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요한 3서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가 사용하는 융단을 짜는 데에는 무수히 많은 실이 사용됩니다. 그리고 융단에 그려지는 무늬는 그것이 다 짜여질 무렵에야 비로소 분명해집니다. 그렇지만 그 무늬에 대한 구상은 융단을 짜기 이전에 이미 융단을 짜는 사람의 머리 속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불투명할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하여 선한 계획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길 때만이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은총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고 주님은 약속하고 계십니다.
1. 내 영혼이 잘되는 복을 얻자.
사람들은 육체의 건강과 사업의 형통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육체의 건강과 사업이 잘된다 하여도 영혼에 만족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혼이 있기에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이 떠나가면 사람은 제 구실을 못하고 흙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영혼이 잘되는 길입니까?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영혼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이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죽은 것이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없는 나무는 아무리 많은 태양과 비, 그리고 양분이 있다 해도 냄새만 피우고 썩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으면 작은 씨라도 자라나서 많은 열매를 맺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도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육체가 아무리 부요하고 안락한 생활을 한다 하여도 영혼에 참 만족이 없으면 괴로운 것이 됩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사람들이 많이 자살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참 기쁨을 얻지 못하고 괴로워 하다가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겠습니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진리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육신이 영양가 있는 음식을 잘 먹어야 건강하고 잘 자라게 되는 것 같이 영혼도 진리를 항상 공급받아야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신령한 밭에서 진리의 비료를 자주 받아서 영혼이 잘 자라게 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갓난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2:2)고 하면서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젖이 되어 우리를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젖이 되어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또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죽은 영혼이 됩니다. 호흡을 잠시라도 멈추게 되면 육신이 매우 괴로워지는 것과 같이 영적 호흡인 기도를 쉬는 것은 영혼에 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건강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며 우리 영혼은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2. 범사가 잘되는 복을 얻자.
범사가 잘되는 길은 영혼이 하나님 안에 거하여 참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이 잘 된 사람은 범사가 잘되고 참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거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에 새 생명을 부여하고 그가 하는 길에 복을 주어서 형통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육신이 강건하여지고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즉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 하였습니다.
범사가 잘 된다는 것은 고난과 실패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실망하거나 좌절하기 않고 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노력하게 되며 그 결과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어 그 어려운 상황들이 오히려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고 것이요, 또한 사람 사이에 시기와 원망이 없고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돕고 지낼 때 물질적인 부요가 따르게 되고 그 물질을 바르게 사용할 때 근심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상에 있는 천국의 모형으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면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교회에 충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선교 사업에 앞장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여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형통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 때까지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고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을 의심치 않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꿈을 통하여 일생의 목표를 삼고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꿈의 실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기 위해 꿈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에 근거한 커다란 꿈을 가져야 합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지고 있는 자는 그 꿈을 실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자는 그 꿈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하며 하나님을 의뢰하여 지혜와 명철을 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진리를 사모하게 되어 영혼이 생명을 얻고 잘 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넘쳐 그 꿈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꿈을 가진 자는 크게 이룰 것이며 꿈을 작게 가진 자는 작게 이룰 것입니다.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들의 신앙은 우리가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3. 강건하기를 늘 간구하자.
우리 주위에서 이런 글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돈을 잃어버리는 것은 약간 잃어버리는 것이고, 명예를 잃어버리는 것은 많이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은 전부를 다 잃어버리는 것이다”.
건강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건강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만이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3장 8절에
“이것이(하나님의 말씀데로 사는 것)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씀함으로 건강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유럽을 점령하고는 자신 만만해 하던 어느 날, 집에서 기르는 원숭이의 재롱을 보며 즐기다 그에게 손가락이 물려서 죽고 말았습니다.
