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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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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주님과 함께 장례예배 설교모음 · 1. 묵상 기도 –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 하신 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주님과 함께 장례예배 설교모음 · 1. 묵상 기도 –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 하신 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 장례예배 설교모음 남겨진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 운명 전 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 제목: 위로와 소망 찬송: 539, 545 성구: 살후 2:16-17 1. 이별이 주는 선물 사랑하는 애인과 이별을 한 자매가 있습..항상 주님과 함께 동행하지 않으면 나의 길..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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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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¼³±³½Å¹® 0691.in/sermon6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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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¼³±³½Å¹® 0691.in/sermon66.com 언제부터인가 장례예배를 “천국 입성 축하. 장례 의식과 설교 1. 죽음의 神學的 意味 1) 자연적인 죽음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과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¼³±³½Å¹® 0691.in/sermon66.com 언제부터인가 장례예배를 “천국 입성 축하. 장례 의식과 설교 1. 죽음의 神學的 意味 1) 자연적인 죽음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과 … ¼³±³µµ¼°ü,¼³±³½Å¹®,¼³±³ÀßÇϴ¹ý,¼³±³ÀÛ¼º¹ý,»ýÈ°Àüµµ,°Çؼ³±³,ÂüµÈ¼³±³¼³±³µµ¼°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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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 14장 1절-6절, 장례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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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 14장 1절-6절, 장례예배설교 장례예배설교 입관예배설교 발인예배설교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 유족들과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해주는 장례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 14장 1절-6절, 장례예배설교 장례예배설교 입관예배설교 발인예배설교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 유족들과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해주는 장례 … 유족들과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해주는 장례예배설교, 발인예배설교입니다. 성경 : 요한복음 14:1-6 설교 :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고(故) OOO 성도님의 가..성서유니온,매일성경큐티,말씀묵상,새벽예배설교,새벽예배짧은설교,새벽예배10분설교,구약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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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 14장 1절-6절, 장례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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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예배 설교말씀] 다윗을 위로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삼하 12:19-23)
Article author: el-bethel.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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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장례 예배 설교말씀] 다윗을 위로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삼하 12:19-23)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 유족들을 위해서 위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장례 예배 설교말씀] 다윗을 위로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삼하 12:19-23)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 유족들을 위해서 위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 유족들을 위해서 위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엘벧엘은 야곱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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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예배 설교말씀] 다윗을 위로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삼하 1219-23)
다윗을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장례 예배 설교말씀] 다윗을 위로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삼하 12: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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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 설교 – mission – 장례식설교 자료 모음
Article author: mission.b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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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심방 설교 – mission – 장례식설교 자료 모음 장례식설교 자료 모음 · 1, 유한한 인생. 세상일은. 공적인 일이든사적인 일이든, 모두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 2, 영원하신 하나님 하지만 히니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심방 설교 – mission – 장례식설교 자료 모음 장례식설교 자료 모음 · 1, 유한한 인생. 세상일은. 공적인 일이든사적인 일이든, 모두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 2, 영원하신 하나님 하지만 히니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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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 설교 – mission – 장례식설교 자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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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예배 설교
Article author: godkid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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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발인예배 설교 예문1. 성경구절 : 시편 23:6. 설교제목 : 주의 집에 거하다. 오늘 이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정말 기쁜 장례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장례식에 기쁨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발인예배 설교 예문1. 성경구절 : 시편 23:6. 설교제목 : 주의 집에 거하다. 오늘 이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정말 기쁜 장례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장례식에 기쁨 … ◇ 예문1 성경구절 : 시편 23:6 설교제목 : 주의 집에 거하다 오늘 이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정말 기쁜 장례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장례식에 기쁨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일 수도 있습니다. 000님은 병석에서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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Çѱ¹ÄÄÇ»Åͼ±±³È¸ °Ô½ÃÆÇ¿¡ ¿À½Å°ÍÀ» ȯ¿µÇÕ´Ï´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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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Çѱ¹ÄÄÇ»Åͼ±±³È¸ °Ô½ÃÆÇ¿¡ ¿À½Å°ÍÀ» ȯ¿µÇÕ´Ï´Ù 주옥같은 장례식 설교모음 · 1. 계 22:5에 천국에는 밤이 없다 했습니다. 밤이 없습니다. · 2. 질병과 고통이 없습니다. · 3. 죽음과 슬픔이 없는 곳입니다.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Çѱ¹ÄÄÇ»Åͼ±±³È¸ °Ô½ÃÆÇ¿¡ ¿À½Å°ÍÀ» ȯ¿µÇÕ´Ï´Ù 주옥같은 장례식 설교모음 · 1. 계 22:5에 천국에는 밤이 없다 했습니다. 밤이 없습니다. · 2. 질병과 고통이 없습니다. · 3. 죽음과 슬픔이 없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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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Article author: rhb-bibl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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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우리는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보배입니다. 믿음이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우리는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보배입니다. 믿음이 … 안녕하세요. 오늘은 장례예배 설교 말씀 중에서 발인예배 및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오면 한 번은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성..히브리어 헬라어 성경 원문을 체계적으로 설교하는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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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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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설교 요약 모음 > 교회개척정보 :: 장례, 추도, 결혼, 임직등 예식자료
장례식 설교 요약 모음남겨진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운명 전 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위로와 소망찬송: 539, 545성구: 살후 2:16-171. 이별이 주는 선물사랑하는 애인과 이별을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일도 하기 싫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삶 자체에 대해 별 의욕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아픈 마음을 들어 주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에 다 동참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아픈 마음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말도 해주지를 못했습니다. 세월이 약임을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인간의 헤어짐은 새로운 소망을 향한 출발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아픔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2.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데살로니가 교회는 ‘죽음’의 문제로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슬픔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불확실한 성도가 있었고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예배에 참여한 우리들도 다양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권면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먼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의 위로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상처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기억하십니까? 당신을 건지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통해 당신을 구하셨습니다.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정도로 존귀하신 분입니다. 당신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때 당신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근심에 빠진 자들에게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던 예수님을 기억하십니까? 하늘로 오르신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보혜사는 상담자, 위로자, 변호자를 의미합니다. 당신을 위로하시고 상담하실 분,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께 당신의 아픔과 슬픔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당신의 생애 속에 아무런 낙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말할 때 주님은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세계로 인도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둘째로 당신을 굳게 세워 주실 분이 누구입니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될 때 당신을 붙잡아 주실 분, 진리를 붙잡고 나아가는 당신이 실망될 때 당신을 든든히 지키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들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입니다. 당신을 영원한 나라까지 인도하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3. 영원한 위로와 소망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아픔과 슬픔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감추거나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허전함이 느낍니다. 저는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000님에게 하늘로부터 말미암는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이 넘쳐나기를 바라고, 굳게 세움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 둔 가족들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000님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영원한 소망의 줄을 잡고 믿음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슬픔 가운데 머리 숙인 우리를 능히 굳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가질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만큼 선한 싸움을 위해 질주할 뿐입니다.오늘 임종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십자가 그늘 아래서 위로 받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운명 전 예배 설교(돌아가실 분이 믿음이 없는 경우)제목: 인생의 종말찬송: 534, 539성구: 창 49:28-30인생이란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유시유종(有始有終)한 한정적인 존재입니다. 태어났다가 때가 이르면 죽고마는 존재가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 지존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 그리고 만물을 주심으로서 살아가는 존재가 곧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생이 아닌 죽음이 다가옴으로 인해 인생이 종지부를 찍는 것이 사실입니다.1. 죽음의 의의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도 존재의 사라져버림도 아닌 분리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영혼의 죽음이란 생명의 본체이신하나님과 영혼이 분리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범죄하면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겔18:4).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것이 곧 영혼의 죽음입니다. 둘째, 육체의 죽음이란 영혼과 육이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육체가 영혼과 분리될 때 육체만 남게 됩니다. 영혼이 떠난 몸은 부패되고 썩어버립니다. 