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32 마리아 와 마르다 28430 Votes This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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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성경 95편] 마르다와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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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와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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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는 봉사

베풂을 받는 봉사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르다와 마리아
마르다와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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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와 마리아 < 신학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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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와 마리아 < 신학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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µÎ ÀÚ¸ÅÀÇ ½Å¾Ó – ¸¶¸£´Ù¿Í ¸¶¸®¾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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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설교(49) 마리아와 마르다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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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요 12:1~8) – KMC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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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꿈교회 <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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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0:38-42]마르다, 마리아에 대한 오해(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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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와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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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말하다]① 마르다와 마리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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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와 마리아

어떤 방식으로 봉사하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온 마음과 생각을 다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사람이 당시 구주의 정체를 두고 혼란스러워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7) 단순히 교리를 배우는 것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배우고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신앙을 실천해야만 한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구주를 섬기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설교를 한 직후에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 몇몇은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베다니에 있는 마르다의 집으로 갔다. 마르다는 친절한 주인으로서 손님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며 대접하는 주요한 책임을 맡은 반면,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누가복음 10:38~42 참조) 주님을 섬기는 일에서 두 자매가 보인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자 됨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또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봉사 방법과 제자 됨을 보여 줄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그분의 관점을 드러낸다.

베푸는 봉사 누가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소개하기 직전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기록한다. 이 이야기에서 구주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먹이고 쉴 자리를 마련해 주고 돌보는 등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셨다.(누가복음 10:30~37 참조) 마르다가 “일[을] 많”이 하려고 한 것은(누가복음 10:40) 그녀가 신앙을 실천하는 방식에 그 원리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받아들였음을 나타낸다. 큰 자는 다른 이들에게 성역을 베푸는 사람이라는 그분의 가르침을 몸소 보이시며(마태복음 20:26~28; 누가복음 22:26~27 참조), 예수님은 당신의 삶을 봉사에 바치셨다. 마르다는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이에 응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봉사와 배움을 통해 참된 신앙과 제자 됨의 좋은 본보기가 되는 두 여성을 보여 준다. 마르다가 봉사를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었듯이 우리도 구주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그분의 복음을 배우고 따르려는 우리의 의지에 중심을 둔 봉사를 주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우리는 봉사할 때, 봉사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서로 다른 방법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마르다가 “마음이 분주하”게 되었을 때(누가복음 10:40), 그녀가 보인 반응은 논쟁을 불러왔고 구주의 방문으로 화목해진 분위기를 망칠 뻔했다. 마르다는 손님을 환대했고 책임감도 있었지만, 또한 자신의 분주함에 몰입하여 마음이 괴로웠다. 그녀는 예수님께 이렇게 불평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누가복음 10:40) 마르다의 항의는 그녀가 자기 혼자만 봉사한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녀는 그 시간에 마리아와 구주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다른 봉사의 방식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르다는 베풂의 원리를 보여 주었지만, 영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우리의 삶에서 행위와 태도로 보여 줄 수 있다.

베풂을 받는 봉사 경고의 음성을 더하시며, 예수님은 봉사하려는 마르다의 노력과 그에 수반된 좌절감을 다음과 같이 인정해 주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누가복음 10:41) 이 말씀은 마르다가 환대를 보이려고 택한 방법을 구주께서 낮게 평가하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에게도 경청과 배움을 통해 봉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신다는 의미였다. 마리아의 행동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봉사의 방식과는 상관없이,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마리아는 구주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분이 자신에게 봉사하실 수 있게 했다. 마리아의 모범은 우리가 영으로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구주의 발치에 앉음으로써 구주에 대한 사랑을 보일 수 있음을 설명해 준다.