워터루 전쟁 때 나풀레옹도 여러 곳에 대포를 배치해 놓고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지만 작전 개시 바로 전날 밤 소나기가 내려 대포가 진흙 구덩이에 빠지는 바람에 패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원숭이나 소나기로서도 역사의 방향을 바꿔 놓으십니다. 우리의 거창한 계획과 장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무상하게 끝이 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자랑하지 말고 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강건하여 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이러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콜틀랜드의 ‘라이트'(H.F.Lyte)목사는 영국의 로우어 브릭스햄(Lower Brixham)지방의 가난한 어민들 사이에서 목회 한지 24년, 악화 일로에 있던 그의 건강은 한계점에 도달하였습니다. 1847년 12월 4일, 그는 병약한 몸을 치료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나기 전 가까스로 강대상에 올라가 고별 설교를 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것이므로 예기치 못할 그 엄숙한 순간을 예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비록 목소리는 미약했으나 온 회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설교를 마친 라이트 목사는 평소와 같이 브릭스햄 해변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파고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한줄기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할 때 날 돕는 주여 함께 하소서.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이 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변찮는 주여 함께 하소서.
주 홀로 마귀 물리치시니 언제나 나와 함께 하소서
주 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사랑의 주여 함께 하소서.
이 육신 다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 주소서
내 모든 슬픔 위로하시고 생명의 주여 함께 하소서’
인생의 황혼기에 세상의 모든 소망이 끝날 때 우리가 의지할 진정한 구원자는 누구입니까? 때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질 그 순간이 다가올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끄심을 받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육체의 건강도 소중하여 주의 일을 힘있게 할 수 있는 복도 얻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황혼의 마지막에 주의 나라에 임할 우리의 영혼이 늘 강건하여 넉넉히 구원을 얻는 귀한 삶이되기를 간구하는 믿음이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젠 이렇게 기도합시다.
이젠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총을 늘 얻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여야 합니다.
1.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기도하자.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말은
마틴 루터가 한 유명한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65장 24절에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기 자녀의 필요와 바램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녀들이 와서 그 필요한 것을 말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자녀와 아버지 관계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가까이 와서 필요를 말할 때 그것을 통하여 이미 존재해 온 사랑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만일 자녀가 아버지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면, 그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는 서로 사이를 안 좋게 만드는 무슨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나의 필요를 알고 계시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실 수 있는 그 자리로 내가 닥아가야 합니다. 즉 우리가 그분께 꼭 들어맞도록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우리가 구하는 바가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의 사이를 더욱 깊어지게 해 줍니다.
머나먼 중국 땅에서 하나의 필요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땅의 허드슨 테일러선교사가 그 필요를 채 인식하기도 전에, 영국에 있는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이 수표를 끊어 중국으로 발송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필요는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다른 사람을 움직여 그를 통하여 응답을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는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기쁨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체험을 하게 되면, 기도가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모든 지혜에 뛰어나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온통 사랑이신 그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기쁨과 경이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2. 기도의 제목을 향상시키자.
우리는 과대한 욕망 때문에 하나님께 바르게 간구하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때 성령께서 우리의 혼미한 마음의 문을 열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간구하게 하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들이 종종 체험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평소 별로 관심 두지 않았던 사실이 기도하는 중에 생각나서 새로운 열심과 뜻하지 않은 기도로 간구하는 때가 종종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지도하시는 결과입니다.
우리는 발람의 기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민22장-24장).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하여 발락의 부름을 받았으나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는 커녕 도리어 축복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발람의 기도는 성령의 지시하심의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범사에 그분의 생명과 충족성을 의뢰하여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자연히 그분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뜻이 바로 우리의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도 사랑하며 그분께서 이루기 원하는 일을 우리도 이루기 원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효과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즉 그분의 뜻에 쫓아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도하게 되면 이기적인 것보다는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바람직한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3. 기쁨으로 일하며 기도하자.(3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서 말하기를
‘항상 기뻐하라’고 말할 때는 교회마다 핍박과 시련이 있었고, 바울 자신도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뻐하라’하는 이 말은 인정(人情)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기쁨이 아니고, ‘주 안에서 가지는 성령의 기쁨’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는 말씀대로
오히려 고난이 닥칠수록 더 희열을 맛보는 그런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은 기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고후7:4)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은 어떠한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항상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며 사는 성도의 생활은 항상 기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전 생활에 기쁨이 없다면 자신의 신앙을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쁨이 없는 생활이란 성령의 생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자신을 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할 것이라(빌2:17,18)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생활은 기쁨의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주의 일에 늘 기쁨과 감사로 충성하여 주의 칭찬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며, 항상 기도함으로 이 모든 것이 더하여 지는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 10.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삼 01)
본문 : 요삼 1:1-2
제목 : 네 영혼이 잘됨같이.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도 요한이서처럼 “장로는”으로 시작을 합니다.
