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More
2016/08/19(ê¸) âì°½ì¸ê¸° 26:1-22â / ìì±: ì´ì°½í¸
Article author: 100church.org
Reviews from users: 9649 Ratings
Top rated: 4.5
Lowest rated: 1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2016/08/19(ê¸) âì°½ì¸ê¸° 26:1-22â / ìì±: ì´ì°½í¸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가 창세기에 첫 등장하여 보여준 일은 참으로 놀라왔습니다(창 22장).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버지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2016/08/19(ê¸) âì°½ì¸ê¸° 26:1-22â / ìì±: ì´ì°½í¸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가 창세기에 첫 등장하여 보여준 일은 참으로 놀라왔습니다(창 22장).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버지 …
Table of Contents:
2016/08/19(ê¸) âì°½ì¸ê¸° 26:1-22â / ìì±: ì´ì°½í¸
Read More
200322설교 / 창세기26장23-33절 / 너는여호와께복을받은자니라 – 창세기 – 하늘뜻장로교회
Article author: m.cafe.daum.net
Reviews from users: 5093 Ratings
Top rated: 4.6
Lowest rated: 1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200322설교 / 창세기26장23-33절 / 너는여호와께복을받은자니라 – 창세기 – 하늘뜻장로교회 200322설교 / 창세기26장23-33절 / 너는여호와께복을받은자니라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고자 하시는 복은 분명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200322설교 / 창세기26장23-33절 / 너는여호와께복을받은자니라 – 창세기 – 하늘뜻장로교회 200322설교 / 창세기26장23-33절 / 너는여호와께복을받은자니라 …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고자 하시는 복은 분명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 Daum 카페
Table of Contents:
창세기
카페 검색
200322설교 / 창세기26장23-33절 / 너는여호와께복을받은자니라 – 창세기 – 하늘뜻장로교회
Read More
See more articles in the same category here: toplist.Experience-Porthcawl.com/blog.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창 26)
제목: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본문: 창세기 26장
설교자: 이병권
오늘 본문 26장은 주인공인 이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주인공이 되는 것도 잠시, 그의 이야기는 26장에서 시작됨과 동시에 26장으로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인 26장을 제외하면 이삭은 늘 조연으로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로 등장하든지, 아니면 야곱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겁니다. 사실 26장에서 잠깐 주인공처럼 나오지만, 사실 앞뒤 큰 문맥에서 보면 이삭의 이야기는 야곱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부록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럼 창세기의 저자는 왜 야곱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 중간에 잠시 이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이삭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본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1) 이삭이 거하던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흉년을 피해 그랄 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아마도 이삭은 그랄에 잠시 머무르다가 상황을 봐서 애굽에까지 내려가려고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 하나님이 이삭에게 그 땅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흉년 때문에 먹을 것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계속해서 약속의 땅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흉년이 든 가나안 땅에 있는 것보다는 나일 강이 흐르고 있는 애굽으로 가는 것이 더 합리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특별한 섭리와 뜻을 이루기 위해 이삭과 그의 가족을 그 땅에 계속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명령에 대한 약속과 그가 순종했을 때 얻게 될 복을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3-5)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 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약속을 이삭에게 다시 말씀하시며 약속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이삭에게도 약속하십니다. 땅에 대해 약속하시고, 자손에 대해 약속하시고, 복에 대해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이삭의 하나님이 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한 세대를 넘어서 그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면 그 약속을 끝까지 잊지 않으십니다. 비록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이 있다하더라도 그 약속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었을 때,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5절에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는 근거가 아브라함의 순종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5절에 나오는 ‘내 명령, 내 계명, 내 율례, 내 법도’라는 말은 율법을 가리키는 당시 독자들에게 친숙한 용어들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 율법에 순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시내 산에서 구체적으로 제도화되어서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에게 율법에 포함된 원리를 부분적으로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들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이미 가인과 아벨의 때에 제사를 드렸고, 노아 때에는 짐승들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들로 구분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할례에 대한 규례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부분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율법을 계시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훗날 모세는 이것을 모아서, 새로 받은 계시와 함께 정리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실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실한 삶은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하나의 모델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고(15:6), 훗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 부르기도 하십니다(사41:8).