성경인물설교(49) 마리아와 마르다

성경인물(49) 마리아와 마르다(요11:1-44)

● 성경에 보면 여러 특이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 가운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는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특이한 경우이다. 성경에서 마리아, 마르다 자매는 세 장면에서 묘사되어 있는데, 모두 함께 등장하고 있고, 두 자매의 행동은 대비되어 나타난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불과 3km 남짓 동쪽으로 떨어진 베다니라는 마을에 살았는데, 이곳은 감람산 동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신 장소도 바로 감람산으로 베다니 인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저들의 오라비의 이름은, 죽었으나 예수님께서 다시 살려주신 나사로였고, 마르다가 언니, 마리아가 동생이었다.

베다니라는 동네의 이름은 ‘가난한 자의 집’이란 뜻이었으나, 이들 남매는 상당한 재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루살렘으로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문상하러 온 것으로 보아, 그 마을뿐 아니라 인근 예루살렘에까지도 잘 알려진 유지였을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여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부을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생활이 여유로웠음을 반증한다. 이들 3남매는 예수님과 아주 가까이 지냈던 것으로 보이며, 저들이 가진 물질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대접하는데 헌신적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들의 헌신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친근히 지냈음을 알 수 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베다니를 거쳐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이들의 집을 방문하고 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예수님께서는 수난 당하시기 직전에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기 전, 베다니에서 머무시면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저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기도 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이미 앞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구약에서는 ‘미리암’으로 불려졌던 이름인데, 신약에서 와서 ‘마리아’로 불려지는 유대 여성들에게 가장 흔한 이름으로, 그 뜻은 ‘높은, 숭고한’이라는 뜻이며, 마르다는 ‘숙녀, 여주인’이라는 뜻이다.

하여튼 예수 공생애 당시, 예수를 추종하던 무리들 가운데는 여자들이 매우 많았는데, 그 가운데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핵심 인물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이들에 대한 기록은 성경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데, 성경에 등장하는 상황 세 장면을 중심으로 마리아, 마르다 자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 예수님 접대

두 자매가 처음 등장하는 첫 장면은 눅10장이다. 예수님의 일행이 어디로 여행하는 중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이 없으나, 눅10장에 보면, 예수님의 일행이 베다니를 지나가시다가 마리아, 마르다 자매 집에 들어가시게 된다. 눅10:38에 보면,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은 그 당시의 풍습으로는 매우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히 그 가정에 나사로라는 남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사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계도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르다가 그 가정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마르다가 가장 나이가 많았을 것으로 보며, 또 마르다가 과부였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여튼 마르다는 그 가정의 대표로, 예수님의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바로 이어 나온다. 마르다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이 마리아가 주님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 있다. 이러한 자세와 관계는 선생-학생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음을 표현한다. 그렇지만 여자를 학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유대교의 랍비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이 가정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마르다는, 그 이름처럼 사랑이 많은 여주인이라는 사실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방문을 기쁘고 아름답게 해 드리려고 자기의 권한에 든 모든 것을 동원하여 바삐 움직이고 있다. 마르다가 그렇게 바쁜 것은 오직 그녀의 손님을 환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눅10:40에 보면,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의 뜻에 의하면,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는 뜻이다.

마르다는 마음이 흥분된 것을 억제하지 못했다. “아,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에 오시다니!” 마르다는 자신의 모든 실력과 힘을 다해 예수님을 대접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순간 동생 마리아에게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아마 마리아는 조금 전만해도 마르다 옆에서 돕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말한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는 분주한 가운데 자신을 돕지 않고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있는 마리아를 보며, 짜증을 냈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마르다 자신이 환영하려고 지금 노력하고 있는 바로 그분에게 짜증을 낸 것이었다.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 장면은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 상황을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마르다를 책망하시지 않았다. 마르다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표정이 어떠했을 것 같은가? 굳은 표정으로 야단치셨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예수님께서 이름을 부르실 때 이렇게 두 번 이어서 부르시는 경우는 아주 친근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득한 열심으로 매사에 적극적이고, 이로인해 자신과 그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 수고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한 사랑 많은 영혼을 내려다 보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인을 위해 귀한 교훈으로 깨우쳐 주고 계신 것이다.

