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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8(수) “잠언 13:1-25” / 작성: 정한조
본문 잠언 13:1-25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악인과 의인-그들의 말 그리고 재물과 성공(1-13절)
오늘 본문은 10:1-22:16까지에 있는 솔로몬왕이 하나님께 받은 지혜의 은사로 말한 단편경구(어록) 375개 중에, 92-116번째까지 25개입니다.
오늘 본문도 의인과 악인을 대조해서 보여주고,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재물에 관해서도 지혜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지혜로운 사람과 거만한 사람의 차이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들어야 할 말을 듣는 사람이고, 거만한 사람은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수도 없이 많이 나오는 단어가 ‘들어라’입니다. 그것은 ‘청력’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순종’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수도 없이 강조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내 말을 듣고, 우상의 말을 듣지 말라”입니다. 오래전에 유행했던 책 중에 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듣는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아들이자, 제사장임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들어야할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범죄는 이스라엘을 언약궤가 없는 사회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상징이었습니다. 수십 년 후에 다윗이 언약궤를 가져올 때까지 예루살렘에는 언약궤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들어야 할 하나님의 훈계를 듣지 못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계속 이어집니다.
(2-3)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복록’은 ‘좋은 것’입니다. 말을 잘(지혜롭게)해서 좋은 것을 누린다고 합니다. 반면에 그 속사람이 불성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헤치려고만 한다고 합니다.
또 입을 지키는 사람(말을 조심하는 사람)은 생명을 지킨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할 줄을 알고,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대해서 파수꾼이 성문을 닫고 성을 지키듯 철저하게 입을 닫는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능력을 지녀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이런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홍수가 나면, 온 사방이 물천지임에도 마실 물이 없어서 아우성인 것처럼, 오늘날은 말이 너무 많은 시대입니다. 방송에서도 과거에는 진행자가 1명, 아니면 2명이었는데, 지금은 진행자도 여러 명이고, 게스트도 여러명입니다. 서로 말하기 경쟁하듯이 말을 하여, 참 소란스럽습니다. 진행자 1명에, 초대 손님 1명이 하는 집중적인 대담 프로그램은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입술을 크게 벌리는 사람’은 자신을 망하게 한다고 합니다. ‘입을 크게 벌리는 사람’은 느낌 그대로, 과장된 말과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면, 손가락 3개는 자신을 향하듯이, 자기가 내 뱉은 말이 비수가 되어서 자기를 향해서 날어옵니다. 그래서 자기가 했던 말 때문에 자기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에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일까요?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그 수준에 이른 것과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마치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간절히 품는 것과 좋은 성적은 동의아가 아닙니다. 동의어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촌음(寸陰)을 아껴가며 공부함’이라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가능합니다.
공부를 덜 잘하는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는 아이보다 공부에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덜 잘하는 아이는 시험을 앞두고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컴퓨터 게임 30분 하고 새마음으로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TV프로를 보고서, 잠을 한 시간 줄여서 공부하면 되겠다’ 등등 공부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공부는 안합니다. 그러나 공부를 더 잘하는 아이는 놀고 싶은 마음,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시험이 당장 코 앞이라서 책상을 떠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의 몸이 움직이는 데까지가 우리 수준입니다.
(8)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앞 부분은 “부유한 사람은 재물로 자기 목숨을 속하기도 하지만”이나 “재물로는 자기 목숨을 살릴수도 있지만” 등으로 번역이 됩니다. 보석금을 내고 구금 중에 있다가 벗어날 수도 있고, 납치를 당했을 때 풀어주는 조건으로 돈을 건낼 수도 있습니다. 또 중병에 걸렸을 때, 재물이 많으면, 최고의 병원과 최고의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재물이 생명을 구하는 요긴한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8절의 하반절이 “가난하면 협박을 받을 일이 없다”고 합니다. 앞부분과 뒷부분이 따로 노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은 “재산이 많으면 협박 받을 일이 많지만, 재산이 없으면 위협을 받을 일이 없다”고 해석하곤 합니다. 즉 재산이 많다고 교만하지 말고, 재산이 없다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우리나라에도 한 때, 로또복권 열풍이 불었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통해서 ‘인생역전’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깨고 나면 ‘인생여전’만 남아 있습니다. 망령되이(쉽게, 부정하게) 얻는 재물은 줄어간다고 합니다. 그것은 돈을 번 것이 아니라 돈이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신문에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합니다. 하지만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70%가 3년 이내에 파산한다는 것이 통계입니다.