이 서신의 저자가 장로라는 말인데 이 장로가 요한이서처럼 사도요한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요한이서에서처럼 교회가 아니라 “가이오”라는 한 개인에게 이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는 우리에게는 그 형식상 누가 누구에게 썼는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형식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 말씀도 결국은 여기 있는 우리에게 나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편지가 쓰인 그 배경이나 그 대상을 생각하면서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서신의 첫머리에 통상적으로 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러나 이 인사말을 통하여 우리가 큰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인사말 속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귀한 교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편지의 수신자를 등장하는 “가이오”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본문의 가이오 말고 세 명의 가이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마게도니아의 가이오라는 사람은 바울과 같이 다니던 바울의 동역 자였던 사람이었습니다.(행19:29)
더베의 가이오라는 사람도 역시 바울과 함께 한 사람으로 바울의 마지막 선교여행 때 드로아까지 갔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바울이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온 교회의 식주인이 되어주었던 사람입니다.(고전1:14, 롬16:23)
그러나 이 세 사람 모두가 오늘 본문의 가이오와는 동명이인으로 생각이 됩니다.
본문의 가이오에 관하여는 아무 것도 알려진 사실이 없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따라 “영혼이 잘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범사에 잘 되는 것과 강건한 것에 대해서 강조점을 두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중심점은 그의 영혼이 잘 되었다는 점입니다.
영혼이 잘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영혼이 잘 된 사람이 범사에도 잘 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영혼이 잘됨같이
사도요한이 가이오에게 복을 빌면서 “네 영혼이 잘됨같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잘 되지 않은 이 세상의 행복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영혼이 잘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잘 되는 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행복 때문에 가장 중요한 영혼이 잘 되는 일을 소홀히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서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먼저 영혼이 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영혼을 생각하면 우리의 육신의 몸과 대비하여 육신이냐 영혼이냐? 라고 구별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의 영혼이 잘 된다는 의미는 우리의 몸을 구별하여 영혼이 잘 되고 육신이 못되고 하는 차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영혼이 잘 된 것이라는 말씀은 신앙생활을 바르게 잘 하느냐 못하느냐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 세상의 사랑을 받느냐
천국을 향하여 가느냐.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사느냐
천국 가는 길을 위하여 투자하며 사느냐, 세상 잘 사는 일에 투자하며 사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영혼이 잘 되었느냐 잘 못 되었느냐, 잘되어가고 있느냐 잘 못된 길로 가고 있느냐를 판단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몇 가지 문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느냐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네 영혼이 잘됨같이 라는 말을 하기 전에 사랑하는 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가이오”,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하는 자여“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함으로서 요한이 가이오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이오가 무엇을 해서 이렇게 요한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요한삼서를 공부하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가 그이 영혼을 위하여 하는 일들이 너무나 선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 우리의 영혼이 잘 된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으면 영혼이 잘 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애쓰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영혼이 잘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화장도 하고 애교도 부리고 음식도 잘 해주고 여러 가지 잘 해주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가끔 보면 그런 노력도 없이 나 사랑해 하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가지고 사랑을 받겠습니까?
남편들도 아내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돈도 버는 대로 갔다가 주고 옛날에는 돈만 잘 가져다주면 그만이었는데 요즘은 같이 음식도 만들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해줘야 사랑을 받습니다.
옛날처럼 남자라고 고함만 질렀다가는 젖은 낙엽 신세가 되고 맙니다.
자녀도 부모에게 부모도 자녀에게 형제끼리도 사로의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받을 일을 해야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을 일도 하지 않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을만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인정하는 일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인데 보통 노력으로 그 사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우주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눈길이나 주시겠습니까?