마르다가 수고하고 있는 많은 일은 물론 그 나름대로 정당한 근거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봉사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가지 일’,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과 올바른 관계에 놓여 있어야 한다. 예수의 말씀을 듣는데 제자의 실존은 깊숙이 닻을 내려야 한다. 여기에서부터 제자의 전체 행동이 규정되어야 한다. 맹목적 행동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또는 예수의 제자가 해서는 안될 염려와 근심에 지배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는 일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제자 공동체는 항상 할 일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삶의 궁극적인 원천이 된 그 근원으로부터 단절되어서는 안된다. 마리아는 그 근원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2) 나사로의 부활

두 번째 장면은 요11장에 나온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두 자매는 급히 예수님께 사람을 보낸다. 예수님은 그때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요단 강 맞은 편에 가 계셨다. 강 맞은 편에서 베다니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고갯길이 이어져 있어, 소식을 들은 즉시 출발해도 꼬박 하룻길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틀을 그대로 머물러 계셨다.

그리하여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지난 후에야 주님은 겨우 베다니에 도착하셨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마르다는 즉시 마을 입구로 달려나가 맞이한다. 그리고 예수님 다소 원망하는 듯한 어조로 호소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의 고백은 당장이라도 죽은 나사로를 주님께서 살리실 수도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마르다의 이같은 고백은 장차 마지막 부활에는 살아날 것을 고백한 것이었다.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부인하긴 했으나 바리새인들이 부활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부활에 대한 기본 개념을 갖고 있었다.

이어 예수님께서 집에 머물러 있던 마리아를 부르신다. 급히 달려온 마리아도 마르다와 같은 내용의 말을 한다.(32절) 그런데 먼저 달려와 많은 말을 주고받은 마르다와 또 나중에 달려온 마리아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비록 언니와 똑같은 말을 했지만, 성경은 마리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32절을 보라.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울고 있다.

이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으며, 놀랍게도 예수님 스스로 우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 이 구절은 헬라어 원문이나 한글 번역에는 세 마디, 영어는 두 마디로 기록되어 있어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신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이것은 단지 동정의 눈물이 아니다. 주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나 죽음 자체가 비참한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인간은 누구나 이 최대의 비극을 당해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 외에는 온 인간의 죄악을 사할 수 없고, 따라서 죽음의 권세를 장악한 마귀를 멸하는 것 이외에는, 인류를 이 참상에서 건져낼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직면하게 된 주님은 착잡하면서도 심히 안타까웠을 것읻. 주님은 마귀와 인류의 조상의 반역에 대한 분노와 그 참상에 대한 동정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 이 장면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마르다는 예수님 앞에 서서 얘기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마리아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다는 비록 놀라운 부활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으나, 주님의 실체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정직하게, 배워 알고 있는대로 고백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는 예수님은 마르다를 책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라운 말씀으로 마르다를 격려하고 깨우치고 계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지만 마리아는 이미 눅10장에서도 보았듯이, 역시 예수님의 발앞에 나아가 엎드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의 신앙고백이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어디에 엎드리고 있는가?

3) 향유

마지막 장면은 요한복음 뿐만 아니라 공관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도착하셨다. 그곳에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 주신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아마 잔치를 베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병행 본문인 마태와 마가의 기록이 잔치의 주최자를 문둥이 시몬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누구의 집인지는 불확실하다. 이곳에서 나사로는 예수와 앉아 식사하고 마르다는 일하고 있으며 마리아는 향유를 붓는다.