재산이 늘어가는 것은 ‘생긴 재물’에 의해서가 이루어지지 않고, 손으로 일을 해서 번 것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른 것입니다.
(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장군으로 베트남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모진 고문과 고초를 겪었던 사람입니다. 이 분이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해 보니, 가장 많이 죽어 나가는 사람이 ‘낙관주의자’였다고 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겠지?”라고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활절에는 나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또 이루어지지 않으면, “추수감사절에는 나갈 수 있겠지”라고 계속 희망만 품다가 큰 절기가 지나면,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이 죽어나가곤 했습니다. 그런 낙관적인 희망 속에서만 살다가 죽어가는 현상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부릅니다.
막연한 희망 속에서 사는 것보다, 희망을 갖지만 현실 속에서 사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2개의 눈을 가지고, 한 눈으로는 미래의 희망을 보고, 또 한눈으로는 냉혹한 현실을 보는 사람이 건강하고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 그리고 의인과 악인의 보응(14-25절)
지혜로운 사람의 말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14-15)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지혜 있는 자’는 ‘어떤 일에 정통하면서도 능통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성막건축에 정통한 사람’, ‘배를 운행하는데 정통한 사람’, ‘직물을 짜는데 뛰어난 사람’, 심지어 ‘곡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자’는 오늘날로 하면, ‘전문가’입니다. 아니면 ‘생활의 달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교훈이 ‘생명의 샘’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남다른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 곁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깊은 우물이나 깊은 구덩이에서 건져 올린 물과 같아서 내가 가야 할 길에 이정표를 보여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소생하게 합니다. 반면에 사악한 사람의 길이 험한 것은 자기 욕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거니와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슬기로운 사람은 지식(이성)을 따라서 행하지만, 미련한 사람에게는 자기 미련함(고집,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지식(이성)을 따라서 행하는 사람의 특징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틀렸을 때에 사과를 할 줄 압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을 앞장서서 가는 것은 그의 감정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순간에도 끝까지 고집을 부립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면, 해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인주와 같이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붉어지고, 먹과 같이 검을 것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검어집니다.
(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많은 가정에서 이 말씀을 근거로 부모가, 특히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매질을 많이 했습니다. 자녀에게 매를 아끼는 것은 자녀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매질을 했더니, 자녀가 그 부모를 미워합니다.
자녀에게 매를 아끼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해도 무작정 때려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에게 매질을 하는 것은 고통 가운데서 하는 것이지, 무작정 때리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분풀이요, 부모가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는 말씀과 함께, 에베소서 6장에 있는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 6:4)”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유가 없는 매질, 과도한 매질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징계할 때도 주의 교훈과 훈계로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깨우쳐 주실 때 무작정 매질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았다면, 자녀에게도 그런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바와 같이 잠언에는 반복해서 악한 사람과 미련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성취하려고 하며, 세속적 가치관에 따라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언제나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의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도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나 세상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시험이 다가와도 시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앞에 악한 사람의 길과 미련한 사람의 길도 있고, 의로운 사람의 길과 지혜로운 사람의 길도 있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여 걷든 그 결과도 우리 앞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의로운 길과 지혜로운 길을 걸음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게 해 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앞에 의로운 사람의 길과 악한 사람의 길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틀림없이 의롭게 된 존재임에도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더 많은 것, 더 큰 것, 더 좋아 보이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서 살 때가 많습니다. 저희가 다시 한번 말씀으로 돌아가 의로운 사람의 빛은 환하게 빛나지만, 악한 사람의 등불은 꺼지고 만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지혜로운 삶을 구하며,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 나를 좀 더 돋보이게 하는 것, 내 생각에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을 따라서 살 때도 적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을 따르는 길이 내게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준다고 해도, 그것을 얻기 위해서 미련함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내게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라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시면 순종하는 믿음을 주셔서 온갖 시험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의로운 사람의 길, 지혜로운 사람의 길을 걷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훈계와 권면, 꾸지람 등 아픈 말이지만 그 말을 들으므로, 삶이 바뀌거나 생각이 바뀌어 유익한 결론을 맺은 적이 있습니까? 반대의 경우, 들어야 할 훈계와 권면, 꾸지람을 듣지 않았다가 낭패를 당하신 적이 있습니까?