아무튼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그대로 머무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삭에게 말씀하셨고, 이삭은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렇게 그랄에 거주하게 된 이삭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을 합니다.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7)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삭도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을 속입니다. 아름다운 아내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부전자전인 것처럼 아버지가 했던 일을 아들이 따라서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건과 지금 이삭의 사건에서 닮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둘 다 그랄이라는 지역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고, 둘 다 아내를 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했고, 결국 둘 다 아비멜렉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책망한 아비멜렉과 이삭을 책망한 아비멜렉이 같은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마 두 아비멜렉은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아비멜렉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나의 아버지는 왕’이란 뜻인데,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 즉위한 왕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성경에서 애굽의 왕을 모두 ‘바로’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비멜렉’도 그 지역의 왕을 부르는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삭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잘못을 범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 지역에 거하는 동안 많은 부를 쌓게 됩니다. 그는 많은 가축들을 거느리게 되었고, 농사를 해서 100배의 수확을 올립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애굽으로 가지 않아도, 흉년이 든 땅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이삭의 순종에 대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 축복은 말씀에 순종한 이삭에게 허락하신 보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특히 이삭이 애굽으로 갈려고 했던 이유가 흉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농작물을 넘치게 수확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이삭의 재산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시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삭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가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삭이 사용하는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심보가 참 고약합니다. 그리고 이삭에게 떠나 주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합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16)
그들은 이삭을 시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갑니다. 그곳에 거하며 아버지 아브라함의 우물들을 다시 팝니다. 그리고 판 우물들은 아브라함이 부르던 이름으로 부릅니다. 한 번은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서 우물을 파다가 물이 스스로 솟아나는 샘 줄기를 찾아냈습니다. 19절에 ‘샘 근원’이라고 하는데, ‘콸콸 솟는 샘 줄기’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수고하지 않아도 물이 솟아나는 우물은 매우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삭이 이 우물을 얻었는데, 그 지역의 목자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이삭의 우물이 자신들 것이라고 우깁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이삭은 다른 우물을 찾아 떠납니다. 이삭은 떠나면서 우물의 이름을 다툼이라는 뜻인 ‘에섹’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삭이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랄의 목자들은 두 번째 우물에 대해서도 시비를 겁니다.
마치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이웃 나라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이익을 위해서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하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그릇된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어떻게 합니까? 이삭은 그들에게 다시 우물을 내어줍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우물의 이름을 대적함이라는 뜻의 ‘싯나’라고 지었습니다. 이 우물들의 이름은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이삭이 그랄 사람들에게 받은 대우와 그들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삭은 또 다시 우물을 팝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우물의 이름을 넓은 지역이라는 뜻의 ‘르호봇’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번성할 수 있는 넓은 땅을 찾게 되었다고 기뻐합니다. 이삭이 이렇게 말합니다. “…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22)
이삭은 우물을 얻은 그 지역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는 말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1:28)는 말씀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이삭을 축복하고 계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삭에게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다툼이 있었고 이삭은 계속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우물을 파고 또 파고 또 팠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면, 주변의 모든 적대적인 것들이 사라지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혹은 그렇게 어려움이 전혀 없는 환경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바꾸어 주실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분은 환경은 그냥 두시고 우리를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짜 복입니다.