매우 귀한 향유 – 나드 향나무는 히말라야 산맥, 인도 북부지방에서 재배되는 식물로, 이 나무의 뿌리에서 향을 추출한다. 그런데 이 향유는 그 향기가 은은하고 향기로워 귀하게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비싸게 팔렸다.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향유는 원액에 포도주를 섞어 사용하던 것에 반해 여자가 가져온 것은 완전히 정제된 순수한 고급 향유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로마인과 유대인들은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자의 시신에 이 향유를 발라 악취가 나는 것을 막았다. 요한은 가룟유다의 입을 빌려 이 향유 한 근의 값이 300데나리온이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노동자의 1년 소득과 맞먹는 엄청난 액수였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소망에 넘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도 마리아와 마르다는 같이 등장하는데, 마르다에 대해 뭐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2절을 보라! ‘마르다는 일을 보고’ 이 두 마디의 말 가운데 마르다가 설명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큰 잔치가 베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많아서 갈팡질팡하며 진땀을 빼고 있는 마르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을 모신 신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조용하고 고상한 존엄성으로 ‘여주인’ 마르다가 일을 보고 있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아마 이날 마르다의 발은 더 빨리 움직였으며 그녀의 손은 이전보다 더 재빠르게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번잡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오히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제자들은 흥분되어 있었고, 더욱이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일 때문에, 가룟유다를 비롯하여 제자들의 마음이 심히 흔들렸다.

마르다는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깨우쳤던 것이다. 뜨거운 열정으로 사람들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했던 마르다. 책임감 강하고 헌신적이며 속마음을 숨기지 아니하고 정직하게 겉으로 잘 표출했던, 여장부 같았던 마르다는, 이렇게 주 안에서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으로 변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잔치 중에 마리아는 값비싼 나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멈춰서서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그 향유를 주님께 부었다. 이같은 행위는 비정상적인 것이어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성경은 왜 이 장면을 숨김없이 기록하고 있을까? 사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이제 곧 자신이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전혀 주님의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자리다툼을 벌이며 온간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예수님의 발앞에 늘 다가왔던 마리아만이 주님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리아는 주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님의 눈동자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가득찬 주님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마리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주님께서 왜 수난당하심을 얘기하시는가? 이번 유월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주님의 이 슬픔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님께 내가 무슨 힘이 되어 드릴 수 있을까?

결국 이날도 마리아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예수님의 발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를 온 정성에 담아, 주님의 슬픔을 씻어내려는 듯,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를 풀어 주님의 발까지 닦아 내었다.

* 마리아는 조용하다. 하지만 마리아의 심령은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그러므로 늘 배우기 위해, 주님을 가까이서 만나기 위해 주님의 발 앞으로 나아갔으며, 그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온전한 신앙고백과 함께 전적인 헌신을 드러내었다.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전적인 헌신의 모습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42.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요 12:1~8)

예루살렘에서 불과 동쪽 3km의 거리에 위치한 베다니에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 3남매가 살고 있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가정으로 평소에도 잘 들리셨고, 수난 주간에도 낮에는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시다가 저녁이면 베다니의 그들의 집에 가셔서 쉬신 집이기도 하다.

특히 언니인 마르다는 헌신적이어서 음식을 잘 준비해서 예수님을 대접하기를 좋아했고 동생 마리아는 언제나 예수 곁에 앉아 말씀듣기를 좋아했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장단점을 가지고 비교하며 함부로 평가하기도 하는데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중요하고, 또한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에서 어느 편을 택할 것인가 할 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는 말씀을 하셨는데, 더 좋은 선택은 신앙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 한다.

첫째: 마르다의 신앙

1) 책망 받은 마르다(눅 10:38~42)

예수께서 제자들과 베다니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와 그 일행을 자기 집에 영접하고 극진한 사랑의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려고 정신없이 바빴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언니를 돕지 않고 주님의 발아래 앉아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었다.

사실 언니의 입장에 선 자기는 너무도 바쁜데 도우려 하지 않고 노는 것만 같아 마음이 언짢았던 것이리라.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께 마리아에게 놀고만 있지 말고 자신을 돕도록 명해 줄 것을 부탁했는데,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하면서 오히려 마르다를 책망하셨다. 이럴 때 마르다는 마음이 몹시 상했을 것이고 반면에 마리아는 통쾌하게 여기면서 여자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묘한 마음가짐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손님을 초청하고 음식을 잘 대접하려는 것은 당연하고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니다.

눅10:41~42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입장에선 음식 대접이 과히 중요하지 않고 그의 말씀 들어주는 것이 그를 더 대접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셨다.