2.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의 말씀을 대해며,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망령되이 재물을 얻으려고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손으로 만든 것들 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3. 지혜로운 사람과 동행하면 지혜로워지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고 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경험이 있습니까?
4.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의로운 삶과 지혜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잠언 13장 강해
의인과 악인이 받게 될 보응[잠 13장]
[내용개요]
본장은 계속해서 의인과 악인의 내면적인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물질적인 복과 관련하여 설명함으로 의인의 길에 대한 선택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의인은 부모의 훈계를 듣고 입을 지킴으로 생명을 보존하며 복록을 누리지만 악인은 함부로 말하고 거짓말을 함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고 패망에 이르게 된다(1-6절). 의인은 재물을 올바른 목적을 위해 사용하여 점점 부하게 되지만 악인은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7-11절). 지혜 있고 의로운 자의 교훈은 보약과 같아서 그 말을 따르는 자는 상을 얻게 되나 미련하고 악한 말을 하는 자를 따르면 오히려 화를 받게 된다(12-20절). 하나님은 공의하셔서 악인에게 패망을, 의인에게는 자자손손 산업의 부흥을 받게 하신다(21-25절).
[강 해]
본장 역시 기본적으로 의인과 악인을 대조시키는 구조를 가지고서,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파생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훈계, 언어 생활, 게으름, 재물, 소원을 이룸, 지혜 등입니다. 어쩌면 이 주제들은 서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근본에는 동일한 선과 악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1. 의인과 악인
본장의 5-6,9,17,21절은 의인과 악인의 특성을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악인은 그의 행위가 흉악하고 무례하여 그 자신은 물론이요, 타인에게까지 부끄러움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그런 악에는 필연적으로 재앙이 따라다녀서 결국은 자신의 악으로 인해 재앙에 빠져 멸망당하게 됩니다. 악인의 등불이 꺼진다는 것은 그가 재앙을 받을 것임을 징조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과 악, 재앙, 멸망은 필연적인 함수관계를 가지며 스스로를 파멸시키게 됩니다. 반면에 의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는 거짓말을 미워하며 행실이 정직한 자의 보호자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 양약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의인에게는 선한 보응이 따르며, 악인의 ‘등불’과 대조되는 그의 ‘빛’은 환하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빛나고’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유쾌한, 즐거운’의 의미도 있으므로, 의인의 빛은 타인에게 유쾌함과 즐거움이 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a. 등불이 꺼지는 것과 재앙(렘25:10)
b. 의인의 빛(사58:10)
2. 지혜와 미련함
본장의 14-16,20절은 지혜와 미련함을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혜는 의인의 특성으로, 미련함은 악인의 특성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미련한 자는 어느 곳에서든지 항상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내면서 다닙니다. 그에게는 지혜가 없으므로 신뢰할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을 속이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으므로 단지 미련하기 때문에 답답한 자가 아니라 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와의 동행은 필연적으로 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지체로운 자는 그 자신이 지혜롭게 행동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지혜로 교훈합니다. 그의 지혜로운 교훈은 생명의 샘과 같아서 그 교훈을 받는 자로 하여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지혜자는 은혜를 베풀므로 지혜자와 깊은교제를 가지다 보면 그 역시 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a. 미련한 자와 행악(잠10:23)
b. 그물에서 벗어남(시25:15)
3. 훈계와 말
본장의 1-3,10,13,18,24절은 훈계와 언어 생활에 대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훈계를 통하여 가정에서 전수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또한 지혜자와 미련자는 그들의 언어 생활에서 명백한 차이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식을 사랑하므로 근실히 징계하며 훈계합니다. 또 지혜로운 자는 자기를 향한 훈계와 권면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는 훈계 말씀에 주의하여 그대로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결코 타인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훈계를 저버리는 자는 결국 궁핍과 욕이 따르게 됨을 알지 못합니다. 훈계를 받을 줄 아는 지혜자는 무슨 말을 하는 데 있어서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 자일수 록 자신의 소리는 더욱 크게 내는 법입니다. 혀에는 죽고 살리는 권세가 있으므로 그가 어떤 말을 하느냐가 그의 복과 멸망을 결정합니다.