이삭은 다시 거처를 옮깁니다. 이번에는 브엘세바로 갑니다. 브엘세바는 옛적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곳입니다. 이삭이 브엘세바에 도착한 날 밤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24)
하나님이 이삭에게,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시면서 이삭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들은 이삭은 그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오래 전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처럼 이삭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이삭에게 아비멜렉과 그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이 그랄에 거할 때 그의 번성함을 보고 그를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해서 부와 세력이 커져가는 이삭을 보며,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의 선조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것처럼 자신도 이삭과 언약 맺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말합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28-29)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계심을 그들도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세력이 커진 것 때문만이 아니라,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그들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의 삶을 볼 때는 어떨까요?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이 나의 삶을 보고 어떤 결론을 내릴까?’라는 질문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삭은 자신을 찾아온 아비멜렉을 위해서 잔치를 베풉니다. 이들은 함께 먹고 마심으로 계약을 맺었고 확증하기 위해 맹세를 합니다. 이삭이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은 그가 더 높은 자로서 계약을 맺었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당시 가나안에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아비멜렉 보다 더 힘이 있는 자로서 그와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아비멜렉 일행이 돌아간 날, 이삭의 종들은 새 우물을 찾았는데 이삭은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우물의 이름을 ‘세바’라고 합니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계약을 맺었던 것을 기념한 이름입니다. 이삭이 이 우물을 브엘세바라 부르는 것은 이미 아버지 시대 때부터 불렸던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삭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나고, 26장 마지막에는 에서의 이야기가 짧게 등장합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의 두 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는데, 이 일이 부모에게 근심이 되었다는 보고입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일을 예고하며 에서가 하나님이 택하신 믿음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그는 가나안 족속으로 아내를 맞이하였고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야곱과 에서가 비교되는 점이고, 앞으로 있을 갈등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26장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을 연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삭의 생애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창세기의 저자는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오늘 본문의 내용들만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들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삭에게도 나타나셔서 명령하시고 약속하셨음을 기록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두 번이 있는데, 모두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을 떠올릴 수 있는 비슷한 내용입니다. 또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비슷한 실수를 했고 같은 아비멜렉이라는 왕에게 책망을 듣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말씀을 듣고서 아브라함처럼 예배했으며, 아브라함처럼 이방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복을 누리며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이삭에게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저자는 이삭의 이야기를 아브라함과 병행해서 기록합니다. 그래서 26장 시작부터 아브라함의 이름이 나오고 계속 그 이름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이제 이삭에게도 연장되었으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것처럼 이삭을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삭도 그의 아버지처럼 실수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비멜렉으로부터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인정을 받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할 수 있고,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주저하게 하며, 엉뚱한 일을 하게 만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물론, 이삭도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들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관계없이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그 말씀하신 대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도 동일하게 섬기고 있고, 우리도 그분을 따르고 있으며, 그분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해서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믿음 안에서 강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하고 그분의 변하지 않는 말씀을 신뢰할 때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에 대한 믿음은 두려움 없이 그분과 동행하게 만들지만, 두려움으로 포기하는 것은 그분이 허락하시는 축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날마다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누리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26장 – 이삭의 온유 – 새벽기도 설교
오늘 본문은 이삭의 온유한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에 가지 말 것을 지시하시고 그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을 경우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과 동일한 축복을 그에게도 베푸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 이삭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6-11절에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임한 직후에 거짓말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이므로 자칫 블레셋 사람들이 그의 아내 리브가를 탐함으로 큰 죄를 짓게 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에는 사탄의 죄의 유혹 역시 강하게 임한다는 사실을 교훈해 줍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베드로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천국 열쇠를 받는 축복을 받은 직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리라 말씀하셨을 때 십자가 죽음을 만류하다가 주님으로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마 16:16-23).
베드로는 육신의 정욕으로 가득차서 주님의 고난은 외면하고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바랐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자들 가운데 죄의 유혹을 받아 교만해져서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더욱 자신을 돌아보고 겸비하여, 죄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삶 가운데 적용시켜나가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12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였다’ 고 말씀합니다.
물론 여기서 그 땅이란 블레셋의 그랄 땅을 의미합니다.
이삭의 직업은 본래 목축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삭은 목축과 함께 농사도 병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삭에게 있어서 농사는 비교적 생소하고 매우 서투른 분야였을 것입니다.