그런데 마르다에게 문제가 있다면 오로지 음식을 잘 대접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마음을 분주하게 하였기 때문에 마리아를 책망한 것이다. 주님을 위한 명목으로의 봉사도 중요하지만 주님은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더욱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2) 확신 있는 신앙(요 11:21~27)

나사로가 병들어 누웠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사람을 보내 예수께 사실을 알리고 예수께서 오라비의 병을 낫게 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급히 나사로를 찾지 않으시고 이틀이 지난 후 그곳을 떠나 베다니에 도착 하셨고, 그때에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때였다.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한다(요 11:21). 이 말은 연락을 했는데도 제 때에 오시지 않았다는 원망도 아니고,그렇다고 하여 마르다가 이제라도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말도 아니다(22, 24,39절).

다만 예수께서 오심으로 마르다가 설움에 복받쳐 사무치는 슬픔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주님이 이곳에 계셨더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손을 써 오라비가 죽지 아니했을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22절에서는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다음 전개되는 대화로 간단히 알 수 있다.

“네 오라비가 살리라.”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27절의 마르다의 신앙고백을 들어보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부활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으나 사두개파는 부활을 반대하고 있었다(행 23:8). 고로 마르다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산다고 했을 때 종말론적 부활을 상기시키는 조문 인사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묻혀있는 무덤을 찾아 가셔서 기도한 후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 가까이 다가가 돌을 옮기라 하시고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셨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예수의 명령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권위적임을 보여주었다. 이로서 마르다는 처음 주님을 뵈었을 때 오라버니의 일로 원망과 불만스럽게 말하였으나 확신하는 신앙으로 신앙고백 하는데 이르렀다.

예수의 역사는 슬픔을 당한 마르다와 마리아 가정에 기쁨을 안겨 주었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말씀을 그대로 입증하셨다. 그러나 요 12:10~11에 보면 당시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부활을 거부한 사두개인들은 예수는 물론 나사로까지 죽일 음모를 하게 되었다.

둘째: 마리아의 신앙

1) 향유를 부은 여인(요 12:3~8)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날 때마다 그의 발밑에 앉아 말씀 듣기를 좋아하므로 ‘발 밑의 여인’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예수께서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오셨을 때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예수의 발을 자신의 머리털로 닦아 드렸다. 보통 향유가 사용되는 경우는

① 기쁨이 넘치는 자리

② 속죄에 대한 감사의 의미

③ 장사 지낼 때 시체에 방부제로 사용되곤 했다.

마리아의 향유 사건은 오라버니 나사로가 다시 산 기쁨과 유월절 엿새 전이므로 예수께서는 장사를 위한 것이라(7절) 말씀하셨다. 또한 마리아의 행위는 진정한 헌신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드 한 근은 300 데나리온이라고 했는데 5,000명 이상을 먹일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었다(막 6:37~마가가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 한 것을 보라). 마리아에게는 예수에게라면 아까운 것도 없고 무엇이든지 다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자 중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비난 하였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릴 것이다. 발에다 부어 허비하는 것보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함이 마땅히 여기게 될 것이나,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은 30에 넘겨줄 정도였던 가룟 유다로는 6절의 말씀대로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2) 예수의 칭찬(마 26:6~13)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구제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가난한 자의 구제의 기회는 언제든지 있는 것이고, 마리아에게 있어선 한 번의 주어진 기회를 가장 선용 한 경우로 평가하셨다. 기회란 항상 우리에게 열려있는 것 아니라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는 것도 신앙생활 잘하는 방법 이다. 마태복음엔 제자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하시며 오히려 그의 사랑과 신앙적 행위에 대해 칭찬하셨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동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의지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할 때가 많다.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도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을 듣고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였기 때문에 칭찬은 물론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접은 마르다와 같이 음식보다는 말씀 듣기를 원하신다.

롬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는데, 마음으로만 아니고 물질, 몸까지도 주님의 사역에 온전히 쓰이기를 원하고 계신다. 우리는 주님께 감사의 향유를 붓고 있는가? 우리의 몸으로 주님을 위해 어느 정도의 헌신의 생활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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