a. 자식 사랑과 징계(히12:6)
b. 혀의 권세(잠18:20)
4. 게으름과 부지런함
본장의 4,12,19절은 게으름과 부지런함을 대조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 역시 의인과 악인의 구도에 속하는데 ‘의인-지혜자-부지런함’과 ‘악인-미련자-게으름’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개념인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무엇을 마음에 원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한 행동은 취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 스스로가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므로 소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여기서 그의 게으름과 미련함이 함께 드러나는데, 그는 소원을 성취감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자 하지 않고 여전히 그의 악(게으름)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자는 소원하는 바를 자신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통하여 얻어내고 맙니다. 그래서 생명 나무와 같고 그 마음을 달게 하는 소원의 성취를 생활 속에서 경험합니다.
a. 게으른 자와 미련함(잠26:16)
b. 소원을 두고 행함(빌2:13)
5. 재물
본장의 7-8,11,22-23,25절은 재물에 대한 교훈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단순히 모든 것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소유 정도와 그 사람의 됨됨이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부자나 가난한 자를 그들의 부요함이나 가난함을 이유로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재물의 많고 적음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로 성실히 일하는 사람은 재물을 모을 수 있고, 불법적으로 재물을 모으려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의 모든 재물을 잃어버리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칙에 맞게 사는 사람들을 축복하시고 그것에 어긋나게 사는 사람들을 징벌하십니다. 때로 그것은 이 현실 세계에서도 그대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러한 심판이 현세에만 국한되어지지 않고 내세에까지 연결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적인 흐름과 환경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비록 현세에서 다 보상받지 못한다 하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길, 정당한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재물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지만, 결국 그것은 심판의 날에 무익한 것임이 드러날 것이기에 그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a. 성실과 가난(잠28:6)
b. 재물은 심판 날에 무익함(잠11:4)
결론
성경은 의인과 악인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각자의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고 있기에 악인처럼 살 수 가없는 것입니다. 의인은 항상 ‘신전의식’을 가지고서 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이런 정신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어해설]
2절. 궤사한 자. 다른 관계들에서의 불성실함을 나타내는데 특히 하나님에 대한 반역에 대해 자주 언급된다.
5절. 흉악하여. ‘창피를 주다’라는 뜻으로 자신이나 신뢰의 대상에게 불명예를 주는 것을 말한다.
11절. 망령되이 얻은. 무가치하고 거짓된 허망한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노력과 수고 없이 부당하게 얻어진 이익을 가리킨다.
12절. 상하게. ‘병들다, 슬픔에 젖다’라는 뜻으로 정신적인 고통이나 육체적인 상해로 인해 병 듦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겪게 되는 정신적인 고통을 나타내고 있다.
18절. 저버리는 자. ‘방지하다’라는 뜻으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스스로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자를 가리킨다.
24절. 초달.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 매를 들어 훈계하는 것을 말한다.
