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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최후의 만찬’ 가롯유다는 어디에 있을까 오세열 교수 – 목장드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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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예수뎐]다빈치 ‘최후의 만찬’에서 누가 소금통 쏟았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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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유다의 모델은? :: 좋은세상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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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에 얽힌 일화 – 예수와 유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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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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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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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그림만 믿지 말라… ‘석기 그릇’에 담긴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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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그림만 믿지 말라 ‘석기 그릇’에 담긴 최후의 만찬
다 빈치 그림만 믿지 말라 ‘석기 그릇’에 담긴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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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최후의 만찬’ 가롯유다는 어디에 있을까 오세열 교수
성경을 읽으면서 긍금증을 더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된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가롯유다의 생애는 어떤 것인가 예루살렘은 어떻게 로마에 의해 최후를 맞았는가 등이 그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바로톨로메오,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가롯유다, 요한, 예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보, 마태, 다대오의 유다, 시몬.
서양에서 13이란 숫자는 불길한 숫자로 여겨지며 13공포증 문화가 형성돼 있다. 이는 레오나르도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를 판 가롯유다가 예수와 11제자 다음으로 열 세번째 참석한 사실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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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층건물에는 13층이 없는 곳이 80%이고 공항에는 13번 게이트가 없다. 병원과 호텔에는 13호실이 없다. 이탈리아 피렌체 건물주소에는 12와 14사이에 13을 생략하고 12.5를 넣는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13을 불길한 숫자로 여긴다.
1년 12개월, 12궁도, 올림포스의 12신 등 예부터 12라는 숫자가 완전수로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12보다 큰 13을 완전함을 초월하는 숫자로 여겨 불안하게 생각했다.
축구나 야구, 농구선수의 13번 등번호가 없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13일이 금요일과 겹치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소위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영화와 미신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13이 불길하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가롯유다는 어디에 앉아 있을까?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열두 제자들을 세 사람씩 네 그룹으로 나누어 구도를 정했다. 각자는 독특한 몸짓과 표정으로 서로 결합되어 있다. 다빈치는 유다를 그릴 때 특별히 다른 제자와 구별되는 두 가지 특징을 강조했다. 유다의 머리 위치가 12제자 중 가장 낮으며 얼굴의 표정은 어둡고 검게 표현되어 있다.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관찰하면 가롯유다가 누구인지 금새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좋으신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 주신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사함을 받지 못하고 죽은 가롯유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림의 왼쪽부터 12제자의 순서는 바로톨로메오,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가롯유다, 요한, 예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보, 마태, 다대오의 유다, 시몬의 순이다. 다빈치는 예수가 식사 전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하여 팔리라고 선언하자 12제자들은 음식을 먹는 것을 잊은 채 충격에 빠져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로톨로메오는 왼쪽 끝에서 식탁에 두손을 짚고 서있다. 요한의 형,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는 팔을 펴서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다.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가롯 유다 뒤에서 열 손가락을 펴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마치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멀리하려는 듯 행동하고 있다.
성질이 급한 베드로는 요한의 어깨를 잡고 누가 배신자인지 물어보려는 듯 일어서고 있는 데 베드로의 오른손에 식사때 쓰는 칼을 쥔 채 앞에 있는 유다의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드리자 유다는 놀라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있다. 유다 만이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한 사정을 다 알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오른쪽에 앉아 식탁 위에 손을 가지런히 놓고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예수는 흥분한 주위에 휩싸이지 않고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의 왼편에 앉아서 양쪽 팔을 벌리고 비극을 예상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심많은 도마는 야고보 뒤에서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설마 나는 아니라는 표정을 보이고있다. 빌립보는 매우 슬퍼하는 얼굴모습으로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순결을 나타내고 있다.
마태의 경우 얼굴은 두 동료에게 돌리고 두 손은 예수쪽으로 뻗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모습이다. 다대오의 유다는 갑작스런 사태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손을 식탁에 대고 있다. 제일 오른쪽의 시몬은 준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부터 바로톨로메오,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가롯유다, 요한, 예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보, 마태, 다대오의 유다, 시몬의 순서다.
성경을 읽으면서 긍금증을 더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된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가롯유다의 생애는 어떤 것인가 예루살렘은 어떻게 로마에 의해 최후를 맞았는가 등이 그것이다.
필자 오세열 교수는 Midwest 대학원 리더십교수며 성신여대 명예교수, 목회학 박사(D.Min),목사, 경영학박사(고대)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 25절을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행한 것은 역사에 정사와 야사가 있듯이 요세프스와 같은 역사가가 저술한 <유대전쟁사>를 보면 로마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어떻게 철저히 망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세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혀졌던 <황금전설> 또는 <황금성인전>이란 책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가롯유다의 생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제노바의 대주교 보라지네(1228-1298)로 전해진다. 유다의 부모는 유다가 자신의 민족에게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유다가 어렸을 때 그를 버렸다.