야고보서 2:26절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이 있는데 이것은 마지막 대심판대 앞에서 주를 밎지 않던 불신자들이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어 고통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끝도 없는 세월 동안 단절된 상태와 분리된 상태 속에서 영육이 다같이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2. 사후 상태죽고 난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세 가지로 그 상태를 성경은 보여줍니다. 첫째, 일반적인 상태인데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죽은 후엔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죽거나 자는 것이 아니라 멸하지 않는 생을 가지며 죽은 후에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둘째, 신자의 상태를 보면 의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에 올라가서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구속되기를 기다립니다(히 12:23, 고후 5:1,6). 셋째, 불신자의 상태인데 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짐을 받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고통과 어두운 가운데서 대심판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들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권능으로서 능욕을 당하기 위해 부활하게 됩니다.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좋은 세계로 갈 수도 있고 나쁜 세계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최후를 장식할 것인가? 이는 대단히 중요한 최종의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이 땅에 영원토록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는 날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부름을 받는 날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000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모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하여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000님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000님과 가족 여러분들이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 천국의 소망이 든든한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영원한 세계찬송: 291, 295성구: 고후 5:8-9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던 고 000(직분)님께서 0일 0시 00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셨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000(직분)님께서 살아 생젼에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는지. 믿음에 있어서 항상 최선의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눈물과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00년간 병석에 계시면서도, 자신보다는 늘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000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한 자녀들이 믿음 위에 서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이제는 000님의 뜻을 받들어 더욱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유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1. 바울 사도의 소원사람들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도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몸을 떠나가서 주님을 만나 뵈옵는 그것이었습니다. 먼저 부르심을 입은 000님께서도 바울과 같이 속히 육신을 떠나 주님을 만나 뵈옵기를 소망하셨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몸 안에 거하든지 또는 떠나든지 간에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이 세상을 떠나, 몸을 떠나 주님을 만나는 것을 고대하였을까요?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이 세상에는 없는 참된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000님께서도 이제는 죄악된 세상에서 떠나서, 슬픔 많은 이 세상을 떠나서 더 이상 아픔과 고통이 없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는 줄 믿습니다.2. 성도들의 소원누가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까? 선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믿어 사죄의 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 000님은 예수를 믿어 이미 저 영원한 하늘나라 시민권을 받은 천국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 그분이 그렇게 소원하시던 것과 같이 주님과 더불어 이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 000님의 시신 앞에서 자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떠난다 하여도 하늘나라에 들어가 계시는 고 000님을 만날 소망이 있습니까? 이 소망이 여러분들의 변치 않는 영원한 소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고 000님은 그 동안 많은 어려움과 역경 중에서 고달픈 생활과 무거운 짐을 지고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쉬라 하시매 이 모든 무거운 것과 짐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 안식의 세계에, 행복의 세계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세계, 천군천사들이 찬송을 부르는 세계를 바라보시면서 마음에 위로와 평강을 누리는 유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 설교(믿지 않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제목: 영원한 장막찬송: 187, 188성구: 고후 5:1-5우리는 나그네 인생들입니다. 누구든지 이 장막집에서 영원토록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그네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인생들입니다. 자녀들이 휴가를 받아서 텐트를 들고 경치 좋은 바닷가에 며칠지냅니다. 그런데 거기서 영원토록 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육신의 장막집은 언젠가는 무너질 날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흙에서부터 왔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1. 하나님께서 지으신 장막집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는데, 만약 우리 인생이 그렇다면 우리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생명이 끝나고 나서는 반드시 선악을 판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의 말씀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그네 인생을 잘 살아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천국에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심판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둘러 앉은 유족들에게 저는 목사로서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남은 날이 얼마일런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비록 이 땅에 살아도 믿음으로 준비하며, 우리도 우리의 장막집을 벗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소망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2-3절 말씀에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리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2. 천국 소망이 있는 사람사람의 몸은 흙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의 생명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날이 한 번 불어 흔적도 없어지는 바람 같고 공중에 쏘아서 금방 보이지 않게 되는 살과도 같습니다. 해가 오르면 말라서 사라지는 아침 이슬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가야합니다. 죽음의 길을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같이 정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귀한 유족들의 영혼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 아버지 집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고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라건대 사랑하는 유족들과 친지들 그리고 모든 이웃들에게도 지금 바로 이 위로가 함께하사 과도한 슬픔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이라는 형벌을 주신 대신에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천국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만이 이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명예로 집을 짓고 어떤 이는 돈으로 집을 짓습니다. 어떤 이는 힘으로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지은 집은 육체가 죽는 그 순간에 함께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 6:7) 이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돈을 쌓아 놓고 이제 잘 살아보자고 하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명예를 얻어 놓고 그 다음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지은 집은 영원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모든 유족들이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훗날 아버지 집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 설교제목: 죽음조차 귀중합니다성구: 시 116:5-16사람이건 짐승이건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고차원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부터, 말초신경만으로 살아가는 한낱 미물조차도 죽음을 두려워하며 거부하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두렵고 공포스러운 죽음이 아닌 귀하고 복된 죽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도의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신다고 가르쳐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1. 하나님이 우리를 후대하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두시고 때를 따라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는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 하나님 나라에서도 계속될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후대하십니다. 이 세상 살 동안도 그러셨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크게 우리를 후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도의 자격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성도란 누구입니까? 말 그대로 거룩한 무리입니다. 누가 거룩합니까? 아무리 노력하도 근본이 죄악된 우리 인간은 거룩해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은 사람들만이 거룩한 무리,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영원한 천국, 우리의 본향에 돌아가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귀한 것입니다.3. 우리의 결박을 푸셨기 때문입니다.인생을 산다는 것은 온갖 결박에 묶여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고의 결박, 질병의 결박, 사고의 결박, 물질의 결박 등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는 많은 결박에 묶여 살아갑니다. 성도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그 결박을 푸시고 영원한 자유를 허락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없습니다. 완전한 기쁨과 평화와 안식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죽는 것, 즉 예수 안에 죽는다는 것은 공포스럽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된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가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육신의 이별은 슬픈 일임이 분명하지만, 이 죽음이 성도의 죽음이 되었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죽음조차 귀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천국을 소망 중에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입관예배 설교(일반적인 죽음일 경우)제목: 사모의 정찬송: 221, 222성구: 창 50:22-261.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타향살이는 사람에게 그리움과 외로움을 안겨다 줍니다. 고향 사람이 그립고 고향의 정취가 그립고 흙내음이 그립습니다. 북한에서 넘어온 수많은 실향민들이 아직까지 고향 산천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거나 통일에 접근하는 움직임들이 있을 때마다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습니다. 공산치하의 숨 막히는 삶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리운 고향 산천에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으로 통일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향에 대한 사모의 정입니다.2. 약속의 땅을 사모하는 요셉요셉은 어린 시절 형들의 시기 때문에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하고 외국에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그가 팔려온 곳은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보디발은 애굽에서는 직위와 명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파란만장한 타향살이 가운데, 애굽에서 출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사모의 정이 항상 그의 마음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해 팔레스타인에 기근이 생기게 되었고, 그 기근으로 먹고 살기 힘든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꿈을 통해 먹을 것을 비축해 두었습니다. 이제 야곱이 살 수 있는 것은 애굽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수차례의 시도 끝에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애굽에 내려가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요셉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행복한 시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땅이 아무리 행복이 있다고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입니다.그는 행복한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드디어 요셉의 나이도 110세가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 선 요셉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자족들에게 잊어서는 안 될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요셉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 때한 비전이 있었고, 그 땅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그 약속의 땅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갈 곳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후손들에게 확답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타향 땅 애굽에 영원히 묻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유골을 약속의 땅으로 이장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죽었고, 그의 육신은 향재료를 발라 애굽에서 입관하였습니다.3.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고 있습니까?세월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죽음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속에 간직되어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 역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들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약속의 땅, 그 가나안에 대한 사모의 정은 죽음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그리운 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죽음을 눈앞에 두었다면 여러분들의 가슴에 무엇이 가득 차 있겠습니까? 돌아가고 싶은 그 어떤 세계가 있습니까?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혼의 안식처, 영원한 본향에 대한 사모의 정이 있습니까? 우리의 마지막 소망이 무엇입니까? 만약 우리가 이 세상 것으로 많이 채워두고 애착을 가지는 것들을 만들어 두면 본향에 대한 사모함이 적어질 수 있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운 분이 계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당신의 마음이 이 세상 것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하거나 영원한 본향에 대한 사모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입관예배에 참석한 우리의 입에서 “너희는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입관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지상에서 영원으로찬송: 294성구: 빌 3:20-211. 