[신학주제]
하나님의 징계. 저자는 본장에서 지혜로운 자와 거만한 자의 대조되는 태도로 꾸지람에 대한 반응을 말하고 있다. 즉 부모의 꾸지람에 대해 달갑게 받아들이는 자가 지혜롭다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식을 초달하지 않는 자는 자식을 미워하는 자라고 극단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저자는 적절한 징계야말로 사람을 바른길로 이끄는 중요한 수단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징계는 비단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위한 도구로도 사용된다. 하나님의 징계는 두 가지의 형태로 나뉜다. 첫째는 불신자와 악인에 대한 징계이다. 이러한 징계는 원인이 전적으로 사람에게 있다. 즉 사람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고 필연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의에 대한 징계는 어떤 방법으로도, 어떤 존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참조, 시1:5). 둘째는 자기 백성에 대한 징계이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결코 멸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멸망의 원인인 죄로부터 돌이켜 축복의 길로 향하게 만드는 견책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끊임없는 고난의 역사이다. 그리고 고난의 원인은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수많은 고난에서도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결국 구원과 회복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약속하셨다. 바로 고난의 징계는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참조, 렘30:11). 따라서 고난을 대하는 성도의 태도는 불평이나 낙심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이며 성화를 위한 새로운 각오이어야 한다.
[영적교훈]
사람은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단점을 지적하는 충고를 하는 사람은 미워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태도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좋다는 말과 같이 자신의 단점을 지적하고 충고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람을 사귈 때도 아첨하는 말로 귀를 즐겁게 하는 자를 피해야 한다. 또한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교훈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마음에 잘 새겨야 한다. 그 속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의 가르침에 귀를 열고 말씀대로 살기에 힘써야 한다. 비록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삶의 바른길을 제시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생명과 축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잠언 13장 & 성경주석
<잠언 13장 흐름정리>
전반적으로는 12장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의인과 악인에 관한 대조적인 묘사가 그러하고 말의 중요성에 관한 언급이 그러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앞의 내용을 단순하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강조점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본 장에서 가장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바로 듣는 자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의 권면 그리고 부모의 훈계 등이 모두 경청해야 할 대상이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의 권면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성숙한 인격체로 자라간다. 반면에 우둔한 자는 그러한 권면을 듣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자기 멋대로 방탕하게 살다가 마침내 파멸 당하고 만다.
<잠언 13장 개역한글>
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2.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5.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데 이르느니라
6.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하느니라
7. 스스로 부한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체 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8. 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속할 수는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12.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17.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느니라
19.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23.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하므로 양식이 많아지거늘 혹 불의로 인하여 가산을 탕패하는 자가 있느니라
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25.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잠언 13장 성경주석>
13:1 지혜로운 아들.
솔로몬은 이 절의 교훈들이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분명하고 비극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몇 형제들은 다윗이 그 자신들에게 훈계하는 것을 경멸하여 그들이 저지른 행실의 결과들이 다가올 때까지 악한 길로 행하였다(삼하 13~19장; 왕상 1, 왕상 2장). 그러나 솔로몬은 듣고 배워서 인류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자가 되었다.
13:3 그 생명을 보전하나.
솔로몬은 입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참조 12:13, 14, 22, 23 등). 이런 권면이 거듭 강조되고 역사를 통하여 그 결과들이 분명히 입증되었으나 그들의 입을 끊임없이 지키는 자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만일 사람들이 이 지혜로운 권면에 유의한다면 많은 불행을 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그 진리를 배워야 하는 것 같고, 불행히도 많은 사람은 그것을 결코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
13:4 마음.
여기서는 개인 자신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마음”(soul)이 살찌거나 야위어지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영적 양식을 거의 완전히 도외시할 만큼 물질적 또는 지적인 부요를 얻으려고 애쓰면 심령이 메마르게 된다(참조 시 106:13~15; 마 6:2; 눅 10:38~42).
13:5 거짓말을 미워하나.
거짓말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우정을 파괴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어떤 어려움에서 벗어나거나 더 심각한 고난을 피하는 데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사용할 것이다. 사람은 온갖 종류의 죄에 강한 혐오감을 나타냄으로써만 악에 대하여 요새를 마련하게 된다. 그런 혐오감은 마음속에 성령께서 임재할 때 계발된다. 거짓말하는 일에 빠진 사람은 죄와 하나가 되고, 그리하여 자신이 역겨워지고 또한 수치스러운 존재가 된다(참조 시 101:7, 8; 요 8:44; 계 21:27).