버림받은 유다는 카리오트 해변에서 어느 왕비에게 발견되었다. 후손이 없던 이 왕비는 유다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그러나 왕비는 나중에 친아들을 낳게 되었다. 어느 날 유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배다른 형제인 그 아들을 살해하고 예루살렘으로 도주했다.
유다는 12제자중 유일하게 갈릴리 사람이 아니었다. 예루살렘에서 유다는 빌라도의 신임을 얻게 된다. 빌라도는 유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 주인을 살해하도록 사주했다. 유다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 그 포상으로 빌라도는 유다에게 어느 나이 많은 과부를 아내로 맺어준다.
과부와 살면서 유다는 자신이 죽인 사람이 친아버지였다는 사실과 자신이 친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진상을 알게 된 유다는 참회하면서 새로운 예언자 예수에게로 도망쳐 제자가 되었다.
베다니의 나병환자 집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그때 유다는 마리아에게 왜 이 향유를 3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는가라고 나무랐다. 그러나 실은 유다는 회계를 맡으며 돈을 빼돌리는 도적이었다.
유다는 도적의 본성을 드러내 결국 은화 서른 닢에 예수를 팔아넘기고, 허공에 매달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가롯유다의 생애를 보면 예수를 팔아넘긴 그의 행위가 우연이나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가 반복해서 저지른 악한 행위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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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예수뎐]다빈치 ‘최후의 만찬’에서 누가 소금통 쏟았나
[백성호의 예수뎐]경북 안동은 간고등어로 유명하다. 고등어가 잡히는 영덕 바닷가에서 안동까지는 무려 80킬로미터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생고등어는 내륙까지 가져가다가 썩기 일쑤였다. 보부상들이 나귀나 달구지에 봇짐을 싣고 하루 종일 걸으면 해질녘에 임동 장터에 닿는다. 안동에서 동쪽으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다. 상인들은 임동 장터에서 고등어에 소금을 뿌렸다. 임동 장터에는 간고등어를 사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소금에 절여져 숙성된 고등어는 더 깊은 맛을 냈다.
⑭다빈치 ‘최후의 만찬’에서 누가 소금통 쏟았나
유대인들은 40~50도를 넘나드는 사막 기후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소금은 목숨 같은 것이었다. 맛을 내는 건 기본이요, 음식을 저장하고 보존하는 데 필수였다. 소금에 절여야 음식이 썩지 않았고 오래 저장해둘 수 있었다. 구약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너희가 곡식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 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레위기 2장 13절)
그만큼 소금은 각별한 것이었다. 신에게 바치는 곡식에도 소금을 뿌려야 했고, 제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했다.
숙소에서 일찍 나와 갈릴리 호수로 해돋이를 보러 갔다. 오전 다섯 시 사십 분쯤 호숫가로 나갔다. 이렇게 어스름이 질 무렵 예수도 호숫가를 거닐지 않았을까. 만물이 잠들었을 때 예수는 홀로 일어나 종종 기도를 했다고 한다. 아직 해가 오르지 않아 약간 어둑했다. 대신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호숫가 산책로에서 조깅하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예수는 갈릴리 호 주변 어딘가에서 ‘소금’을 예로 들며 설교를 했다. 그 유명한 ‘빛과 소금’ 일화다.
예수는 말했다.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가복음 9장 49~50절)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표현돼 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복음 5장 13절)
예수는 ‘짠맛’을 역설한다. 그걸 잃지 말라고,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사람들은 이 대목을 단순하게 풀어낸다. 소금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일까. 예수가 말한 ‘소금’이란 무엇이며, ‘짠맛을 잃은 소금’은 또 무엇일까.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릴 때 ‘짠맛을 잃은 소금’이 되는 걸까. 또 예수는 왜 자신의 주머니가 아니라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라”라고 했을까.
예수는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라고 했다. 나는 이 말씀을 두고 ‘김장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배춧잎은 처음에는 빳빳하다. 그걸 배추의 고집, 배추의 에고라고 불러보자. 그런데 소금과 만나는 순간 배춧잎은 풀이 죽는다. 왜 그럴까. 배추의 고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마가복음에서는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라고 했다. 왜 ‘불 소금’일까. 그리스어 성경에는 ‘en puri(in fire)’로 표현돼 있다. ‘불 속에서 소금에 절여지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불’일까. 내가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소금과 만나는 순간 에고는 녹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열린다. 그 틈으로 소금이 스며든다. 배추 안에 소금이 거하고, 소금 안에 배추가 거한다. 그것이 ‘절여짐(Being salted)’이다.
절여진 배추는 달라진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 지난다고 변하지도 않는다. ‘짠맛’ 때문이다. ‘짠맛’을 품으면 성질이 바뀐다. 세상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그게 바로 짠맛의 속성이다. 부동성(不動性)과 영원성. 다시 말해 신의 속성이다. 신의 속성은 흔들림이 없고 영원하다. 예수는 그걸 잃지 말라고 했다.