새로운 피조물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천국의 시민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시는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미 영원한 하늘의 고향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 소망은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이 소망은 복스러운 소망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끄럽지 않은 소망입니다(딛 2:3). 만약 우리에게 이 영원한 산 소망이 없었다면 이 지산에서의 삶은 무의미하며 살맛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망 때문에 슬픔 가운데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2. 믿음의 이유이런 믿음에 대한 두 번째 이유는 삶은 이런 육체적인 존재에 비해서는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매 7년마다 우리의 육체적인 몸은 완전한 쇄실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생명이 있는 동안 여러 번의 몸들을 경험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격은 지속합니다. 사상들과 기억들과 소망들과 목적들은 모두 이런 육체적인 변화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유지되어 왔습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 여러 번의 몸들을 소모한 후에 인격이 천상적인 몸으로 계속하여 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왜 어려운 것입니까? 사실, 생의 가장 참되고 가치 있는 것들은 몸 안에 갇혀 있을 수 없으며, 고학에 의해서 측정될 수도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고귀한 인격과 신실한 우정, 이와 같은 가치들이 우리의 몸 안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격의 가장 귀중한 소유인 것입니다.하늘의 고향에 대한 믿음을 갖는 세 번째 이유는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이 지상의 식민지로 보내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사셨으며, 사랑하셨으며, 죽으셨는가를 보았습니다. 그는 생을 떠나는 자로서가 아니고 더 큰 생으로 들어가는 자로서 죽음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 그리고 죽음의 사실에 대해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고향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셨고, 또한 그 하늘나라에서 지금도 살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아버지 집으로 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때로는 연약하여 넘어지기도 하고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다하는 날이 있지만,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3.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라먼저 부르심을 받은 고 000(직분)님은 이런 소망 가운데 그의 몸은 비록 이 땅 위에서 병과 싸우는 삶을 살아가셨지만, 이제 이 땅 위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우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에게도 남은 소망이 있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놀라운 믿음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큰 선물입니다. 모두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입관예배 설교제목: 수고의 집을 벗고성구: 마 11:281. 인생을 산다는 것은 짐을 지고 가는 과정입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짐을 지고 어떤 사람은 작은 짐을 지지만 누구나 짐을 지는 수고로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던 사람도, 태생이 출중하고 천성이 훌륭해도 어쩔 수 없는 수고로움의 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각자 나름대로의 짐을 지고 그 무게를 버거워하며 한걸음 한걸음 힘든 발걸음을 옳기는 존재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짐을 지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2. 예수께서 이 무거운 짐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다 내게로 오라”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구의 초대를 받느냐가 그 사람의 품격과 지위를 나타냅니다. 이웃집이나 친척들의 초대를 받으면 편한 옷차림에 과일이나 한 바구니 준비해 가면 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초대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맞는 품격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옷차림부터 달라집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나, 맘에 드는 옷이 없다면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가 멋진 옷을 사 입게 될 것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 단장하고 초청받은 장소로 들어가세 될 것입니다.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대통력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만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초대한 자리에는 멋진 옷도 필요 없습니다. 미용실이나 이발소에서 머리를 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의 초대는 그저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의 초대장을 준비하면 됩니다. 그 믿음으로 초대자리에 나아가는 것입니다.3. 주님께서 우리를 쉬게 하십니다.세상은 그 어느 곳도 쉴만한 것이 없습니다. 휴가가 되고 방학이 되어 산으로 들로 가보지만 세상은 여전히 수고로운 일들이 가득 찬 곳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인생의 수고로운 짐을 잠시 잊을 수는 있겠으나 벗어놓고 쉴만한 곳은 없습니다.요한복음 16:33을 보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환란이 있는 곳입니다. 세상이라는 곳은 어려움과 수고로움으로 우리에게 참 쉼을 주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계신 곳에는 참 쉼과 안식이 있습니다. 그것에서 비로소 우리는 수고의 짐을 벗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4:13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000성도께서는 주님의 초대를 받아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찬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 더 이상은 수고의 짐을 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초대되셨습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관에 누인 시신과 소의를 걸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영혼은 믿음의 초대장을 가졌으므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거기서 인생의 수고로운 짐을 벗고 참된 안식을 우리고 계실 것입니다.이 입관식이 끝나면 더 이상 고 000성도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 기쁨의 잔치 자리에 앉아 있는 고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입관예배의 시간은 육체의 이별이 아쉬운 슬픔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고의 짐을 벗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 가운데 바라보시는 유족과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발인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성도의 고백찬송: 231, 293성구: 딤후 4:7-81. 아름다운 고백이 땅을 떠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땅을 떠날 때 신분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을 많이 모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많이 누렸을 것입니다. 대단한 지식을 소유하고 살았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을 떠날 때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고백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제가 봉독한 디모데후서 4:7-8절의 고백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악한 영과의 싸움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싸움입니다. 비록 세상의 많은 것을 누리지는 못했을 수 있습니다.바울 사도가 이 고백을 할 때에 그는 어떠한 상황에 있었습니까? 그는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죄수의 신분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평생을 분투하며 살아온 그 결과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바라볼 때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내가 선하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담대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러한 고백을 하는 사람을 향하여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진실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2.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그리고 그는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자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 000(직분)님의 발인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고인을 더 이상 이 땅에서 볼 수 없다고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고인이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을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바치고 이 땅을 떠나가시는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백을 하나님 앞에 바친 자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 고인에게 주어질 것을 생각하면서 유족 여러분들은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고인은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고인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그는 여러분들을 향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다. 너희들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선한 싸움을 잘 싸우기를 바란다. 달려갈 길을 다 달리기 바란다. 나에게는 이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이것은 나만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를 위하여도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무엇이 이토록 담대한 고백을 가능하도록 만듭니까?그것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모든 것의 종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그들은 압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에 처해서도 담대하게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3. 고인을 떠나보내고 슬퍼하지 않는 근거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 땅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하는 슬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울고만 있을 수 없는 근거가 됩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뵈는 집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우리는 사랑하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우리에게 저절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유족 여러분, 지금은 이곳에 시신만이 남아 있는 고인이지만 고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무엇입니까? 고인을 사랑하는 열심히 좋은 수의와 좋은 관을 준비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드리려고 애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고인을 가장 사랑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잘 믿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천국에서 고인을 다시 만날 확신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확고히 가지시면서 믿음의 길을 걸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인예배 설교(불신자의 가정일 경우)제목: 하나님의 심판과 영생찬송: 289, 291성구: 빌 1:20-211. 피할 수 없는 죽음오늘 우리는 고 000(직분)님의 발인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죽음의 현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의 현실 앞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죽음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당연하게 다가오는 사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과연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어 넘어진다 해도 우리는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죽어야 할 존재로 창조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가 문제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인해 에덴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로마서 6:23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가 죽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죄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생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9:27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죄로 말미암아 죽음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없게 된 것입니다.2. 죽음 뒤에 기다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영생말씀은 우리에게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현실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 제가 봉독했던 빌립보서 1:21은 죽음의 문제를 담대하게 증거하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바울 사도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내 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여 종노릇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바울은 죽음 자체도 초월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까? 바울 사도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만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있음을 바울 사도는 담대히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인 것입니다.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됨을 바울 사도는 알고 있기에 담대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다고 빌립보서 1:23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내일이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안락한 주택 안으로 들어갈 소망이 있는 광야의 백성이라면 이제 다 낡아서 허물어져가는 천막에 연연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3. 천국을 향하는 영적인 진군유족 여러분, 사랑하는 분의 죽음 앞에서 애통함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앞에 죽음의 모습으로 있는 고인은 바울 사도의 믿음의 고백을 이해하고 살았던 분임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고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고인의 죽음은 의미없는 죽음이 아닙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영적인 진군인 것입니다. 고인의 무언의 외침의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유족 여러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아무리 대단한 무엇을 하면서 살았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천국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바로 그럴 때 저와 여러분들도 동일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입니다.** 발인예배제목: 하늘 가는 밝은 길성구: 엡 2:4-10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일생을 살아가기도 힘에 겹지만, 고단한 삶을 살고 난 후에도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몸들인 것입니다. 