13:6 악.
참조 1:31; 5:22; 11:3 주석.
13:7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이 “스스로 부자인 체하다”라는 의미로, 그리고 둘째 구절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가난한 자인 체하다”라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해석은 두 사람을 다 위선자로 만드는데, 하나는 가난하면서 부자인 체하고, 다른 하나는 부자이면서 가난한 체한다. 그러나 그런 독법에는 진정한 대조법도 없고 어떤 교훈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이 번역(“스스로 부한 체하여도”[maketh himself rich])도 마찬가지로 허용되며, 또 이 번역이 천하를 얻고도 그들의 영혼을 잃은 자들, 그리고 하늘에 영원한 보화를 쌓기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는 더 지혜로운 자들에 관한 우리 구주의 교훈과 유사한 한 교훈을 연상시킨다(참조 막 8:36; 눅 12:15~21, 33).
13:8 속할 수는 있으나.
첫째 구절은 부자가 그의 부를 이용하여 어려움, 특별히 압제적인 통치자들이 이득을 바라고 한 거짓 송사들이 야기한 그런 종류의 어려움에서 그 자신을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이런 어려움에 빠져들지 않고, 이런 거짓 고발을 당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도 가난해서 그를 어렵게 해도 돈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해석은, 부가 삶을 여러 종류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매우 가치가 있지만, 가난한 자는 그런 부를 자신을 위해 버는 데 도움이 될 충고와 권면에 유의하기를 거절한다는 것이다.
13:9 환하게 빛나고.
여기에서는 “빛”과 “등불”을 의도적으로 대조하고 있는 것 같다. 의인은 모든 빛과 생명의 근원에서부터 오는 거룩한 빛으로 빛을 비추고 있는 반면에 악인은 그가 참빛을 거절하고 있음에도 좋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을 보기를 바라는 희미하고 연기 나는 등을 고안해 내고자 애를 쓴다. 빛은 영원하지만 등은 모두 꺼질 것이다(참조 욥 18:5; 요 1:8).
13:10 교만.
히브리어 자돈(zadon), “오만”, “건방짐.” 여기서는 너무 교만하기 때문에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고, 만일 누군가가 충고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면 모욕당한 것으로 느끼는 자와, 경험 있는 사람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로운 사람을 대조한다. 교만한 자는 그를 가르치고자 하는 자들과 싸우지만 그 자신의 분별없는 길을 따르는 결과로 생기는 여러 가지 다른 논쟁에는 흥미를 갖는다(참조 11:2; 12:15).
13:11 망령되이.
진실한 노력 없이 얻은 재물은 곧 낭비된다. 사람이 수고하여 얻은 것은 일반적으로 주의 깊이 사용되고, 차츰차츰 그는 재산을 쌓아가게 될 것이다(참고 21:21; 21:5).
13:12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당연히 수반되는 생생한 대조가 여기에 나타난다. 상한 마음은 희망을 잃어버린다. 정력과 야망의 샘들은 점차 약화되고 사람을 진실로 절망적인 상태가 되게 한다. 그러나 좋은 소망이 실현되면 마치 생명나무의 열매가 그렇게 만드는 것처럼 생명이 새로워지고 힘과 행복이 증가된다(참조 11:30).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의 오심이 오래 지체되는 것이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오심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신속하게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과 너무도 밀접하게 걸어가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소망의 성취를 경험하고 그의 확신을 새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참조 창 5:22).
13:13 말씀.
이 절의 대구법은 여기서 “말씀”이 “계명”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참조 신 30:14~16).
13:14 교훈.
히브리어 토라(torah), “율법”(참조 3:1 주석). 지혜로운 자의 교훈은 그것에 유의하는 자들이 평탄치 않은 인생길을 헤쳐 나갈 때 지도하고, 삶의 길 도처에 기다리고 있는 죄와 사망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지켜 준다.
13:15 험하니라.