우리끼리 서로 비교해보면 좀 잘난 사람도 있고 충성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보시면 별로 특별히 잘나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행하는 그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우리의 생각처럼 우리의 잘남이나 우리의 행위를 보고 사랑하시기 보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의 부족함이나 우리의 죄나 우리의 연약함과는 관계가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 교회 안에 있을 때, 그 안에서 신앙을 고백할 때, 그 신앙고백이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 신앙 고백일 때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 기도하면 복을 받는다. 라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왜 기도를 하는지 원칙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라는 것은 알지만 그 핵심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자기의 행위를 내세워서 자기의 선함을 내세워서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보다는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자기의 죄를 알고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나를 구원할 유일한 것임을 알고 의지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천국을 향하여 가느냐.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사느냐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살지 않고 우리의 삶이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이 잘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에 “참으로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이라는 말로 번역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말 성경이나 쉬운성경에서는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이라는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요한이서에서도 언급을 했고 요한삼서 3,4절에도 또 언급을 하고 있듯이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성부하나님이 진리가 되시며 성자예수님이 진리요 성령님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그 삼위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핵심이 십자가요 십자가의 핵심이 구원이요 구원의 핵심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을 향하여 나아갈 때 우리의 영혼이 잘 되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살 때 우리가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잘됨같이“라고 할 때 ”잘 되다. “ 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오도오(ευοδοω)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좋은”이라는 말과 “길”이라는 말이 합하여져서 직역을 하면 “좋은 길“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좋은 길로 인도함을 받는다, 좋은 여행을 한다. 라는 뜻을 가졌지만 은유적으로 번영하다 성공하다. 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좋은 길로 가고 있다는 말은 우리의 영혼이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뒤에 나오는 “범사에 잘 되고“와 ”강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길로 가는 것 보다는 이 세상에서 잘 되고 강건함에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천국을 향하여 가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때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이 잘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신앙생활을 위하여 투자하며 사느냐, 세상 잘사는 일에 투자하며 사느냐
진리는 아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됩니다.
사도요한은 진리를 아는 것으로 기뻐한다. 라고 말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는 너무나 좋은 것이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진리가 행하여지지 않으면 그 진리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선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은 그 믿음 생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내속에서 항상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신앙으로 살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주일날 빠지지 않고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진심으로 예배를 잘 드리고 뜨겁게 찬양하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듣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금을 드리고 또 몸으로 봉사를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우리 속에 있는 이 죄성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이 욕심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이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에 노력하기 애쓰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그 일에 우리가 얼마나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안 되고 가 결정이 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은 어떻게라도 구원을 받게 되겠지만 이왕 천국을 가려면 아주 확실하게 안전하게 가야지 이렇게 좋은 영생의 길을 가면서 그렇게 뺀들뺀들 거리면서 위태위태하게 가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확실하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길로 갈 줄 믿습니다.
말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하면서 막상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얼마나 투자를 하고 삽니까?
쓰고 남은 돈 몇 푼, 쓰고 남은 시간 조금, 취미삼아 하는 봉사 몇 시간 그런 것 가지고 이 귀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투자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적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시기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잘 하는 일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학교에 가는 일도, 직장을 구하는 일도, 결혼을 하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이 신앙을 위해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범사에 잘되고 강건함
사도요한이 가이오를 볼 때 영혼이 잘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도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바라는 것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도 모든 일들이 좋은 길로 즉 번영의 길로 가게 되고 또 육신도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일이 잘 되게 살고 또 건강하게 살다가 천국에 오기를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서로 서로를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정말로 잘 살게 되겠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도 길다면 긴 세월을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삶도 번성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천국은 멀리 있고 세상은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천국을 가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의 삶을 등한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의 바람이 세상의 번성함과 강건함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생고생만 하다가 천국에 오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길로 가면서 건강하게 살면서 행복을 누리면서 살다가 때가 되면 천국에 오라고 하십니다.
문제는 세상에서의 잘 됨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천국 길을 놓치는 것이 문제요 걱정입니다.