모두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도 살고 또 죽은 후에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다는 귀한 사실을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누가, 누구를 통해 그리고 어떻게 저 하늘로 가는 밝은 길을 가도록 해주셨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 이곳을 떠나는 형제(자매)도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떠나셨는데 누가, 누구를 통해 어떻게 이 길을 가도록 해주셨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위로와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1. 죄인된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신 길입니다.바울은 누가 이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마련해 주셨는지를 생각하면서 이 구원의 길, 하늘 가는 밝은 길은 4절에 있는 대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위해 이 길을 준비해 주셨다고 했습니다.아담이나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금기인 선악과를 따먹고,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그 피를받은 후손들, 곧 우리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생각이나 판단함에 있어서 그 행위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었는데 긍휼이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우리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은 뒤에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에게 새 사람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바울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 이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열어주었는지를 말해 줍니다. 5-6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RP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은혜로써 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전혀 소망 없는 길을 가고 있던 우리들에게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열어 주시려고 그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귀한 보좌를 떠나서 이 땅과 역사 속에 오셨고 우리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던 죽음의 원인을 십자가에서 대신 지셨으며 우리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그래서 구원받고 영원히 밝은 하나님 나라로 가게 된 것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은혜)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길이 하늘 가는 밝은 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는 이 길을 갔으니 우리 모두 이 사실을 믿고 큰 위로와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길입니다.바울은 사랑의 하나님이 은혜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려진 하늘 가는 밝은 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8절)라고 하며 믿음으로 얻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가고 싶은 저 하나님 나라는 믿음 없이는 못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 아들 예수를 우리 모두의 구세주로 믿을 때에만 하늘 가는 밝은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주님께서 친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갈 수 있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우리 형제(자매)가 떠난 것입니다.막막한 길, 외로이 가신 것이 아니고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주님 손 붙잡고 믿음으로 가신 것을 생각하며 위로받고 남기신 유업과 유훈, 맡기고 가신 일, 마음으로 부탁하고 가신 모든 일들 잘 이루기로 다짐하며 전송하시기 바랍니다.** 하관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죽음으로 이룬 사랑찬송: 290, 545성구: 눅 23:50-521.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가장 이상한 하관예식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죽어서 땅에 묻히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빚어진 인간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된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시신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찢긴 몸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정성껏 예수님의 시신을 닦습니다. 예수님의 온 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리마대 요셉은 그 몸을 닦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옴 몸을 세마포로 싸기 시작합니다. 또 향품을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요셉은 세마포로 감싼 예수님의 시신을 아직 한사람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사 53:9).외관으로만 본다면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는 장례의 예식입니다. 하지만 부자의 묘실에 넣어지는 그 시신은 누구의 시신입니까? 예수님의 시신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시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히브리서 1:1-3에서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말씀합니다. 그 본제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말씀합니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며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보좌에 앉으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차디찬 굴에 세마포에 감겨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누구를 위함입니까?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를 위함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입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2. 믿는 자의 영광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 000(직분)님의 하관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고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인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땅에 묻히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던 사람의 시신이 땅에 묻히는 것은 참으로 소망이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으로 묘소를 꾸민다 하여도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땅에 묻히는 고 000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땅에 묻히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이 땅에 울려퍼지는 날 고인은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혼은 이미 낙원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울지만 마시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가지시고 위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관예배 설교(불신자의 가정인 경우)제목: 성도들이 가는 곳찬송: 292, 545성구: 계 21:10-231. 성도들이 가는 곳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는 고 000(직분)님의 하관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관이 잘 파놓은 묘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이 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고인의 관이 묻힌 이곳을 흙으로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묘지 앞에는 ‘성도 000’라는 이름이 적힌 묘비가 설 것입니다. 온화하고 사랑이 넘치는 000님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슬픔이 몰려오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슬픔의 이야기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늘 제가 봉독해 드린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고 유족 여러분 우리는 물건을 사기 위해 가끔 백화점에 갑니다. 대부분의 백화점에는 1층에 많은 잡화상품과 함께 보석을 파는 매장들이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치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그 보석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은 가끔은 금은보석을 파는 가게에 가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세상 욕심을 키우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보석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 보석을 보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18-20의 말씀을 봅시다.제가 왜 이 말씀을 읽는지 아시겠습니까? 제가 왜 가끔은 성도들이 보석상에 가볼 필요가 있다고 했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사랑하는 고 000님이 가신 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2. 새하늘과 새땅에 거할 수 있는 자보석으로 꾸며진 집이 있습니다. 정금으로 된 성입니다. 모든 성곽은 벽옥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000님이 가신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모든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가게 될 나라입니다. 고인을 더 이상 뵙지 못한다고 하는 안타까움의 눈물이 있는 이 자리는 눈물만이 있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물론 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장례의 고통스론 부르짖음 같아서는 안 됩니다. 소망의 눈물, 기쁨이 담겨 있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우리가 가는 그 나라에는 더 이상 성전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그 어린양이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성에 들어가 이 영광스러운 기쁨에 동참할 수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21:27을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랴” 누구입니까? 누가 새하늘과 새땅에 거할 수 있는 자들입니까?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믿는 여러분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인하여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혹시 아직 믿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복음을 받아들이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고인이 믿고 구원 받은 백성으로 이 땅을 떠나셨음을 인하여 감사하시가 바랍니다. 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의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미 천국으로 가신 고인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관예배 설교제목: 안식의 삶성구: 창 2:1-3안식에 대하여 하나님은 일찍이 창조 사건에서부터 말씀하셨습니다. 6일 동안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지으시던 일을 다함으로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1. 안식의 의미이 세상의 수고와 무거운 삶을 마감하고 고인은 지금 안식의 세계에 들어가셨습니다. 고인을 안장하는 이 자리에서 안식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 마지막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 하나님은 그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안식, 하나님이 먼저 본을 보이신 안식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안식은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기에 하나님은 창조기사에서 안식을 중요하게 다루고 계십니다. 6일 동안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자들이 7일째 되는 날에는 안식하도록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신성국가의 핵심인 십계명의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말씀하셨습니다.안식일은 하나님이 주신 날이요, 하나님이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 이 날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써 지킴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게 됩니다. 창조의 안식을 주신 하나님이 애굽이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하며 거룩히 지키는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2. 안식의 복만일 안식일이 없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노동과 수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국 일의 노예가 되거나 일의 중독자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안식이 없는 수고의 삶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복입니다.또 안식일이 없다면 인간은 창조의 세계에 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생명이 없는 죽음의 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오서 생명을 부여 받은 존재입니다.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것은 곧 죽음이요, 저주요, 심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인간에게 안식을 주신 것입니다.여기 창조의 안식은 안식일의 기원이 되었고 안식일은 7년째의 안식년으로 발달됩니다. 또 안식년이 일곱 번 합해진 49년 다음 해는 50년째의 희년으로서 모든 종들이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땅과 소유물이 원주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3. 안식의 세계인간은 이 땅의 수고로운 삶을 다 마치면 영원한 안식의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영원한 안식은 저주가 아닙니다. 고통이 아닙니다. 영원한 안식은 하나님이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요, 가야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이 고인을 떠나 보내는 자리이지만 너무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고인은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제는 수고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습니다. 어두운 밤도 없고 저주도 없는 곳입니다. 죽음도 다시는 없는 곳입니다. 오직 성도의 죽음은 칭찬과 영광과 상급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안식이 있고 천국이 있고 부활과 영광의 상급만이 있습니다.이제 우리 곁을 떠난 고인은 지금 주님의 품에 안겨 칭찬과 존귀 가운데 참 안식과 참 평안을 누리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소원합니다.이 땅에서는 참 안식이 없습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안식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참 안식은 하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약속한 안식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요,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의 삶을 준비하는 자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믿음의 심령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화장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마지막 날 부활에는찬송: 228, 545성구: 요11:24-271. 부활을 보여주신 예수님오늘 화장예배 앞에 머리 숙인 우리는 다시 한 번 인생의 결과에 대해 예측해 보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한 가정의 슬픔과 영원한 세계를 향한 소망의 빛줄기가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가정과 특별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부모 없이 3남매가 힘겹게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사로는 병이 들었습니다. 슬픔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슬픔 가운데 두 자매가 생각해낸 것이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사람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간을 지체하셨고, 그동안 나사로는 죽음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가정과 동네 사람들은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늦은 시간에 마리아의 가정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썩어 들어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그러나 얼마나 야속한 눈물입니까? 조금만 빨리 오셔도 충분히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왜 이렇게도 짜증스러울까요?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믿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썩어진 육신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묻혀 있는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놀랍게도 나사로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미 죽은 시신입니다. 이미 부패된 몸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그를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야 우리는 예수님이 왜 이렇게 늑장을 부리셨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부활의 실체’를 확증시켜 주기를 원했고, 자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2.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는 상관없이 고인의