2000년 전에도 예수는 행여 우리가 ‘짠맛’을 잃을까 봐 걱정했다. “아무리 네가 ‘세상의 소금’을 자처해도, 네 안에 ‘짠맛’이 없다면 어쩔 것이냐. ‘신의 속성’이 없다면 어쩔 것이냐. 어디에 가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 마음에 ‘하느님의 속성’을 품어라. 그리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예수의 메시지는 이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도 소금 코드가 등장한다. 유월절을 맞은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사를 했다. 다빈치는 그 광경을 작품으로 남겼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하자 제자들이 화들짝 놀라는 장면이다. 비립(오른쪽에서 네 번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을 가리키며 “주님, 설마 그 사람이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되묻는다. 다혈질이었다는 베드로(왼쪽에서 다섯 번째 머리)는 빵을 자르던 나이프를 든 채 예수를 향해 몸을 기댄다.
예수를 배반하는 가룟 유다(왼쪽에서 네 번째 머리)는 진한 갈색 수염을 하고 있다. 그는 유대 제사장에게 은화 서른 닢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겼다. 그림 속 유다는 오른손에 은화 주머니를 쥐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 소매 앞에는 조그만 통이 하나 넘어져 있다. 그게 소금 통이다. 유다는 팔로 소금 통을 쳐서 넘어뜨렸다. 그리하여 식탁 위에는 소금이 쏟아져 있다. 식탁 위에 흩어져 반짝이는 소금. 이는 유다가 ‘신의 속성’을 쏟아버렸음을 뜻한다. 이미 자신의 마음에서 ‘짠맛’을 잃어버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숫가를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해 뜨기 직전의 갈릴리는 고요했다. 내 안의 소금 통, 우리 안의 소금 통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는 소금이 담겨 있을까 아니면 텅 비어 있을까. 소금이 담겨 있다면 짠맛이 날까. 행여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우리는 수시로 소금을 쏟아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우리도 예수를 배반하고 있는 건 아닐까…….
〈15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토요일 연재〉
최후의 만찬(인물 설명)
* 최후의 만찬장 인물의 앉은 순서 – 그림의 왼쪽부터 차례대로 정렬
<바르톨로메오> <큰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유다> <요한> <예수> <작은 야고보> <토마> <필립보> <마태> <유다> <시몬>
* 인물들의 특징
1) 바로톨로메오 – 만찬 식탁 맨 끝의 식탁에 두 손을 짚고 몸을 지탱해 서 있다. 나중에 산 채로 껍질이 벗겨져 순교.
2) 큰 야고보(세베대의 야고보) – 요한의 큰 형 야고보는 팔을 펴서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다.
3) 안드레아 –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유다 뒤에서 열 손가락을 펴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는데 두 손을 들어 관찰자를 향해 손바닥을 보이고 있는것이 마치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멀리하려는 듯 행동하고 있다.
4) 베드로 – 성질이 급한 베드로는 요한의 어깨를 잡고 누가 배신자인지 물어보려는 듯 일어서고 있는데 베드로의 오른손에 식사 때 쓰는 칼을 쥔 채 앞에 있는 가롯 유다의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드려 유다는 놀라 앞으로 팔꿈치가 넘어지고 있다. 천주교 초대 교황. 5) 유다(가롯) – 예수 외에 유다만이 이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는데 어둡게 그려진 유다는 유일하게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다만 베드로의 칼에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들린 것에 조금 놀랍다는 듯 앞으로 넘어지면서 소금 그릇을 엎지르는데 이 장면이 멋진 긴장 효과를 내고 있다. 훗날 자살.
6) 요한 – 요한은 예수의 오른쪽에 앉아 식탁 위에 손을 가지런히 놓고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이 등장하면서 요한이 아니고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주장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지 실제로 신빙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습작을 보면 알겠지만 여자를 그리기 위한 습작은 아닌것 같다.)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오래 살아서 ‘요한 계시록’을 기록.
7) 예수 – 자연스럽게 보이는 예수와 제자들의 위치도 실은 레오나르도가 치밀하게 계획하여 배치한 것인데 제자들은 자신만은 무죄라는 표정으로 서로에게 질문하며 웅성되고 있지만 그 동안에도 예수는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다.
8) 작은 야고보(알패오의 야고보) – 그리스도의 왼편에 예수의 용모와 제스처를 닮은 작은 야고보가 양쪽 팔을 벌리고 비극을 예감한 듯이 공포스럽게 앉아 있다. 9) 토마 – 의심 많은 토마는 야고보 뒤에서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설마 나는 아니죠? 라는 듯이 머리를 가리키고 있다. 10) 필립보 – 레오나르도는 필립보를 매우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렸는데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순결을 주장하고 있다.
11) 마태오 – 마태오는 두 동료에게 얼굴을 돌리고 그리스도 쪽으로 두 손을 뻗은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식탁의 가장 자리에 앉아 있는 두명의 제자를 바라보고 있다. 12 ) 다대오의 유다 – 작은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갑작스런 사태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손으로 식탁을 짚고 다른 손은 식탁을 내리칠 듯이 들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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