그는 곁눈질로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농사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던 첫해에 백배나 되는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블레셋 땅 지역에서 뿌린 씨의 50배를 거둘 때 대풍년이라고 말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삭이 놀라운 수확을 거둔 것은 그가 성실함으로 열심히 일한 데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일에 성실함으로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백배의 열매를 거두게 하고 결과적으로 창대하고 왕성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13,14절).
이러한 복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자 14절 이하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이삭의 우물을 메우고 이삭에게 그랄에서 떠날 것을 요구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한 것은 이방인이 자기들 땅에 거하면서 자기들보다 더 부유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엄청난 시험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힘들여 파놓은 우물과 잘 개간해 놓은 토지를 놔두고 빈털터리로 떠나야 하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이처럼 시험은 일반적으로 성도가 잘될 때 임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모든 일이 잘 될 때 시험이 임하면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의 회의를 갖기 쉽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성도들이 시험을 당하여 믿음에서 떠나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험을 받을 때 인내와 믿음으로 시험을 극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 위해 주시는 것이요, 또한 더 큰 축복을 베푸시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이삭이 시험을 만나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올 때마다 몇 번이고 옮겨 다니며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22-24절).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음에서 떠나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시험을 만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원수인 사탄만을 기쁘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인내함으로 시험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놀라운 축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26절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왔다고 말씀하는데,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삭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28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삭을 박해하고 추방했던 아비멜렉이, 그것도 일국의 왕이 지금 일개 부족장에 불과한 이삭을 찾아와 평화 조약 체결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이기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착한 일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하는 삶을 사는데도 불구하고 복음 때문에 박해와 멸시를 당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의 이 세상 삶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이 소망을 잃지 않고 선행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소망을 가슴 깊이 품고 있기에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올 수 있도록 참음으로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이삭은 아비멜렉으로부터 억울하게 박해를 받고 추방당했지만 온유함을 잃지 않고 인내함으로 결국 아비멜렉을 평화의 자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화평을 위한 노력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의 박해에 대해 얼마나 온유하고 있습니까?
또한 이웃과의 화평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이삭을 본받아 온유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을 그리스도 예수의 온유로 화평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창세기 26장 하나님 말씀] “르호봇의 축복”(창 26 : 12-22)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26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르호봇의 축복이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우물을 팠는데 물이 나온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우물을 팠는데 모두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나오게 된 겁니다. 우리도 이 시간 르호봇과 같은 우물을 파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르호봇의 축복 ”(창 26 : 12-22)
하나님의 축복은 순종할 때에 임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축복받은 인물을 보면 모두 순종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노아, 이삭, 요셉, 다윗, 사무엘, 다니엘, 등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두 순종의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순종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삭이 축복을 받은 것은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순종은 하나님의 생각과 달라도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나의 생각에 맞으면 따라가도 아니면 하지 않는 이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처럼 복을 받아야 합니다. 순종은 나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실 때 하면 됩니다.
창 26:12-14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순종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하나님을 말씀을 잘 듣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삭은 그랄 땅에 가뭄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그 해에 백 배의 복을 받게 됩니다. 이삭이 복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순종하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다면 복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곳에 함께 살고 있었던 블레셋 민족들은 복을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삭만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은 이슬에 있습니다. 가뭄이 들어도 밤에는 이슬이 내리면 땅이 촉촉하게 젖게 됩니다.
신 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과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까지도 복을 받게 됩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였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이삭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의 사람들이 시기하고 부러울 정도로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큰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에섹’의 우물을 양보해야 한다.
‘에섹’이란 말은 “다툼”이란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삭은 가뭄이 들어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 우물은 세상의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 놓았던 우물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여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우물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을 양보한다는 것은 엄청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남에게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우물을 팠는데 그랄 목자들이 와서 자신의 것들이라 우기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과 서로 싸우면서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양보를 한 것입니다. 이삭은 그랄 목자들과 싸우지 않고 자신이 판 우물을 양보했습니다.