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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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 설교모음남겨진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운명 전 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위로와 소망찬송: 539, 545성구: 살후 2:16-171. 이별이 주는 선물사랑하는 애인과 이별을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일도 하기 싫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삶 자체에 대해 별 의욕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아픈 마음을 들어 주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에 다 동참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아픈 마음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말도 해주지를 못했습니다. 세월이 약임을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인간의 헤어짐은 새로운 소망을 향한 출발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아픔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2.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데살로니가 교회는 ‘죽음’의 문제로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슬픔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불확실한 성도가 있었고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예배에 참여한 우리들도 다양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권면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먼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의 위로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상처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기억하십니까? 당신을 건지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통해 당신을 구하셨습니다.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정도로 존귀하신 분입니다. 당신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때 당신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근심에 빠진 자들에게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던 예수님을 기억하십니까? 하늘로 오르신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보혜사는 상담자, 위로자, 변호자를 의미합니다. 당신을 위로하시고 상담하실 분,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께 당신의 아픔과 슬픔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당신의 생애 속에 아무런 낙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말할 때 주님은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세계로 인도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둘째로 당신을 굳게 세워 주실 분이 누구입니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될 때 당신을 붙잡아 주실 분, 진리를 붙잡고 나아가는 당신이 실망될 때 당신을 든든히 지키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들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입니다. 당신을 영원한 나라까지 인도하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3. 영원한 위로와 소망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아픔과 슬픔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감추거나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허전함이 느낍니다. 저는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000님에게 하늘로부터 말미암는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이 넘쳐나기를 바라고, 굳게 세움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 둔 가족들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000님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영원한 소망의 줄을 잡고 믿음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슬픔 가운데 머리 숙인 우리를 능히 굳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가질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만큼 선한 싸움을 위해 질주할 뿐입니다.오늘 임종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십자가 그늘 아래서 위로 받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운명 전 예배 설교(돌아가실 분이 믿음이 없는 경우)제목: 인생의 종말찬송: 534, 539성구: 창 49:28-30인생이란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유시유종(有始有終)한 한정적인 존재입니다. 태어났다가 때가 이르면 죽고마는 존재가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 지존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 그리고 만물을 주심으로서 살아가는 존재가 곧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생이 아닌 죽음이 다가옴으로 인해 인생이 종지부를 찍는 것이 사실입니다.1. 죽음의 의의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도 존재의 사라져버림도 아닌 분리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영혼의 죽음이란 생명의 본체이신하나님과 영혼이 분리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범죄하면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겔18:4).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것이 곧 영혼의 죽음입니다. 둘째, 육체의 죽음이란 영혼과 육이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육체가 영혼과 분리될 때 육체만 남게 됩니다. 영혼이 떠난 몸은 부패되고 썩어버립니다. 야고보서 2:26절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이 있는데 이것은 마지막 대심판대 앞에서 주를 �지 않던 불신자들이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어 고통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끝도 없는 세월 동안 단절된 상태와 분리된 상태 속에서 영육이 다같이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2. 사후 상태죽고 난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세 가지로 그 상태를 성경은 보여줍니다. 첫째, 일반적인 상태인데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죽은 후엔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죽거나 자는 것이 아니라 멸하지 않는 생을 가지며 죽은 후에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둘째, 신자의 상태를 보면 의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에 올라가서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구속되기를 기다립니다(히 12:23, 고후 5:1,6). 셋째, 불신자의 상태인데 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짐을 받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고통과 어두운 가운데서 대심판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들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권능으로서 능욕을 당하기 위해 부활하게 됩니다.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좋은 세계로 갈 수도 있고 나쁜 세계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최후를 장식할 것인가? 이는 대단히 중요한 최종의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이 땅에 영원토록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는 날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부름을 받는 날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000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모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하여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000님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000님과 가족 여러분들이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 천국의 소망이 든든한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영원한 세계찬송: 291, 295성구: 고후 5:8-9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던 고 000(직분)님께서 0일 0시 00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셨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000(직분)님께서 살아 생젼에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는지. 믿음에 있어서 항상 최선의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눈물과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00년간 병석에 계시면서도, 자신보다는 늘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000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한 자녀들이 믿음 위에 서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이제는 000님의 뜻을 받들어 더욱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유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1. 바울 사도의 소원사람들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도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몸을 떠나가서 주님을 만나 뵈옵는 그것이었습니다. 먼저 부르심을 입은 000님께서도 바울과 같이 속히 육신을 떠나 주님을 만나 뵈옵기를 소망하셨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몸 안에 거하든지 또는 떠나든지 간에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이 세상을 떠나, 몸을 떠나 주님을 만나는 것을 고대하였을까요?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이 세상에는 없는 참된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000님께서도 이제는 죄악된 세상에서 떠나서, 슬픔 많은 이 세상을 떠나서 더 이상 아픔과 고통이 없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는 줄 믿습니다.2. 성도들의 소원누가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까? 선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믿어 사죄의 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 000님은 예수를 믿어 이미 저 영원한 하늘나라 시민권을 받은 천국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 그분이 그렇게 소원하시던 것과 같이 주님과 더불어 이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 000님의 시신 앞에서 자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떠난다 하여도 하늘나라에 들어가 계시는 고 000님을 만날 소망이 있습니까? 이 소망이 여러분들의 변치 않는 영원한 소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고 000님은 그 동안 많은 어려움과 역경 중에서 고달픈 생활과 무거운 짐을 지고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쉬라 하시매 이 모든 무거운 것과 짐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 안식의 세계에, 행복의 세계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세계, 천군천사들이 찬송을 부르는 세계를 바라보시면서 마음에 위로와 평강을 누리는 유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어린이 장례설교제목; 울지 말라. (눅8:29-56절,539장)우리 인생들에게는 죽음이 있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어린이의 죽음 앞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누구가 슬픈 죽음 앞에서 “울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1.생명의 주관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생명은 내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생명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14;6절),2.부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하시니 아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사로를 부활 시키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그리고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 대문에 우리 주님은 잔다고 하셨고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3.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물질세계, 즉 육에 속한 세계는 잠시 잠깐입니다. 70년, 90년, 100년, 천년, 만년이라도 영적세계에 비하면 하루만도 못한 것입니다.어린 생명이 예수를 믿어 주님의 품에 갔으면 행복의 동산 천국에 간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영원한 세계에서 부끄러움 없이 만날 준비 잘하셔야 합니다. “울지 말라”는 말씀은 “나만 믿어라”는 명령이 전제하고 있습니다.정말로 우리 주님만 믿으면 눈물과 괴로움을 기쁨과 영광으로 바꿔 주시는 분이십니다. 유가족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신분이 계신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었으니 예수님을 영접하시므로 온 세계를 가슴에 안을 수 있습니다.에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의 죄를 이기고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2)어른 장례 설교# 1 제목 : 인생과 죽음, (요5:24-29절, 544장),사람이 세상에 출생함은 죽음에로의 출발이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과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요?첫째.죽음의 정의입니다.(1)죽음이란 분리입니다…. 죄 때문에 죽음이 왔는데 이는 곧 하나님과의 분리와 인간끼리의 분리 곧 영혼과 육체와의 분리인 것입니다.(2)죽음이란 만민의 공도입니다… 죽음이란 차별없이 만민에게 평등하게 오는 것이기에 공도인 것입니다.(3)죽음이란 절대적입니다… 태양의 일출과 일몰을 사람이 어찌 할 수 없듯이 죽음음 또한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4)죽음은 완전한 비밀입니다….죽음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 올지는 아무도 모르니 완전한 비밀입니다.둘째. 죽음의 종류입니다.성경에 보면 인간의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1)영광의 죽음이 있습니다….천국 영생에 들어가는 성도의 죽음이 영광의 죽음입니다. (2)형벌의 죽음이 있습니다…지옥에 들어가는 악인의 죽음이 형벌의 죽음입니다.셋째. 죽음의 준비를 잘하여야 합니다.우리는 이 고인 앞에서 생각할 것은 죽음 준비 잘하여 영광의 죽음을 맞이하여 천국 영생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1)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 분은 죽음을 죽여 부활로써 생명의 주인이심을 증명하신 분이시기 대문입니다.(2)철저하게 회개를 해야합니다….죄 때문에 죽음이 왔으니 예수를 믿고 모든 죄를 회개 해야 합니다. 죄 문제만 해결되면 지상에서부터 천국 영생의 삶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3)복음을 위해 투자하여야 합니다….시간, 물질, 재능, 내 생명까지도 복음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죽은 후에 천국에서 면류관의 상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유가족 여러분! 