히브리어 에탄(’etan), 문자적으로 “튼튼한”, “오래 지속되는.” 아마도 여기서는 “견고한”, “험한”, “거친”을 의미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거의 마찰 없이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죄인은 자신의 완고함이 그가 만나는 자들로부터 반사되어 되돌아오기 때문에 길에 어려움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마 7:2). 「70인역」은 둘째 구절을 “그러나 경멸하는 자들의 길은 멸망으로 향한다”라고 번역했다.
13:16 지식으로 행하여도.
“분별 있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어리석은 자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과시한다. 이는 그가 그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 일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참조 15:2).
13:17 재앙.
“재앙”의 뜻에 관해서는 12:21 주석을 참조하라. 어떤 사람들은 이 동사를 타동사나 사역동사로 여기고, 즉 “사람을 재앙에 빠뜨린다”(「개정표준역」)로 번역한다. 이 번역은 마소라 모음에 변화를 요한다.
13:18 존영.
솔로몬은 유일한 성공의 길은 지혜로운 자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는 자신의 반복된 주장으로 돌아간다(참조 1~5장).
13:19 싫어하느니라.
영혼의 진정한 소망은 죄와 그것의 무서운 결과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가 미련하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잃을지라도 자신의 악한 길에서 떠나기를 싫어한다.
13:20 해를 받느니라.
문자적으로 “악의 원인이 될 것이다[악이 될 것이다].” 사람은 그가 사귀는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 “미련한 자들의 친구”는 점차 그의 친구들과 같아진다. 친구들을 선택하는 것은 젊은이의 성장과 중요한 관계에 있다. 옛 격언은 “절뚝발이와 함께 사는 자는 절뚝거리는 법을 배운다”라고 말한다. 그의 악한 친구들처럼 되는 자는 또한 그들의 운명에 즐겨 동참해야 한다.
13:21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즉 “그(하나님)가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악인은 그의 이기적인 선택의 결과를 거두도록 허용되는 반면에 의인은 똑같이 분명한 상급을 받는다(참조 시 11:5~7; 전 2:26; 계 2:23; 계 22:12).
13:22 산업.
선인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좋은 산업을 쌓아서 자녀들에게 넘겨준다. 그러나 죄인은 그가 마땅히 축적해야 할 것을 자기 자신에게 써 버린다. 악인은 의인의 재물과 재산을 사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만간 선인의 가족에게 되돌아간다(참조 출 12:35, 36; 욥 27:16, 17; 잠 28:8).
13:23 경작.
혹은 렘 4:3; 호 10:12에서처럼 “묵은 땅을 갈다.”
탕패하는(is destroyed). 가난한 자들은 판단력의 부족으로 힘들게 번 돈을 찔끔찔끔 허비해 버린다.
13:24 초달.
참조 19:18; 22:15; 23:13, 14; 29:15, 17. 초달은 여러 가지 체벌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적절한 벌은 아이가 아주 어릴 때 특히 효과적이다. 나중에는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반응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다른 형태의 벌을 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13:24 미워함이라.
이 말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더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상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눅 14:26의 “미워하다”는 말과 비교하라. 게으르기 때문에 혹은 그 일을 하기 싫기 때문에 자녀들을 징계하기를 등한히 하는 자는 그의 자녀들보다 자신을 앞세움으로 인해 그 자녀들을 미워한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13:24 근실히.
이것은 일찍 일어난다는 관점에서 부지런함을 말하는 히브리어 관용구를 번역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관용구를 아이는 그 생애의 초기에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왔다. 분명히 그래야 하지만, 그 사상은 히브리어에서 파생될 수는 거의 없다.
13:25 포식하여도.
선인의 욕구는 적절하며, 그들은 이 단순한 욕구들이 채워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다(참조 사 33:16). 죄인의 욕망들은 때때로 과도하다. 그는 아무리 많이 얻을지라도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에게는 그의 필요가 기적적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약속이 없다. 그의 주인은 잔인한 사람이다. 봄철과 추수철, 그리고 햇볕과 비를 통해 땅이 풍부한 산물들을 그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이다(참조 창 8:22; 잠 10:3; 마 5:45).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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