(張紀乾) 장계문(張季文) 장륙(張陸) 장순신(張舜臣) 장천고(張千古) 장만고(張萬古) 장언린(張彦鄰) 장륜(張輪) 장순(張峋) 장천기(張天紀) 장만(張晩) 장제항(張悌亢) 장우한(張遇漢) 장몽윤(張夢尹) 장홍점(張鴻漸) 장종건(張宗建) 장선(張渲) 장여간(張汝衎) 장이유(張以兪) 장현(張灦) 장학(張澩) 장해(張𣴴) 장명(張溟) 장위주(張緯周) 장진주(張鎭周) 장세명(張世明) 장상주(張相周) 장우일(張遇一) 장영(張𨥭) 장세남(張世南) 장우추(張宇樞) 장대림(張大臨) 장대방(張大方) 장거원(張巨源) 장세길(張世吉) 장동재(張東載) 장선흥(張善興) 장백석(張伯錫) 장태소(張台紹) 장염(張琰) 장극소(張克紹) 장한(張僴) 장시복(張時復) 장이길(張履吉) 장석우(張錫愚) 장우급(張祐汲) 장진홍(張晉弘) 장기만(張基萬) 장건규(張建奎) 장영진(張永鎭) 장창익(張昌翼) 장석능(張錫能) 장한규(張漢奎) 장원식(張元植) 장원표(張源杓) 장우원(張祐遠) 장한두(張漢斗) 장주선(張籌善) 장재호(張載昈) 장석후(張錫煦) 장기평(張琪平) 장석귀(張錫龜) 장영국(張榮國) 장두남(張斗南) 장일환(張日煥) 장진원(張震遠) 장영덕(張榮德) 장학몽(張鶴夢) 장원식(張源植) 장석신(張錫藎) 장명원(張明遠) 장재식(張在植) 장복규(張復圭) 장계수(張繼洙) 장지창(張志昶) 장기준(張基駿) 역과 (장원7명 / 23명) 장원손(張元孫) 장한걸(張漢傑) 장현(張炫) 장경상(張景祥) 장희식(張希栻) 장경헌(張景憲) 장서우(張瑞羽) 장진하(張振夏) 장천숙(張天䎘) 장채유(張采維) 장숙(張潚) 장인유(張璘維) 장렴(張濂) 장엄(張淹) 장잠(張潛) 장식(張㵓) 장익상(張翼相) 장순상(張舜相) 장련(張鏈) 장도(張燾) 장훈(張薰) 장덕기(張德基) 장세기(張世基) 의과 (9명) 장유령(張有齡) 장천핵(張天翮) 장세만(張世萬) 장성유(張聖維) 장한(張瀚) 장익주(張翊周) 장린(張潾) 장환(張鍰) 장사한(張師漢) 음양과 (1명) 장윤혁(張允爀) 율과 (장원9명 / 22명) 장세량(張世亮) 장유홍(張有弘) 장유항(張有恒) 장유경(張有璟) 장익(張瀷) 장협(張浹) 장덕화(張德華) 장영한(張英漢) 장택(張澤) 장덕린(張德麟) 장진량(張震良) 장덕봉(張德鳳) 장덕주(張德胄) 장지유(張之瑜) 장윤조(張允祚) 장지완(張之琬) 장지환(張之瑍) 장윤기(張允祺) 장지련(張之璉) 장윤옥(張潤鈺) 장덕만(張德萬) 장덕창(張德昌) 음관(蔭官) (104명) 장계환(張啓煥) 장계환(張啓煥) 장교원(張敎源) 장교준(張敎駿) 장규(張奎) 장규환(張圭煥) 장기락(張基洛) 장기락(張基洛) 장기렴(張基濂) 장기렴(張基濂) 장남규(張南奎) 장담(張湛) 장대급(張大汲) 장대주(張大周) 장덕근(張悳根) 장덕오(張德五) 장덕오(張德五) 장덕환(張德煥) 장동옥(張東玉) 장동칠(張東七) 장두빈(張斗斌) 장두삼(張斗參) 장두표(張斗表) 장두헌(張斗憲) 장두형(張斗衡) 장두환(張斗煥) 장두환(張斗煥) 장룡팔(張龍八) 장복원(張福遠) 장복원(張福遠) 장봉규(張鳳逵) 장봉규(張鳳逵) 장봉우(張鳳羽) 장봉우(張鳳羽) 장봉주(張鳳周) 장봉진(張鳳鎭) 장봉진(張鳳鎭) 장봉호(張鳳昊) 장석묵(張錫默) 장석우(張錫愚) 장석우(張錫愚) 장석조(張錫祚) 장석준(張錫駿) 장석휴(張錫烋) 장승학(張昇鶴) 장심학(張心學) 장언극(張彦極) 장언급(張彦汲) 장언식(張彦植) 장언식(張彦植) 장영급(張泳汲) 장용규(張龍逵) 장용일(張龍一) 장용주(張龍㴤) 장용진(張容鎭) 장용하(張龍河) 장우성(張羽成) 장우식(張禹植) 장우진(張佑軫) 장우철(張禹喆) 장운학(張雲鶴) 장운학(張雲鶴) 장원상(張原相) 장원식(張元植) 장원식(張元植) 장유(張有) 장유량(張有良) 장유량(張有良) 장유문(張有聞) 장유풍(張有豊) 장유풍(張有豊) 장유형(張有亨) 장유호(張有濩) 장윤식(張允植) 장윤식(張允植) 장응표(張膺杓) 장익(張翼) 장익상(張益祥) 장익상(張益祥) 장인식(張寅植) 장인원(張仁遠) 장정현(張正鉉) 장주학(張柱鶴) 장진원(張晉遠) 장진학(張振鶴) 장창환(張昌煥) 장창환(張昌煥) 장춘급(張春汲) 장충급(張忠汲) 장태수(張泰秀) 장한진(張漢軫) 장한진(張漢軫) 장현거(張鉉擧) 장현덕(張鉉德) 장현덕(張鉉德) 장현식(張玄植) 장현철(張鉉喆) 장현충(張鉉忠) 장형택(張亨澤) 장홍식(張弘植) 장효식(張斆植) 장후식(張厚植) 장흥섭(張興燮) 장흥섭(張興燮)