세상에서의 안일함 때문에, 세상에서의 부요함 때문에, 천국의 소망을 잃어버리고 천국에 가는 길을 포기하는 사람이 될까봐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을 허용하시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 살고 행복하고 번성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타락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릅니다.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등 돌리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바뀌고 변해도 나는 신앙을 잘 지킬 수 있다 문제없다. 라고 장담을 하시겠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되고 강건하려면 먼저 영혼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고 천국을 가는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신앙생활 잘 하려고 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할 때 그리고 나서 오는 번영과 강건함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땅에서의 번성함과 강건함을 원하신다면 먼저 영혼이 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잘 되면 자연적으로 세상에서의 참된 번성과 강건함과 행복함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요한이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그의 영혼의 잘됨과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우선 영혼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잘 된 것처럼 범사도 잘 되시고 몸과 마음도 건강한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20090123본문 / 요한삼서 1:2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편지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가이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했습니다.본문 말씀을 보면 “네 영혼이 잘 됨같이”라고 말씀합니다. 축복의 우선순위가 영혼이 잘 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잘 되는 복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은 이 세상뿐 아니라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잘 되는 복이므로 얼마나 귀한 복인지 모릅니다.그러나 영혼이 잘 되는 복 이외에 물질의 축복을 받거나 건강의 축복을 받는 것 같은 복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만 잘 되는 것입니다.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백성이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의 영혼이 잘못되면, 다른 것들이 다 잘 되어도 영원히 지옥의 멸망을 당하게 되어 이미 망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여러분,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은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얼마나 부유하고 강건했습니까. 그러나 그는 세상 향락을 누리다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집니다. 나중에는 우상숭배까지 하게 되어 영혼이 병들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왕인지 모릅니다.오늘날 이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사람들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풍조를 보면 윤리도덕이 타락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심지어 남편이 따로 있고, 애인이 따로 있고, 친구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 그것을 재미있다고 보여줍니다.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들은 이런 영향을 받습니다. 이 나라의 윤리도덕을 타락시켜서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작전입니다. 문화를 통해서 사탄이 얼마나 역사하는지 모릅니다.젊은이들 가운데 성령 충만한 작가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한 PD와 방송국장이 많이 나와서 윤리도덕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개인과 가정, 사회가 잘 되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요즘 잘못된 사상과 주장이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잘 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라는 사상입니다.여러분, 이것은 무서운 사상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며, 사탄의 소리입니다. 도둑질을 해서라도 잘 살면 되고, 뇌물을 받아서라도 잘 살면 됩니까.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바르게 사는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정의 사회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올바른 사회, 올바른 윤리도덕, 올바른 시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바르게 사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선하게 사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국민들이 얼마나 선한 백성으로 사느냐, 얼마나 사랑을 베풀면서 사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믿음 없이는 안 됩니다. 타락된 인격을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안 됩니다.자기 명예를 위해서 이웃돕기헌금을 바치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며,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면서,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 성령 충만한 사람들입니다.요즘 제일 걱정되는 것은 청소년들을 타락시키는 문화가 너무 발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게임 중에 ‘살인 게임’이 있다고 합니다. 상대편을 죽이면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 반복하면 세뇌되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게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게임은 당장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에 갔다 온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리고 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이유는,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긴장 속에서 계속 전쟁을 하고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살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잘못된 청소년 문화를 이 사회에서 뿌리째 뽑을 수 있을까요?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할수록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귀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람들은 마귀 짓을 합니다. 마음과 생각, 말하는 것과 행동까지 꼭 마귀를 닮았습니다.요한일서 1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빛에 속한 사람들입니다.에베소서 5장 9절에 보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성품입니다.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이것이 빛의 성품입니다.빛 되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열매가 우리 성품 가운데서 나타날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윗의 성품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다윗을 왜 그렇게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축복하셨을까요? 그의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하나님의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닮은 것입니다.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품이 착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고, 마귀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불의한 짓을 합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마귀에게 속한 자인지 알 수 있다고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다윗은 성품이 진실했습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다윗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도 인간인지라 실수할 때도 있었지만, 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평생 정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살았습니다.다윗은 솔로몬처럼 방탕하다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는 거룩한 왕인데, 어느 날 낮잠 자고 일어나 지붕에 올라가 목욕하는 여자를 보고 음욕이 생겼습니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엄청난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막아주시지 않고 내버려두셨을까요?