경건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제목: 성도의 영원한 집. (계7:13-17절, 찬송 545장)세상을 떠나신 고 ㅇㅇㅇ ㅇㅇ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셨으니 예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집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그곳은 위로가 넘치며 기쁨이 넘치는 무궁한 행복의 나라요 우리 성도들이 가서 살아야 할 영원한 집이요 본 고향입니다.첫째.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이 세상은 만족이 없는 곳입니다. 삭월세, 전세집 사는 사람이 맨션이니 아파트하다가 정말로 고급 주택을 마련하면 만족할 까요? 아닙니다. 더 큰집, 더 좋은 집, 이태리식 집, 고대풍 집, 미국식, 영국식 하면서 헐 떡이는 삶을 사는 것이 오늘의 실정입니다. 그러나 고 ㅇㅇㅇ ㅇㅇ님이 가신 천국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 부족함이 없이 넘치고 만족스럽게 채워주시는 곳 입니다.둘째. 목자되신 주님의 인도를 받는 곳입니다….양의 생명은 목자에게 달려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안에 있는 생명은 예수님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집에 인도된 성도는 예수님이 목자가 되어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십니다. 생명수 샘이 있으니 기갈이 없고 목마름도 없고, 생명수가 넘치는 곳입니다.셋째. 눈물을 씻어 주시는 곳입니다…이 세상에서 신앙 대문에 겪은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완전종결시켜 주시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은혜를 주시는 곳이 성도의 영원한 집입니다. 고 ㅇㅇㅇ ㅇㅇ님은 이 귀한 곳으로 가셨으니 슬퍼하지 말자. 머지 않는 장래에 우리들도 그곳으로 갈 것이니 지금부터 그 집에 갈 것을 준비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귀한성도 ㅇㅇㅇ는 영원한 집에 가셨으니 우리 남아 있는 성도들은 그 나라를 바라보며, 그 곳의 주인 되신 우리 주님을 사모하면서 머지 않은 장래에 부끄러움 없이 그곳에서 만나는 유가족과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제목 : 인생의 삼대 질문, (창16:7-8절, 찬송 290장)인생의 삼대 질문이란? (1)어디에서 왔느냐? (2)무엇을 하느냐? (3)어디로 가느냐? 입니다. 이 삼대 질문의 대답은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첫째. 인생은 어디서 왔습니까?인생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다윈의 진화론처럼 원숭이에게서 났습니까? 신화에서 말한 것 처럼 곰이나 소에게서 낫습니까? 아닙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창2;7절),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지요 축복의 근원이신 것입니다.둘째. 인생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중국 어느 마을에서 부친의 비문을 세우는데 쓸말이 없어서 “먹다 죽다”라고 써서 비를 세웠다는 이야가가 있습니다. 사람의 목적을 모르는 자들은 다 이런 인생인 것입니다.그러나 고전 10:31절에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고, 전12:13절에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문이니라”고 하였습니다.셋째. 인생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세월이란 열차를 타고 죽음이란 종착역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영원한 곳이 있습니다.하나님을 믿지 않고 죄악만 지으며 짐승처럼 산 사람들은 천국으로 못가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것은 본 고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에수님이 아름답게 구민 영원한 집이요 그곳으로 가는 것은 금의 환향하며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천국가는 길이 여럿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길인데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길인 것입니다. 요14: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장례설교 모음우천교회에서 가져온글 입니다주례자는 고인의 머리 쪽이나 발치 쪽 편한 곳에 앉거나 서서 주례.1. 예식사 – 지금부터 고 이송학 형제의 임종 예배를 드리겠습니다.2. 묵도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3. 찬송 – 544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4. 기도 – 장로님, 인생의 생명을 주관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 이 시간 저희들은 고 이송학님의 임종 예배로 모였습니다. 인생이 늘 강건하여 천천 수를 누릴 것 같은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며 교회를 핍박했던 많은 날들이 이 고인에게 있었지만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가 누구 시며 또 우리의 영혼이 어디로 갈지 말년에 깨닫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이제 주님의 나라로 가신 이 영혼을 살피소서.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육체가 죽었음을 슬퍼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고 먼저 하늘 나라로 간 영혼을 생각하며 우리들도 열심히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며 다시 하늘 나라 천국에서 이 영혼을 뵈올 때에 부끄럼이 없기 위해 우리가 다시 한번 주님의 살아 계심을 확신하며 이 영혼이 하나님 통치에 들어갔음을 믿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육신의 남편, 육신의 아버지, 형제가 곁을 떠났기에 슬픔이 있을지라도 마음들을 위로하시고 더욱 믿음에 확고히 서실 수 있는 담대함과 믿음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특히 이제 기독교식으로 이 장례를 우리가 준비하고 치를 터인데 오히려 이번 기회로 지역이 변화 받게 하시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모든 장례 절차에 순서 순서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5. 성경 – 삼상20:3 –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다윗의 말에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나니 이 말은 곧이어 언급될 말에 비상한 강조를 하기 위한 서언 적인 표현입니다. 생과 사에 대한 종래의 많은 말들은 애매 모호한 표현 형태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의미심장한 진리인 죽음의 근접은 이러한 부류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가장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죽음의 경계선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진리를 아름답고 역동적인 상상 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 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나다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연한 풀잎, 새싹, 활짝 핀 꽃 부는 바람 언제나 날아다니는 그림자는 인생이 짧고 불확실하다는 점과 죽음의 확실성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적인 기관들도 우리에게 동일한 진리를 말해 줍니다. 심장의 고동도 메시지들이며 혈액의 맥박도 죽음에 대해 알려주며 조용한 숨소리도 생명의 마지막을 예고해 줍니다. 현재 모든 곳에서 작용하고 있는 파괴적인 수단들도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해 줍니다. 우리가 평안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은 너무도 쉽사리 우리를 멸망시키는 도구로 전락됩니다. 향기로운 공기는 파괴적인 태풍으로 돌변합니다. 시원한 빗방울과 은빛 실개천은 무서운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며 따뜻하고 안락하게 하는 불은 잔인한 화염으로 일변하기도 합니다. 말씀, 우리의 육체적인 기관 그리고 우리의 환경은 우리에게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이다. 라는 말을 결코 잊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그러하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직 한번밖에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이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세 가지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죽음,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즉 영원한 죽음, 구제 불능의 악인의 상태입니다. 본문은 이들 세 가지 중 첫 번째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멸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물질의 없어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물질이 다른 물질로 변형된다는 것은 멸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이성은 영혼의 동질적인 존재로서 영혼과 의식의 불멸 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기관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생명이라 불리는 현상의 종식을 불러일으키며 그 결과 일어나는 상태를 죽음이라 부른다. 그것은 보다 평이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이란 육체가 삶을 종식시킬 때 그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는 상태입니다. 영혼은 육체를 세내어 잠시 거주합니다. 시체는 빈방을 말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말해 육체적인 감각의 세계와 결별하는 것입니다. 시간에 속한 물질들은 뒤에 남습니다. 이러한 분리로 인해 우리에게 전개될 상태는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았던 생활에 좌우됩니다. 자기 도취적이고 관능적인 쾌락을 탐닉하고 죄의 생활은 죽음 이후 즐거움의 근원에서 끊어지게 하고 영혼을 형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덕목에서 모본으로 예시된 바 깨끗하고 상냥한 삶,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조명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삶,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삶,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 가장자리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는 삶이며 영광 세계의 밝은 빛 아래 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이며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날에 이르는 출입구에 불과한 것입니다.6. 찬송 – 545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7. 축도 또는 주기도고인의 시체를 먼저 관에 안치하고 뚜껑을 덮고 못을 치되 상주가 원하면 예배 후에 못을 친다. 관 앞에 상주와 가족들과 교인들이 관을 향하여 앉고 주례자는 관머리 쪽이나 발치 쪽 편한 곳에 앉거나 서서 입관 식을 주례한다. 교회 직분이 없는 고령자에게는 어른, 선생님, 여사, 할아버지, 할머니등 적절한 명칭을 사용한다)1. 예식사 – 지금부터 고 000님의 입관 식을 거행하겠습니다.2. 묵도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니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나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고후5:1-3 아멘.3. 찬송 – 541장 혹은 188장4. 기도 –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인생이옵나이다. 또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의롭지도 못한 죄인들이옵니다. 고인이 세상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도리도 다하지 못하였사옵고 형제로서의 사랑도 그에게 다 베풀지 못하였음을 슬퍼하오며 하나님 앞에 참회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저희들을 긍휼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이제 고 이송학님의 시신을 입관하여 장례를 준비하고자 하오니 성령께서 이 자리에 임재하셔서 모든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믿음과 소망을 더욱 굳세게 하여 주옵소서.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형제가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후사로 세워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의 귀한 진실된 생활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 성령께서 저희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사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5. 성경 – 히9:27 (죽음의 확실성)죽음이라는 것은 1.그 사실의 확실성과 보편성 2.그때의 불확실성 3.그 사실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깨닫지 못함.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알고 있으나 그것에 유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 이 땅 위에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처럼 생각하고 삽니다. 우리는 이 엄숙한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4.상실로서의 죽음. 엄숙하게 작별을 고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지상의 모든 부는 그들 스스로 날개를 가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지상의 목적들은 와해되며 지상의 우정들은 단절됩니다.5.여행으로서의 죽음. 그 때는 엄숙한 기대심을 갖고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장소는 심판대 앞입니다.그러면 심판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1.누구에게? 빈부 귀천 모든 사람에게 2.무엇으로, 모든 행위 언어, 바라던 것, 동기3.누구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은 현재 우리에게 구세주로 변호 자로 일하고 계시는 분4. 어떤 규칙에 의해서 그의 말씀 속에 계시된 율법에 의해 5.어떤 결과로 나타나는가? 모든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생병 아니면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 가운데 소망-1.소망의 근거. 우리 자신의 선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2.소망의 증거.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뜻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되어진 결과이다. 이것은 때때로 육체적 고통의 종식을 의미하기도 한다.마지막으로 슬픔을 당한 자에 대한 위로-진정한 위로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 외에는 없다.1.죽음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로 안내하는 생명의 길잡이.2.슬픔은 우리를 정화시킨다.6. 찬송 – 2937. 기도 –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셔서 인간의 생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저희들의 심령의 눈을 밝히 시사 영원히 슬픔과 고통이 없고 기쁨과 감사와 영광이 가득한 주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심령이 연약하여 넘어질 때 붙들어 일으켜 주시고, 슬프고 외로울 때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주셔서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친히 맡아 인도하여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8.축도1. 예식사 – 지금 우리는 이송학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 예식에 참석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엄숙하게 예식이 진행되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2. 묵도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생명의 주인이시고 죽음의 정복자이시며 어려울 때에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죽음의 현실 앞에서 슬퍼하고, 우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옵소서. 이제 우리가 슬픔을 딛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에 맡기면서 영원한 희망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3. 찬송 – 291장 날 빛보다 더 밝은 천국4. 교독 – 교독문 46번, 요14장중에서 교독5. 송영 – 찬송가 1장 또는 3장6. 기도 –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한없이 연약한 인생을 긍휼이 여기 시옵소서. 지금 저희들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가신 고 이송학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이곳에 모였사오니 슬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인 이 무리에게 위로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 이송학님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택하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어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누리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간구하옵기는 이 장례를 주께서 은혜로 주관 하사 슬픔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며 이곳에 모인 우리들도 하나님의 엄숙한 교훈을 깨달아 죄를 뉘우치고 굳센 믿음을 가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7. 성경 – 시25:8-8. 조가 – 성가대9. 약력 – 미리 준비하여 읽게 한다.10. 말씀 – 하나님은 본성에 있어서 끝임 없이 사망을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봄이면 그는 일 백만 개의 무덤을 헐으시고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진실로 그는 모든 곳에서 사망으로 생명에게 시중 들게 합니다. 