잠 20:3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잠언서에 보면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며 미련한 사람은 다툼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삭은 다툼을 하지 않고 양보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것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어떻습니까? 지금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하고 멍청한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하나님이 더 큰 축복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잠 28:25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탐심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다투게 됩니다.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다 보면 다툼이 안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양보하면 풍족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주시려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부부와의 다툼을 피해야 합니다. 다툼은 가정을 힘들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가정이 평안할 때 사업도 잘 됩니다. 가정이 시끄러우면 사업도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부부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서로 믿음도 맞아야 합니다.
잠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하나님은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여 허물도 감싸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툼도 사라지게 됩니다.
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른 덕 한 조각만 있어도 화목한 가정이 있는 반면에 육선이 집에 가득해도 다투는 가정이 있습니다. 먹을 양식이 풍족해도 다투는 가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지는 못해도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양보할 줄 아는 성도가 되시고 화목한 가정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투지 않고 양보할 때에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싯나’의 우물을 포기하라
‘싯나’는 “대적함”이라는 뜻이다. 이삭이 다시 우물을 팠는데 또 따라와서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고 이삭의 목자들과 싸우는 것이다. 이삭은 또 우물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목자들이 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삭은 또 우물을 포기하고 목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내가 한 번 참지 두 번 참냐! 너 오늘 잘 걸렸다.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그래 내가 울고 싶었는데 뺨을 때려주는구나! 넌 오늘 끝장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투지 않으려고 했고 싸우지 않으려고 양보했습니다. 이런 일은 이삭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도 억울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책임을 집니다.
이삭이 위대한 것이 사람으로서 하기 힘든 것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삭의 순종의 인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닌 것은 빨리 포기하고 돌아설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인생에 성공할 수 습니다. 이삭이 자신의 것이라고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싸움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내가 억울하게 상황이 꼬이는 것 같지만 이것을 하나님 앞에서 포기하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라면 설령 이것이 나에게 유익이 있다 하더라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은 뒤 전이고 자신의 유익만 위하여 싸운다면 예수님의 영광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의 법정에서 싸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양보하고 포기하면 빨리 끝나고 손해도 덜 볼 것인데, 자신의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세상의 사람들과 싸워서 이겼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이 진정한 승리가 아닐 것입니다. 나의 작은 유익은 있을지 모르나 다른 큰 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큰 것에 소망을 두고 바랄 볼 줄 아는 믿음의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나님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투는 것은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책임을 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더 큰 축복으로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가 양보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나의 정욕을 십자가에서 못 박았습니다. 나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 축복이 무엇입니까? 르호봇의 복입니다.
‘르호봇’의 우물을 성취하라
‘르호봇’은 “장소가 넓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작은 우물을 포기하고 양보하니까 더 넓은 것으로 축복하시고 우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 넓은 장소라는 ‘르호봇’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두 개의 우물을 양보하고 포기하니 르호봇이라는 큰 축복으로 주시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억울하고 양보하면 끝날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을 갚아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억울함과 분함은 잠시 잠깐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면 억울함과 분노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져 생각나지 않게 됩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참고 인내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좋은 날을 보게 하십니다. 야베스도 고생을 하면서 살았던 인물입니다. 이런 야베스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를 복에 복을 더하여 주셔서 자신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지켜 주시고 도와주셔서 자신을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베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기도해 놓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에 응답이 오게 됩니다.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이제 우리도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영적인 지경을 넓혀나가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넓혀나가고, 인격이 갖추어지고, 기도가 넓혀지는 그런 축복을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을 해야 합니다.
또 아울러 육적인 지경들이 넓혀져 나가야 합니다. 사업의 지경이 넓혀지고, 부동산이 넓혀지고, 물질의 축복이 넓혀지는 이런 축복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삶이 윤택해지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한 주간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응형
So you have finished reading the 창세기 26장 설교 topic article, if you find this article useful, please share it. Thank you very much. See more: 창세기 27장 강해, 로마서 8장 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