유적 [ 편집 ]

종가(宗家)는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仁義洞)에 위치하고 있다. 1천여년 인동에 세거하며 종가(宗家)와 유지(遺址)를 보존해 오고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및 경상북도 칠곡군 내에 옥계서원(玉溪書院), 옥산사(玉山祠), 고려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옥산장공유허비(高麗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玉山張公遺墟碑), 동락서원(東洛書院), 여헌선생 신도비(旅軒張先生神道碑), 금오서원(金烏書院), 입암서원(立巖書院), 인동장씨 대종가(玉山古宅), 남산파 대종가, 진평파 대종가, 황상파 대종가, 현암서원(賢巖書院), 죽정 장선생 유허비(竹亭張先生諱潛遺墟碑), 송은선생 유허비(松隱張安世先生遺墟碑), 천청당선생 신도비(聽天堂張應一先生神道碑), 장맹저(張孟儲)의 삭제재, 장업(張岌)의 강습소인 경양서당, 장순(張峋)의 강학지소인 학림정, 장내범(張乃範)의 추모지소인 반계정사, 장성한(張成漢)의 추모지소인 영회당(永懷堂), 장신손(張信孫)의 추모지소인 원사정(遠思亭), 장용한(張龍翰)의 추모지소인 봉양재, 장제원(張悌元)의 추모지소인 경심재, 장내도(張乃度)의 추모지소인 일원재(一源齋), 장경우(張慶遇)의 강학지소인 화산서당, 장경우(張慶遇)의 추모지소인 만계정, 장경달(張慶達)의 추모지소인 대송재, 장보(張俌)의 추모지소인 진목재(眞木齋), 장신손(張信孫)의 추모지소인 술효당, 장우일(張遇一)의 추모지소인 귀로정(歸老亭), 장원(張原)의 추모지소인 계산재, 장우원(張宇遠)의 추모지소인 심신재, 장우상(張宇相)의 추모지소인 침류정(枕流亭), 장복추(張福樞)의 강학지소인 녹리서당(甪里書堂), 장규석(張圭錫)의 추모지소인 하산재, 장승택(張升澤)의 강학지소인 뇌양정사(磊陽精舍), 장석영(張錫英)의 강학지소인 녹동서당(甪洞書堂), 장일환(張日煥)의 추모지소인 기주재, 장상학(張相學)의 강학지소인 공실서당, 장선원(張善遠)의 강학지소인 아헌정사(我軒精舍) 등이 있다.[6] 그 외 경상북도 성주에 장붕한(張鳳翰)의 추모지소인 이양사(伊陽祠), 경상북도 김천에 장홍한(張鴻翰)의 추모지소인 충의사(忠義祠), 경기도 김포에 장만(張晩)의 추모지소인 충정사(忠定祠), 경기도 가평에 장게(張垍)의 추모지소인 복포사(福浦祠), 경기도 파주에 장백(張伯)의 추모지소인 학산사(鶴山祠), 전라북도 김제에 장안세(張安世)의 추모지소인 서강사(西岡祠), 전라북도 장수에 장응두(張應斗)의 추모지소인 창계사(倉溪祠), 전라남도 함평에 장백림(張百林)의 추모지소인 영곡사(靈谷祠), 장남기(張南驥)의 추모지소인 양림사(楊林祠), 경기도 가평에 장필한(張弼翰)의 추모지소인 효충사(孝忠祀) 등이 있다.[7]

집성촌 [ 편집 ]

집성촌 보기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임수동·황상동

경상북도 구미시 양호동·구평동·구포동·신동·오태동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신장리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율리·인평리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반계리·성곡리·중리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학상리·학하리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봉산리·영리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연화리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동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금흔리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신하리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함박리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죽동리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초곡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

경상남도 거제시 둔덕면 학산리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 연화리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내삼리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금곡리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초전리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모전리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노연리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방축리

강원도 홍천군 내면 방내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성사동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단리·용곡리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기은리·오지리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작천리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금암리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황운리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율천리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용정리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금마리

전라남도 고흥군 도덕면 가야리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월송리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오계리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구산리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갈마리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상삼리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반월리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 도찬리

전라남도 여수시 상암동·오천동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대전리·상사리

평안북도 박천군 청룡면 응봉동·대화동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 동양동·원송동

함경남도 영흥군 덕흥면 풍성리·한봉리

함경남도 영흥군 순녕면 중양리·풍남리

함경남도 영흥군 홍인면 성북리·사현리

각주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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