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한 가지 사건이 없었다면 다윗은 신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평생 한 번도 하나님 앞에 죄 지은 일이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신입니다.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었을 때, 가나안 땅이 눈 앞에 보이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너는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물이 없을 때 생수를 가리키라고만 했는데, 두 번이나 화를 내면서 내리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화내며 한 것입니다.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은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모세는 율법의 대표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모두 허물이 있습니다. 다윗에게 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더 거룩한 왕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서 말년이 더 아름답고 좋게 되었습니다.여러분 중에 한 번도 죄를 범한 적이 없고, 잘못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생활과 십일조, 주일성수도 철저히 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이 계시다면 조심해야 합니다.우리는 사람인지라 범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 위에 올라서려고 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는 원수가 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떠나시고 은혜도 주시지 않습니다. 교만이 그렇게 큰 죄입니다.다윗이 평생 정직하고 의롭게 산 것도 좋지만, 교만해지는 것이 더 큰 일입니다. 다윗은 단 한 번이지만,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하나님이 방치하신 것입니다.여러분들 중에 약점과 부족한 부분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겸손해진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전화위복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약함이 축복이 되고, 부족한 점으로 인해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시편 51편 10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시편 51편은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해 달라고 회개할 때 쓴 시입니다.잠언 2장 7절에 보면,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의 지혜가 완전한지는 시간이 가면 알 수 있습니다.솔로몬이 가진 지혜와 다윗이 가진 지혜 중에 누구의 것이 더 완전한 지혜입니까?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타락하고 어리석은 인간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다윗은 더 거룩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았습니다.성공이라는 것은 언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세상 떠날 때쯤입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믿음도 없고 신앙이 부족했지만, 그 사람의 마지막이 거룩하고 은혜로웠다면 그 사람은 성공자입니다.여러분, 앞길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성품을 가지고 산다면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들이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 영혼이 잘 됨같이 우리의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면서 살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1.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이런 사람은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은혜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다니엘을 보십시오. 어떤 일이 생겨도 날마다 하루에 세 번씩 정한 자리, 정한 시간에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끝까지 책임지셨습니다. 나라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하나님은 다니엘을 끝까지 높이고,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성도 여러분! 항상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같은 축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했습니다(살전 5:17).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말했습니다.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은혜 받을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할 때, 영혼이 잘되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2.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서 살아야 합니다.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사는 것일까요?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왜 기뻐하실까요? 그 이유는 믿음이 좋아질수록 믿음이 커질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요셉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죄는 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예가 되고 환경이 어렵게 되었다 하더라도 요셉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죄 되는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로로 잡혀 갔어도 우상 앞에 제사지낸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이지만, 우상 앞에 제사지내고 먹는 음식임을 알고 먹지 않았습니다.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제사지낸 음식까지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는 축복을 받습니다.역대하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했을 때, 그는 세상의 영광이나 부나 건강이나 장수처럼 자기의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왕으로 세워주셨는데, 그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생각해보니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합니다. 올바르게 재판하고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리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입니다.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기도를 하니 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부와 영광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지혜로운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잠언 30장 7~9절에 보면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이것은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는 그 기도대로 응답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축복해주십니다.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받는 핍박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⑵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많은 사람들은 욕심을 가지고 자기를 위한 소원과 꿈을 가지고 삽니다. 욕심이 클수록 타락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립니다.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꿈을 가지고 삽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이 함께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꿈이 이루어지게 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그런 소원과 꿈은 가지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해주십니다.여러분, 어려울 때일수록 어려움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생각났을 때에는 바로 행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특별히 좋은 생각을 넣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을 우리가 행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해주시고 축복해주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⑶ 좋으신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시편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인가를 자세히 언급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렸습니다.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영혼이 잘 되게 하시는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영혼이 잘 될 뿐 아니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