사망은 생명을 발생케 하고 고양시키며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죽음 위에 승리를 쟁취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하며 영광스런 승리의 행진을 하는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최초의 승리를 주시해야 합니다. 사망의 세계에서 이제껏 가장 쓰라림을 맛본 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망은 그를 죽음으로 세상을 죽이고 인간도 죽였던 것입니다. 유대 산헤드린 공의 회는 로마 권력과 결탁하여 그 희생자를 무덤에 넣고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정복자는 일어났으며 사망의 영역에 침투하셨으며 그 감옥의 철장을 부수어 열어 놓았으며 착고를 낚아 채웠으며 죄인들로 새롭고 영광된 승리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서 사망의 공포를 몰아내신 그분의 다음의 승리를 주시해야 하겠습니다. 사망의 본질, 찌르는 것, 독, 그리고 능력은 단순히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관계된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에서 죽음에 관계된 모든 무서운 생각과 염려를 정복하는 것은 죽음을 정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위대하신 정복자 예수님은 지금도 이일들을 계속해서 행하시며 앞으로도 세상 종말 때까지 계속하실 것입니다. 진실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의 재료가 분리되는 순간에도 승리를 그러므로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보편적인 부활 때 승리의 면류관을 볼 줄 알아야겠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보편적인 부활이 일어날 때 불신의 소지는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엄청난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포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입니다. 보라 내가 한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홀연히 변화되리니. 라는 믿음의 선언을 여러분 모두 확신하셔서 이 고인의 믿음의 고백이 마지막에 있던 것을 헛되지 않게 우리들도 평생 주님을 모시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장례를 위해 오늘 수고하실 장안 지역의 여러분들과 또한 이 가정에 놀라우신 주님의 위로하심과 돌보심이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11. 기도 –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시며 성도들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주안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모든 수고와 시련을 끝내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높고 크신 경륜을 다 깨닫지 못하오나 저희들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과 영생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이 땅에서 환난과 역경을 이기며 하늘의 소망을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주의 종이 이 세상에 살 때 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었고 또 믿음으로도 주님 앞에 순복하여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유업을 받게 하여 주옵시고 이 장례 절차를 모두 주님께서 맡아 주관하시고 이 가정을 위로하시며 또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12. 인사 및 광고 – 호상 또는 장례 위원장13. 찬송 – 545장14. 축도 – 이제는 살아 계셔서 우리의 구속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하심과 성령 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의 역사가 오늘 상을 당하여 슬픈 중에 계신 고인의 가족들 위에와 이 장례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평강, 생명을 주시옵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15. 출관장지에 도착하여 매장하는 경우에는 먼저 매장 지에 하관하고 셋째 횡대만을 열어 놓고 하관 식을 한다. 화장하는 경우에는 화장 준비를 다하고 화장 직전에 집례 한다.1. 찬송 – 543장2. 기도 –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인생들입니다. 범죄한 인간들이 의로우신 주님 앞에 설 수 없사옵고 썩을 몸으로 영원히 살 수 없사오나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부활과 영생을 보증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천사 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게 하사 주님의 영광 속에 영원히 거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3. 성경 – 아모스 5:8-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 시니라.4. 성가대 특송 -5. 설교-죽음의 사자가 평온한 가정에 일격을 가한 날 아침, 태양은 밝은 빛을 잃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밤새도록 말없이 조용히 내리던 눈물도 말라 버렸고 더 맑은 새 하늘을 약속이나 한 듯 주셨습니다. 떠나 보내고 하염없이 슬퍼하던 밤은 그늘 속에 가리웠으나 지금은 우리들의 인생 모두 마지막 무렵에 영광스런 영생의 햇빛을 받게 되는 확신과 소망을 지금 우리는 갖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신뢰하는 자에게 죽음은 하나의 그림자이며 괴기한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은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소유라면 다른 아무것도 우리에게 괴물처럼 다가올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권세로써 원수들을 정복하셨으며 용기를 가지고 무덤도 정복하신 분이 예수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분은 그 이름은 여호와 시니라. 가장 위대한 문제는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외부의 어떤 도움이 없이 하나님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제법 고상한 철학과 사색과 분석을 한다지만 그것으로 무궁무진하신 하나님께 도달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스스로 끊어 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미워하지만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사울과 같은 인간들은 그들의 구차스런 생을 포기하기 위해 친구들을 부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러한 못난 인간들은 소수입니다. 우리는 비록 창고에서 값진 보석들을 이끌어 내어 구렁텅이에 떨어뜨리느 일을 하고 있을 지라도 흘러가는 세월을 집요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인생의 쾌락은 전진하는 데서 나오며 고통은 눈물을 흘리는데서 나오며 이러한 모든 것은 다 죄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파괴자 아니라 창조주이시며, 무덤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축복이 풍부한 물줄기를 타고 흘러 내려오는 근원을 발견케 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보존하시는 자이십니다. 생명을 창조한다는 말은 곧 먹고 입을 것을 공급해 준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우리를 보존하는 수단은 우리로 고마움과 사랑스러움과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가 우리로 고마움과 사랑스러움과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아낌없이 내려 주시는 모든 선하심에 대해 잠시 동안만이라도 생각 해보십시오. 그는 위대한 사랑의 동기에서 분점을 진행시키셔서 계절을 운행하심으로 봄에는 벚꽃이 피게 하시며 여름에는 온갖 식물들이 자라나게 하시며 가을에는 곡식이 누렇게 열매를 맺게 하시며 이모든 것들을 우리의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사별로 인해 배우게 되는 교훈은 십자가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 허물, 과오로 인하여 자원하여 나무에 달리신 성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이나 사색적 이론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샘영의 정률을 일으키는 축복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짧고 불혹 실성, 개개인의 책임, 우리의 곤궁함 등은 우리로 예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우리는 저 천국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크할 때 그의 자비하심에 의지합니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은 여러분들이 가는 길과 인생 행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나는 흑암의 캄캄한 곳으로 내려가고 있지 않은가 한번 자문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를 찾으라. 아모스가 하나님을 철저히 찾으라고 권면 하는 그 외에 어떤 다른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는 성실히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실 것입니다. 주를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죄인에게 주님은 만나 주시리라고 확신하십시오. 그러나 이 성실한 권면의 말씀은 죄인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는 믿음대로 살기를 다짐하는 우리의 가정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주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 고인의 시체를 땅에 묻지만 우리 모두 인생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시는 귀한 기회들이 되시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위로함 받으시는 유족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6. 선고 – 주례자가 흙을 한 줌 관 위에 던지며 말하기를- 고 이송학님의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이미 하나님께 돌아 갔은 즉 우리가 그 시체를 땅에 장사하며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티끌은 티끌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말세에 뭇 성도가 일제히 부활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주께서 다시 강림하시어 영광과 위엄으로 세상 사람을 심판하실 때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들은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7. 기도 – 영생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 이송학님의 시체를 여기에 장사 지내오니 흙으로 지음 받은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겠나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별세한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부활할 것을 믿사옵고 하나님께 감사하옵나이다.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키게 하옵시고 죄악에서 건지 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8. 찬송 – 544장9. 축도 – 이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시어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믿음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성령의 위로와 평강의 능력이 고인을 묻고 돌아가는 사랑하는 유족들과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1. 묵상 기도 –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 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아멘.2. 찬송 – 188장3. 기도 – 장로님4. 성경 말씀 – 사12:25. 말씀 – 우리는 지상에 있는 모든 것에게서 무상이라고 쓰여진 글씨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던 것들, 아름답고 호화찬란하게 보던 모든 것들은 사막의 신기루 같아서 우리가 접근할 때 사라져 버리고 우리에게 절망만을 더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임장을 지참하고 있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런 모든 불확실성과 절망의 늪을 통과하여 영광스런 안식의 처소로 들어갈 것을 압니다. 그에게 주어진 두루마리, 즉 성경을 읽음으로 기쁨을 얻으며 한밤에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확신은 예수님이 지금 그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에게 속하였고 나는 그의 것이라. 고 말하는 것은 억측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여받은 믿음 가운데 그렇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언젠가 완연히 누리게 될 기쁨을 미리 맛본 것에 불과합니다. 욥, 다윗, 바울의 말들은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영혼이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폭풍우에 시달림을 받은 선원들은 항구가 얼마나 고마운가를 압니다. 우리는 거룩한 확신을 만끽하기 위해 하나님과 많은 교제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위로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 그 영원하신 팔 아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확신의 이유는 그의 이름은 여호와 이레이기 때문입니다. 이 뜻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우리의 깃발이시다 입니다. 깃발이 신호를 알리기 위해 게양되는 것과 같이 영혼은 모든 세상사의 시련과 번거로운 경험들을 딛고 위로 승화되어 올라갑니다. 여호와 살롬, 즉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입니다. 바울은 그는 우리를 화평케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이것을 기억하시옵소서. 여호와 삼마, 즉 주께서 여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계시든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든지 그는 거기에 계십니다. 그는 또한 나의 구원이 되십니다. 여기에 다른 어떤 구원자가 없습니다. 그것을 구하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지금이 우리에게 문제입니다. 비록 남편과 부친, 형제와 친지, 이웃을 잃은 우리의 슬픔이 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힘이시고 구원이 되심을 의지하여 이번 기회를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고 남은 우리에게는 큰 위로와 은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6. 찬송 – 91장7. 주기도문1. 묵상 기도 –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 하신 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 시며 나의 구원이심입니다. 아멘.2. 찬송 – 205장3. 기도 – 장로님4. 성경 말씀 – 요16:165. 말씀 – 어둡고 우중충한 구름이 우리 위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은 괴롭고 답답합니다. 우리의 생애 태양은 검푸른 제방 저쪽에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단 한줄기의 광선도 볼 수 없습니다. 심령의 노래도 사라졌습니다. 거문고는 괴로움의 개울 버들가지 위에다 걸쳐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동정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어둠을 벗어나 빛 가운데로 인도해 줄 따뜻한 손길을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만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거친 세파를 가로질러 오시면서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슬픔의 사람이 슬픔의 사건이 있기 바로 직전에 슬퍼하는 무리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얼마 안 있어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라는 말씀을 생각케 합니다. 이렇게 묻는 경우 그 무리들은 엘리사의 경우처럼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 하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문 앞에 상주하고 있습니다. 이 기분 나쁜 사자의 검은 날개는 우리의 밝은 전망을 영원히 어둡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슬픔을 동반합니다. 이 두 가지는 불가 분리의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엄청난 시험을 위해 충분히 준비를 갖추셨지만 그의 제자들은 슬퍼하였습니다. 죽음과 무덤은 언제나 엄숙한 소리를 동반하는 말들입니다. 속삭임, 조용히 걷는 모습, 그리고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이 두려운 사자가 올 때 동반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어떤 아름다움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잠시 동안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밀의 알맹이가 삼일 동안 숨기어졌던 것입니다. 그후 그들은 그것이 더욱 풍성한 생명으로 발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이라는 것은 우리의 슬픔, 원한 통분은 분명히 우리의 삶 가운데 그늘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한계가 있습니다.1.이것들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위 가운데는 결단코 불필요한 것이 없으십니다. 이러한 증거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시키기 위해 그의 아들을 은사로 주셨습니다. 만일 세상이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그 방법으로 행하셨을 것입니다.2.그늘은 단지 잠시 동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날에 임할 예루살렘 멸망과 환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 수를 감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을 감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축복이 인간에게 배가되기 위해서는 슬픔을 통과하여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는 잃음으로써 얻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부요와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세상의 것들을 빼앗아 가실 때가 있으시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옮겨가심으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성령의 위로와 긍휼과 생명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통치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남편과 부친, 형제와 친지, 이웃을 잃은 우리의 슬픔이 있을지라도 여호아 하나님 우리의 위로 자이시며 구원이 되심을 의지하여 이번 기회를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고 남은 우리에게는 큰 위로와 은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6. 기도 –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시며 성도들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주안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모든 수고와 시련을 끝내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높고 크신 경륜을 다 깨닫지 못하오나 저희들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과 영생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이 땅에서 한란과 역경을 이기며 하늘의 소망을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주의 종이 이 세상에 살 때 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었고 또 믿음으로도 주님 앞에 순복하여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유업을 받게 하여 주옵시고 이 장례 절차를 모두 주님께서 맡아 주관하시고 이 가정을 위로하시며 또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7. 찬송 – 221장8. 주기도문1. 묵상 기도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2. 찬송 – 411장3. 기도 – 장로님4. 성경 말씀 – 요14:185. 말씀 – 여러분들은 이스라엘에서 한 위대한 인간이 죽었던 사실을 알지 못하십니까? 그때 많은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보리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얼마나 온유하신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모든 시대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위로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그는 오늘 상을 당하여 슬퍼하는 이 가정에 어떤 방법으로 위로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1.그는 부드러운 동정심과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연약한 감정을 어루만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친구로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2.그는 성령, 곧 보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3.그는 주안에서 죽는 자들에 관하여 확신을 주셨습니다.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죽는 것도 유익이라, 그 눈이 보지 못하겠고, 우리는 만족하리라.4.그는 우리의 받는 고난을 훈련으로 여기십니다. 우리의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5.그는 다시 만남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은 오늘 극심한 고난을 받고 있지만 그분은 여러분을 나그네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쓸쓸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위로의 모든 근원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자녀 된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들의 특별한 친구가 되십니다. 아버지로부터 풍부한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들은 이 고난을 무의미하게 생각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 고난은 우리들의 유익을 위하여 역사 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생애와 죽음은 오늘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감동과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가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제에게 믿음을 주시고 역사 하신 것같이 우리도 도와주시고 위로와 평강을 덧입혀 주실 줄 믿습니다.6. 기도 –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셔서 인간의 생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저희들의 심령의 눈을 밝히 시사 영원히 슬픔과 고통이 없고 기쁨과 감사와 영광이 가득한 주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심령이 연약하여 넘어질 때 붙들어 일으켜 주시고, 슬프고 외로울 때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주셔서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친히 맡아 인도하여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7. 찬송 – 222장8. 주기도문장례설교 유형1) 임종예배찬송 : 290장, 289장, 474장본문 : 시90, 히9:27, 사57:1~2, 창3:19, 요14:1~6요약: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육체와 영혼을 지으셨다.創造主 被造物과의 關係/生命과 死亡/목숨과 生命①형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祝福이다.(계14:13) 주안에서 죽는자는 복되다.육신/땅을 기업, 영혼/하늘에 신령한 복으로 기업을 누린다.②생의 완성을 위한 한과정(관문)(하나님의 영원성과 인간의 유한성)/성도의 죽음은 더 완전하 고 영원한 존재로 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삶의 한과정이고, 완성이다.하나님의 뜻, 섭리로 계획하신 생의 완성이다.③하늘나라로 영혼에 거처를 옮겨가는 것이다.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 사람의 형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모형으로 창조된 것임.인간의 실존적 존재가 육체가 아니라 영혼임을 다시금 각성케 한다. 육체란 질그릇 같아서 잘못 다루면 깨어지는 것과 같이 연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육체란 영원한 것이 아니요, 잠시잠간의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수한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신뢰하면 육체와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육체가 있기에 은혜와 진리로 거듭나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육체가 있을 동안 영혼을 준비해야 한다. 내영혼이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자. 이를위해서 예수께서 피흘려 화목케 하신 것이다.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셨으니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불신자의 가족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강조한다(히9:27)예) 불신자는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심판 받으나믿는자는 두 번 태어나고 한 번 심판 받는다2) 입관예배찬송 : 203, 223, 291, 295, 544본문 : 고후5:1-10, 계14:12-13, 시84:10~11, 계19:8요약: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황량한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했다. 그들의 장막이 생존권을 보호하고 그들이 삶에 유익을 제공함같이, 육체를 장막으로 비유하고 있다. 인간이 흙에서 태어났기에 흙으로 돌아가 육신이 묻히는 것은 인생의 한 과정이다. 육신은 무거운 짐, 괴로운 짐을 벗어 버리고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영혼은 주인되신 하나님을 찾아 영원한 처소인 하늘나라에 가 평안과 안식에 이르른 것이다. 땅에 있는 장막집은 육체를 가리킨 말로 괴로운 집이요, 탄식의 집이다. 영원한 집은 부활의 몸을 가리킨 말로 소망의 집이요, 기쁨의 집이다. 영원한 집은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요, 하늘의 처소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집이다.3) 발인예배찬송 : 221, 224, 230, 231, 233, 290, 293, 534, 541, 542,본문 : 히11:13-16, 벧전1:13-25, 벧전2:11~12, 계21:1~4, 요17:9~13, 요19~30.요약 : 인생은 나그네의 길이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출생한 자라면 한 번은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나그네이다. 그래서 이세상에서 생활도 일정한 삶의 정착지가 없어 이고 저곳으로 거처를 옮겨 산다, 그리고 목숨이 다하면 자기가 출생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는 육신이 흙에서 낳기 때문이다.(신토불이) 그런데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사랑하는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시신을 5일 이상 집안에 모실 수 없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기약없이 그동안 정들었던 가정,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야만 하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유족을 슬프게 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만남이란 완전하지 못하다.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영원한 관계를 갖게 되며 주님과의 만남을 가진 자는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진 모든 성도들과 다시는 헤어짐이 없는 영원한 만남을 갖게 된다.고인이 유품을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록 정든 집을 떠나지만 그 영혼은 다시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하늘나라의 본향을 향해 출발하는 복된 발걸음이다. 그러나 그러나 돌아갈 처소가 예비되어 있지 않아 갈곳 없는 영혼은 불행한 자이다.사랑하는 자들아 행인과 나그네와 같은 너희를 위하여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4) 하관예배찬송 : 188, 228, 226본문 : 고전15:35-49, 15:50-58, 요 11:25-27, 불신자/눅16:29-31요약 :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11:25-26)고 말씀하심으로 사람이 육체의 죽음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 있음을 말씀하셨다.그런데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실존과 그들의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부활이 있기에 영원한 삶이 있는 것이다.(자연의 섭리:계절,누에의 일생)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그리스도안에 잠자는 자들 모두 주님 다시 오실 � 홀연히 변화되어 신령한 몸을 힘입을 것이다. 주님의 부활의 사건은 신학적으로 역사성, 사실성, 미래성을 의미한다.기독교의 구속사의 최고의 절정은 부활이다. 성도의 부활의 소망과 기대야말로 어떠한 환란과 역경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소유케 한다.썩을 것을 심고(육체) 썩지 아니할 것을 거둔다(부활)5) 위로예배찬송 : 399, 460, 455, 539, 493본문 : 딤후4:7~8, 고후1:3~7, 빌3:13-17, 요삼2-4, 고전10:14-22, 시23편, 시73:28, 시103:15-18,사41:10, 호6:1~3요약 :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이땅에서의 복을 주셨는데 자손의 번성함이다. 이는 자손을 통하여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함이다. 부모가 있으므로 자손이 있는 것처럼 영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계시다.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함으로 가정에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으나 이후로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예수 안에서 신령한 복으로 살자. 신앙생활은 복과 생명을 명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요, 하나님 아버지 품과 같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우애에 힘써 빛의 자녀다운 생활을 하도록 한다.돌아가신 고인에게 효를 다하지 못한 회한이 있더라도 마음을 가다듬어 생업에 힘쓰도록 권한다. 제사를 하지 않도록… 고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 공경은 살아계실때에 기회이다.고인의 믿음과 훌륭한 정신을 자손들의 마음속에 담아 생활한다면 고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 14장 1절-6절, 장례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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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과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해주는 장례예배설교, 발인예배설교입니다.
성경 : 요한복음 14:1-6
설교 :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고(故) OOO 성도님의 가족을 대표하여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이지만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합니다.
시편 46:1-3,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그리고 성경은 또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로마서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시간 다함께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오늘 故 OOO 성도님의 소중한 삶을 기억하고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OOO 성도님이 이 땅에서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 보고 그분의 믿음의 여정을 기억해 봅니다. OOO 성도님은 지금껏 살아오시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삶을 본받아 우리도 믿음의 삶, 천국을 바라보는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위로와 평강이 있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한 자리에 모여서 故 OOO 성도님의 소중한 삶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육신의 이별로 인하여 슬픔의 감정들이 있습니다. 비록 OOO 성도님은 저 높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평안을 누리고 계시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부모님, 배우자, 자녀)을 잃었기에 여전히 슬픕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모든 믿는 자들은 이 땅을 떠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앞에서 서게 됨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5:6-8,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앞에 있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슬퍼하고 애도하는 날이지만, 그것보다 더 큰 기뻐하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 후회하고 슬퍼하는 날이 아닌, 故 OOO 성도님께서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고인과 함께 했던 지난 추억들을 생각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한 평안을 누리고 계실 고인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괴로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죽음을 두려워 함으로 근심할 필요가 없으며, 죽음 때문에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이별하고 나서는 우리 주님께서 예비해 주신 거처에서 영생을 누리며 더 이상 눈물도 아픔과 고통도 없는 곳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OOO 성도님의 발인예배에 함께 한 우리 모두는, 우리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처에 고인이 가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처에 장차 갈 것을 기억하며, 끝까지 고인과 같이 믿음을 지켜 살아가길 바랍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은 곧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는 故 OOO 성도님의 발인예배로 모였습니다. 이 시간 함께 한 모든 유족들과 일가 친척들, 친구들과 성도들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를 주옵소서. 고인은 우리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처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고 계심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위로 받게 하시고, 우리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가게 하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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